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 22
잉바르 캄프라드 (1926 ~ 2018)
성냥 팔던 소년이, 자신의 추억을 담아 이케아 이름을 만들었다. 이 기업은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과 어깨를 겨룬다. 우리나라 4군데에서 스웨덴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이케아는 주한 스웨덴의 문화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케아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에릭슨, 사브 등을 보유한 발렌베리 그룹과 어깨를 견주는 글로벌 가구회사다.
이케아의 창업자인 잉바르 캄프라드는 7살 때 동네 사람들에게 성냥을 팔기 시작했다. 17살 때 자신의 용돈과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1인 기업 이케아를 만들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장사에 눈을 뜬 상인이었다.
이케아는 잉바르(I) + 캄프라드(K) + 엘름타뤼드(E) + 야군나뤼드(A) 4 단어의 이니셜이다. 엘름타뤼드는 어릴 적 그가 살던 농장, 야군나뤼드는 그 농장이 있던 마을 이름이다. 그는 자신의 추억을 담아 1인 기업의 이름을 만들었다.
1947년 가구 단일품목으로 사업을 단순화했다. 당시 스웨덴에는 서민용 100만 가구 건설이 시작되었고, 1인 가구의 등장에 맞춰 사업변신을 시도했는데 대성공이었다.
이케아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고, 재활용 가능한 목재와 플라스틱을 사용해 지속가능한 제품을 만든다는 미션을 가지고 있다. 제품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스웨덴 말을 고집하는데, 이는 스웨덴을 전 세계에 알리자는 창업자의 모토에 따른 불편함이다.
유럽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고 하는 이케아 카탈로그는 1951년부터 발간되었고, 불과 몇 년 전에 중단되었다.
1950~70년대 유럽의 가구시장은 고가 위주였는데, 이케아는 철저히 저가정책을 고집했다. 완제품이 아니라, 반제품을 생산해 물류비를 줄였다. DIY형 조립가구를 만들어 인건비도 줄였다. 디자인도 심플하게 만들어 생산비도 줄였다.
이렇게 절감된 생산원가를 고객들에게 돌려주었다. 쇼핑하고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핫도그를 싸게 공급했다. 우리나라에는 2014년 광명점을 시작해서, 현재 4개점이 운영되고 있다.
나도 아내와 이케아를 방문하면, 미로 같은 동선을 따라 엄청 걷게 된다. 무거운 나무판을 카트에 싣고 나오다가, 핫도그 역시 꼭 챙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스웨덴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
억만장자 스크루지는 떠났지만, 그의 사업 신념은 아직 남아있다. 코로나로 인해 옴니채널로 다가오는 이케아, 그들의 변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