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양인 02
정약전 (1758 ~ 1816)
죽기 전에는 나가지 못하는 곳에 유배되어, 어부들과 살면서 자산어보라는 학문적 성취를 남겼다. 서해 바다를 보며,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가슴 시리게 외로웠던 만큼, 그의 작품은 더욱 빛나게 만들어졌다.
정약전은 정약용의 4살 위 형이다. 정약용에게 멘토가 두 명 있었는데, 바로 정약전과 정조 임금이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많은 것을 공유하고,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천주교 신자 탄압으로 그들은 나란히 유배를 떠났다.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가다가, 나주에서 정약용은 강진으로 갔다. 정약전은 나주에서 흑산도로 갔는데, 이후 두 사람은 영원히 만나지 못했다.
정약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서적인 ‘자산어보’를 만들었다. 자산어보는
창대라는 관찰력이 뛰어난 흑산도 어부의 도움을 받아, 실증적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19세기초 흑산도 인근 한국의 토종 어류, 갑각류, 조개류 등에 대한 정보를 명칭, 분포, 유용성 등을 기록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아직 이 책을 참고한다고 하니, 정약전의 유배가 만들어낸 귀중한 보물이다.
자산어보 책 제목에 대해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자산은 흑산(도)이다. 나는 흑산에 유배를 와 있어서 흑산이라는 말이 어둡고 무섭다.” 결국은 흑산어보인데, 그는 어감상 책 이름을 자산어보로 붙인 것이다.
자산어보 하면, 나는 식당과 영화가 떠오른다. 내가 그룹에서 일하다가 소속사로 복귀할 때, 물산 사옥은 분당에 있었다. 당시 회사 인근에 자산어보라는 횟집이 있었는데, 조금 비쌌지만 식사하기에는 좋았다. 그 후 회사가 서초동 신사옥으로 갈 때, 이 가게 주인이 따라왔다.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곳이 판교였는데, 그때도 마찬가지로, 회사 옆건물에 자산어보 식당이 있었다. 그 이후로도 회사가 옮길 때마다 같이 다녔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식당 주인이었다.
2021년 이준익 영화감독이 자산어보 영화를 발표했다. 흑백 영화이며, 잔잔한 영화였다. 작품의 개봉시기가 코로나 시기여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주연배우 설경구는 국내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자산어보 영화는 2021년 브라질에도 한국영화로 소개되었고, 2023년 쿠바 아바나 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정약전 선생은 자신의 책이 영화화된 작품을 보게 된다면, 과연 어떤 코멘트를 했을까? 옛날 회사 근처 맛집 자산어보에서 회 한 접시와 소주를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