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구멍이요? 뒷구멍이요?

<조선야사(野史) 훔쳐보기> 김인숙 엮음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오늘 하루 쉬어갑니다.)

앞구멍이요? 뒷구멍이요?

이 아무개와 김 아무개는 친구로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데 이 씨의 처는 문장을 잘했지만, 김 씨의 처는 일자무식이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강을 건너가 독서(讀書)하려고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함께 수십 보를 가는 중이었는데 이 씨의 처가 여종을 시켜 작은 편지를 지니고 발에 땀이 나도록 달려와서 길 가운데서 이 씨에게 편지를 전해주었다.

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봄 얼음 걱정되니 삼가 가벼이 건너지 마소서(春氷可畏愼勿輕渡)

편지를 함께 본 김 씨는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또 한 번은 김 씨가 이 씨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다가 이 씨가 아내에게 <고문진보(古文眞寶)>를 찾아오라 일렀다. 그러자 이 씨 아내는 여종을 시켜 물어왔다.

“전집입니까? 후집입니까?”

이 모습을 지켜본 김 씨는 이 씨에게 당신 처가 매우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김 씨는 처에게 말했다.

“이 씨의 처는 문자를 알아 이 씨가 <고문진보>를 찾아오라 했더니 그 처가 ‘전집입니까? 후집입니까?’라고 했소. 당신은 어째 글자를 몰라 책 제목에 캄캄하오?”

김 씨는 일자무식인 아내를 위해 언문으로 각 책의 권(卷)과 질(秩)에다가 제목을 표시해 놓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김 씨가 손님들을 접대하게 되었다. 김 씨는 사람들에게 아내를 자랑하고 싶어서 여종에게 일러 <孔叢子(공총자)>를 찾아오도록 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 처가 여종을 시켜 물어왔다.

“전공(前孔-앞 구멍)입니까? 후공(後孔-뒷구멍)입니까?”

이 말을 들은 주인과 손님들은 하도 기가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한 손님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앞 구멍은 좋으나 뒷구멍은 추하고 추하도다.”

이 말을 들은 김 씨는 크게 부끄러워했다.

이 글에 나오는 <고문진보>는 조선시대 시문 학습을 위한 제1의 교재로 역대 중국을 대표하는 시문집이다.

<고문진보>는 전집과 후집으로 나뉘어 있으며 전집에는 시가를 수록하고, 후집에는 산문을 모았다.

그리고 김 씨 부인이 물었던 <공총자>는 한나라 때 공자의 후손인 공부(孔俯)가 지었으며 공자와 자사 등의 언행을 모아놓은 책이다.

<공총자>는 전 3권으로 전집과 후집으로 나뉘지 않는다.

경복궁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 굶어 죽은 광평대군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는 세종의 다섯째 아들로 자식이 없던 무안대군 방번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이여는 사서삼경에 능통했고, 국어, 음률, 산수에도 밝았으며 서예, 격구에도 능했다.

2012년 방영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을 도와 한글을 창제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그려진 이여는 죽은 연유가 여러 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이여는 창진(천연두)으로 죽었으나 야사에서는 생선가시(준치)가 목에 박혀 음식을 못 삼켜 괴로워하다가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광평대군 이여가 졸卒하였다.

여가 창진瘡疹을 앓고 있었는데, 임금이 심히 근심하여 여러 방법으로 치료했으나 끝내 효과를 얻지 못하고 죽으니, 임금과 중궁이 몹시 슬퍼하여 3일 동안 조회를 거두었다.

여는 성품과 도량이 너그럽고 넓으며, 용모와 자태가 탐스럽고 아름다우며, 총명하고 효제孝悌하여 비록 노복이나 사환이라도 일찍이 꾸짖지 아니하매,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였다.

아들이 하나이니 이름은 이부李溥다. 처음 여의 병이 위독할 때 임금이 밤을 새워 자지 않았고, 끝내 죽으매 종일토록 수라를 들지 아니하니, 도승지 이승손 등이 아뢰기를,

“성상께서 오랜 병환이 있으신데 애통하심이 예절에 지나치십니다. 청하옵건대, 수라를 드시옵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 마땅히 그리하겠노라.”

하였으나, 날이 저물어서야 죽만 조금 마실 뿐이었다.

정부와 육조에서 조위하는 전문을 올리니, 이르기를,

“온화하고 순량한 숙덕이 일찍이 종실의 꽃부리었더니, 준수하고 풍우한 자태가 문득 황천의 막힘이 되었나이다. 슬픔이 깊이 대궐에 감싸이매, 아픔이 널리 민심에 맺히나이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성상의 비통하심을 너그러이 하시어 신하들의 소망에 답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이처럼 조선왕조실록에는 창진, 즉 천연두로 사망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야사의 기록은 다르다.

세종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난 광평대군은 어릴 때 점쟁이에게 ‘굶어 죽을 관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세종은 왕의 아들이 굶어 죽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며 믿지 않으려 했으나 실제로는 마음이 불안했는지 다른 대군들에 비해 훨씬 넓은 농토를 수여하는 등 끼니를 걱정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그러나 광평대군이 20세가 되는 해 밥을 먹던 중 준치의 가시가 목에 깊숙이 걸리게 된다. 애를 써서 빼려고 했으나 끝내 빼지 못하여 염증이 도지고, 여기에 천연두까지 겹쳐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굶어 죽게 된다.

어릴 적에 관상을 보는 사람이, “관상 법으로 보아서는 굶어 돌아가실 것이 틀림없나이다.”라고 아뢰었다.

세종은, “내 아들이 어찌 굶어 죽을 리가 있겠느냐.”하고는 동대문 밖 적전籍田(임금이 친히 경작하는 논)을 모두 그에게 주고 또 시골 별장에다 적전을 옮겨주었다.

광평이 뒤에 생선을 먹다가 뼈가 목에 걸려 음식을 삼키지 못해 결국 굶어 죽고 말았다. [지봉유설]

* 위의 글은 <조선野사 훔쳐보기>(2012년 발간, 김인숙 엮음)에서 발췌한 글이다.

연식이 오래되어 아쉽게도 절판되었다.

<조선야사 훔쳐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