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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만사 - 하워드 슐츠

경영자 13

by 구포국수

하워드 슐츠 (1953 ~ )

레이 크룩 못지않은 영업의 촉을 가졌다. 커피 체인점이라는 평범한 사업에, 문화를 살짝 입혔다. 원조 스타벅스 3인이 보내줬던 이태리 밀란 출장에서, 그 팁을 얻었다. 그는 원조 스타벅스 창업자들에게 큰 신세를 졌다.




“인간의 정신에 영감을 불어넣고 더욱 풍요롭게 한다. 이를 위해 한 분의 고객, 한 잔의 음료, 우리의 이웃에 정성을 다한다.” 글로벌 커피체인 1위 기업인 스타벅스의 미션이다. 스타벅스는 77개국에 35천여 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업은 맥도널드와 마찬가지로, 원래의 창업자와 지금의 회사를 일군 사람이 다르다. 스타벅스는 1971년 시애틀에서 3명의 남자가 설립했다. 이곳에서는 커피를 로스팅해 팔았지만, 점포에서 커피를 직접 만들어 팔지는 않았다. 이들이 창업할 때 스타벅스 이름 및 로고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렇다.


여러 가지 명칭을 두고 고민하다가, 그들은 소설 모비딕에서 나온 배 이름 피코드를 당초에 정했다. 이후 추가 논의 끝에 피코드함의 일등 항해사의 이름인 스타벅스로 최종 결정했다. 스타벅스 로고는 선원들을 아름다운 노래로 홀리는 세이렌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이 스타벅스를 1987년 380만불에 인수한 사람이 하워드 슐츠, 현재 스타벅스 명예회장이다. 그는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에서 태어나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훤칠한 키에 다부진 몸을 가진 그가 가난을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 운동할 때였다고 했다. 그는 시카고 한 대학의 미식축구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 꿈에도 꾸지 못했던 대학교에 운동 장학금을 받고 갔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복사기 업체에서 세일즈맨을 했다. 실적도 좋아 제록스에서도 근무하며, 세일즈맨으로 성장했다. 한 스웨덴계 생필품 기업에서 유럽산 커피기계를 파는 영업임원으로도 근무했다. 맥도널드의 레이 크룩처럼, 그 역시 커피기계의 주문이 많은 한 점포를 방문했다. 1981년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되었다.


“참 감상적인 표현이지만, 집에 온 것 같았다. 설명하기 힘든데 아주 특별한 곳이라고 느꼈고, 커피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라고 그는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3명의 원래 창업자들과 커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커피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배웠다.


이듬해 슐츠는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스타벅스의 소매 판매 및 마케팅 담당임원으로 입사했다. 입사 1년 뒤 그는 이탈리아 밀란으로 출장을 갔다. 미국과는 달리, 이탈리아인들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만나고 이야기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커피를 함께 즐기는 모습에서 ‘바로 이거다!’ 하는 느낌을 가지고 미국에 돌아왔다.


그는 스타벅스 창업자들에게 커피와 함께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커피를 파는 장소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들은 로스팅 커피원두의 대량거래를 계속하기를 원했다.


1985년 슐츠는 스타벅스를 떠나 ‘임지오 날레(매일)’라는 커피체인을 창업했다. 초기 투자자 확보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1호점을 오픈했다. 스타벅스의 로스팅 원두를 사용해, 이탈리아식 커피를 팔아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 2년 뒤 1987년 스타벅스 창업자들에게 380만불을 지불하고, 스타벅스의 기존 점포들과 일체의 상표권한을 인수했다. 1971년 창업된 스타벅스의 주인이 1987년 하워드 슐츠로 바뀌었다.


그는 스타벅스만의 독특한 성공 스토리를 만들며, 전 세계로 점포를 확장해 나갔다. 우리나라에는 이화여대 앞에 1999년 1호점이 오픈했다. 현재 약 1,500개의 매장이 있다. 우리나라 스타벅스는 미국, 중국, 캐나다, 일본에 이어 5번째로 매출규모가 크다. 한때 명동의 스타벅스 매장이 글로벌 1위 매출을 올렸다고 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사랑도 정말 대단하다.


스타벅스가 우리나라에 진출할 때 신세계 그룹과 J/V형식으로 들여왔다. 이제는 신세계가 지분을 모두 매입해, 미국 스타벅스에는 별도의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는다.


슐츠는 스타벅스가 위기일 때마다, 복귀와 은퇴를 2번이나 반복했다. 2023년에는 완전히 퇴임해 명예회장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내가 스타벅스 매장을 처음 직접 간 것은, 2007년 미국 IR출장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맨해튼에서 기관투자자 미팅을 마치고, 스타벅스 매장에 갔다. 높은 빌딩의 1층에 넓고, 층고도 높았다.


당시 주문방식을 잘 몰라, 동행했던 증권사 직원에게 주문을 부탁했다. 나는 그 뒤로도 한참 지나서야 주문방법을 알게 되었다. 아메리카노, 라테는 물과 우유의 차이다. 스타벅스의 사이즈는 발음하기도 어렵다. 원래 슐츠가 고안했던 컵 사이즈는 Shorter, Tall 두 가지였다.


그런데, 미국인들이 더 많은 양의 커피를 원해 Grande(큰) 사이즈를 만들었다. 이후 사이즈 업의 필요성을 계속 느껴 그 역시 네이밍을 고심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어로 20에 해당하는 Venti, 30을 의미하는 Trenta 사이즈를 추가하게 된다. Venti는 실제 24온즈, Trenta는 31온즈 용량으로 스타벅스에서 판매된다.


2008년 정기 임원회의를 마치고 휴식시간이 되어 회의실을 나왔는데, 커피 냄새가 진하게 났다. 스타벅스의 커피 출장 서비스였다. 당시 사장님께서 선진 문물(?)을 경험해 보라고 하시면서, 임원들을 위해 특별히 커피 출장 서비스를 신청했다. 두 명의 스타벅스 직원이 모자와 앞치마를 차려입고,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주었다. 이때 커피 맛은 인상적이었다. 공짜여서 그랬던가?


커피의 공정무역 거래 이슈가 있다. 대부분의 큰 커피회사들이 엄청난 양의 원두를 아이들의 노동이 투입되는 커피농장이 아니라, 비싸더라도 그렇지 않은 농장의 것을 구매한다. 커피 한잔을 만드는 회사가 이런 미션을 가지고, 문화를 논하고, AI를 사업에 접목하는 시대가 되었다.


스타벅스는 한국에서 현대적인 커피매장의 표준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삼성의료원의 장례식장이,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를 바꾸어 놓은 것처럼 말이다.


슐츠의 시애틀 스타벅스 첫 방문과 밀란 출장에서 느꼈던 감성을 생각하면서, 스타벅스에서 가끔 라테 한 잔씩 마시고 싶다. 그가 꿈꾸던 그 커피문화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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