지역전문가 시절 ③
연수 마무리 - 지역전문가 시절 ③
직업의 전문화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없다면, 누구나 넓은 관심사를 추구하며 살고 싶어 한다. 몇 년이면 필요 없어질지도 모르는 전문기술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우리 본성에도 어긋난다.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들은, 준비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위대한’ 그들은 꾸준히 자기 계발을 한다. 독서, 세미나, 멘토 등을 통해 오늘과 다른 자신을 만들어간다.
귀국/일본어 시험
1년간의 연수활동을 마무리하고, 물산 동기생 4명이 도쿄 지사장을 찾아가 마지막으로 인사를 올렸다. 각자의 연수기간 소감을 이야기했는데, 그때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일상생활의 재미와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연수 1년 동안, 회사의 업무부담은 전혀 없었다. 그런 것이 알게 모르게, 내게는 큰 심적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연수 프로그램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자유와 배운 것들은, 나의 소중한 역사가 되었다.
연수생으로 몸에 배었던 기록습관, 많은 습작들은 평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영감의 근원이,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이었다. 매일 똑같았던 일상을 곱씹어보니, ‘재미있었다’라는 것이 1년간 연수생활의 내 결론이었다. 나는 연수 결과물 책 제목을, ‘외로워서 내가 보였다.’로 붙였다.
연수생 50명 모두 무사히 귀국했다. 3주간의 활동 정리기간을 가지고, 각자의 소속사로 복귀했다. 얼마 뒤 우리 모두는 의무적으로, 그룹 일본어 어학시험을 봤다. 우리가 시험 볼 때 일본어가 문제은행 방식으로 처음 치러졌는데, 역대급으로 문제가 어렵게 출제되었다. 당시 일본어과 출신 물산 신입사원이, 일본어 시험에서 2급을 받았다고 연수 담당자에게서 들었다.
일본 지역전문가 50명 중에서, 첫 번째 시험에서 유일하게 내가 1급을 받았다. 나는 삼성을 나오기 전까지, 일본어 어학검정은 영구면제(어학 소멸기간 9999년으로 표시) 받았다. 일본 파견 전에 일본어 4급에서, 1년 만에 1급을 획득했다. 땀 흘린 보람을 느꼈다.
이후 업무출장으로 일본에 갈 기회는 없었다. 10년이 지나서 임원이 되고 회사의 일본 전략회의에 갔었는데, 다행히 내 일본어는 녹슬지 않았다. 그래서, 어학은 현지에서 배우라고 하는 모양이다. 지금도 NHK를 볼 수 있는 상황이면, 가끔 시청한다. 그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일본어, 일본문화, 다양한 생각들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30살 한국 젊은이가 온몸으로 느꼈던, 바로 그 일본이 기억나기 때문이다.
한국능률협회 강연
옛날 부서에 복귀해 근무하고 있을 때, 한국능률협회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자신들이 국내 기업의 연수팀 간부들에게, 삼성 지역전문가 과정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나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그룹 인사팀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별 고민 없이 승낙했다. 축적해 두었던 자료가 많았기 때문에, 협회에서 원하는 강연에 맞게끔 정리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당일 400여 명이 운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강단에서 PPT 자료와 촬영해 온 동영상 샘플들을 보여주면서, 한 시간 동안 강연했다. 외부 강연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내가 직접 경험했던 것을 전달하다 보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강연료는 인사팀에 신고했다. 이 강연을 끝으로, 나의 일본 지역전문가 과정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젊은 시절,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Materials & Memories
일본에서 많은 자료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특히 일본 지역연구를 할 때, 축적했던 자료들이 많다. 내가 여행했던 지역 관광안내도, 유료 관람지의 소개책자와 입장권, 교통 이용권, 대표적인 물품 등 수도 없이 많다. 국제전화카드(정말 많이 샀다), 통학용 월 전철 정기권 등 일상 물품도 다양하다.
일본어 공부를 위해서 도쿄에서 축적했던 아사히 신문 사설 스크랩북, 일본 드라마 녹화 테이프, 일본 지역연구 비디오 녹화 테이프도 엄청 많다. 그리고, 귀국하기 전에 일본 서점에서 구매했던 경영학 서적과 일본 전문서적들도 있다.
이런 기록물과 자료들도 중요하지만, 내가 1년 동안 경험했던 하루하루의 기억들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이 기억들은 내가 죽는 날까지, 언제라도 꺼내 볼 수 있는 보물 창고와 같다. 당시에 수집했던 많은 자료들이, 우리 집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좀 더 나이가 더 들면 한번 시간을 크게 잡아서, 제대로 정리를 한번 해보고 싶다. 당시에 내가 찍었던, 젊은 시절의 내 모습과 일본의 사진을 포함해서 말이다.
삼성은 직원교육에 통 큰 투자를 지속적으로 했다. 전 세계에 지역전문가 제도를 오랫동안 운영했다. 한 기사에 의하면, 삼성은 1990년부터 코로나 직전까지 총 90개국에 7천명가량 양성했다고 한다. 그 비용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그리고 Socio MBA라고 해서, 국내외 유명 대학에 2년간 MBA 과정을 밟게 했다. 주요 언어들에 대한, 통역전문가 양성 과정도 외국어대학 등에서 실시하기도 했다.
사람에 대한 통 큰 교육투자는, 쉬운 의사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선대 회장님은 이런 투자에 과감했다. 양성된 인력들이 굳이 삼성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를 위해서라도 활용된다면 지역전문가 제도를 운영하겠다고 애초에 밝혔다.
지금도 후배들이 좋은 교육훈련을 받으며, 회사와 그룹의 인재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큰 꿈을 가지고 정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여러분이 원하는 만큼, 꿈 꾼만큼 그 과실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비록 삼성의 OB지만, 나는 삼성과 현역 삼성 맨들을 여전히 응원한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