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원생의 일기
2024년 1월 11일,
언제나처럼 지하철로 집에 돌아왔다.
어머님 날 낳으시고 1호선 날 기르셨네.
1호선 열차는 대학교와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부지런히 나를 실어 날랐다. 1호선 위에서 보낸 시간을 갖고 줄 세우기를 한다면 나는 꽤 상위권에 들 것이다. 그런 다년간의 경험에서 느낀 것이 있다면 출퇴근 시간대 1호선 열차는 매우 편안하다는 것이다. 온몸에 힘을 풀어도 반듯하게 서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아주 그냥 꽉꽉 차서 내 한 몸이 넘어지긴커녕 약간 기울어질 틈조차 없으니까.
어딜 갔었든 우리 집에 돌아오려면 신도림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신도림의 퇴근 행렬은 저녁 6시쯤 시작되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그 시간대에 다니다 보면 지하철 한 칸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분명 꽉 찼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가고 싶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전투적으로 밀고 들어오면 또 들어와진다. 그렇게 중심으로 수렴하다 보면 곧 간신히 숨만 쉴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럴 때 나는 감사함을 느낀다. 이 많은 사람들이 압력을 가해도 열차가 뻥 터져버리지 않는다는 것에.
코로나가 창궐하고부터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 탁한 공기 속에서 마스크까지 끼고 있으려니 호흡이 힘들었다. 그 무렵 미주신경성 실신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예고 없이 빠르게 찾아오는 비상사태. 숨이 점점 가빠지고 속이 울렁거리고 눈앞이 아득했다가 곧 거메진다. 기절할 것 같다는 느낌이 오면 내릴 역이 한참 남았어도 그냥 내려야 한다. 그렇게 내려서 승강장에 대자로 드러누운 적도 있고 화장실에 달려가 구역질을 한 적도 있었다. 패닉의 노랫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어, 진짜 너무 길다.
그러나 단지 나를 힘겹게 태우고 다녔다는 것만으로 ‘길렀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호선은 내게 삼라만상을 보여주었다. 온 지구인을 무선표집해서 태우나 싶을 만큼 1호선 열차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그리고 늘 그들이 내뿜는 생명력으로 충만했다. 행여 지옥에 떨어질까 우리 엄마보다 나를 더 걱정해 주는 고마운 종교인들, 수레를 끌고 다니며 물건을 파는 사람들, 심지어 물건도 안 주고 돈을 달라는 사람들조차 예사였다.
좀 더 인상적인 건 이런 이들이다. 예리한 손놀림으로 젊은 여자들을 한 명 한 명 삿대질하며 결혼 안 한 X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열변 토하던 할아버지, 졸고 있던 나를 지팡이로 툭툭 쳐서 깨우더니 자기 앉게 나오라고 하던 할아버지2, 내리면서 내 손에 초코 과자를 한 주먹 꼬옥 쥐여 주던 젊은이, 태연하게 바지 지퍼를 내리고 문가를 향해 발사하던 뒷모습, 온갖 음식을 다 갖다가 굳이 지하철에서 먹던 그 모든 사람들. 왜?라는 의문을 나는 이미 오래전에 집어치웠다. 이유를 알면 뭐 할 것인가.
‘인류애 상실’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나도 한창 바쁘고 고단하던 시기에는 지하철에 오를 때마다 내심 그 말을 되뇌었다. 같은 칸에 탄 사람들을 즉결 심판하는 재미대가리 없는 행위로나마 나는 그 시간들을 견뎠다. 아저씨, 옆에 사람이 앉아있는데 다리를 그 따위로 쫙 벌려? 사형. 슬쩍 밀쳤더니 조금 오므리네. 봐줬다, 무기징역. 어이, 아까 당신이 새치기하고 먼저 타서 내가 간발의 차로 못 앉았잖아. 빵에서 한 40년은 썩어 봐. 면회도 없을 줄 알아.
나는 경범죄자들도 시원시원하게 처벌했다. 시끄럽거나 냄새나거나 부주의한, 아니면 그냥 이유 없이 눈에 거슬리는 모든 사람들을 속으로 죽였다가 살렸다가 또 죽였다. 어떤 날에는 그걸로도 모자랐다. 컨디션이 안 좋은데 유난히 자리가 나지 않거나, 어디서 나는 건지도 모를 악취와 동시다발적인 소음에 혼미해질 때면 그냥 모든 감각이 마비된 척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날에는 사람이 아무리 많이 타도 절대 터지지 않는 이 직육면체를 내 손으로 터뜨려 버리고 싶었다. 그때쯤 열차는 환승역에 나를 퉤 뱉어냈다.
그 시기에 내 속을 뒤집어 까 봤다면 염증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의 면면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지치고 낡고 닳고 신물이 난 얼굴들. 내게 지하철이란 그런 공간이었다. 누가 누굴 증오해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곳. 그래도 탈선은 없었다. 내 삶은 1호선 위를 달리고 또 달렸다. 정리하자면 1호선 열차는 지상 최악의 공간이며 나는 그곳에서 무한히 고통받았다. 오늘의 일기 끝.
거짓말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 어김없이 퇴근 시간대였고 익숙하게 서서 가던 중이었다. 내 앞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나를 힐끔힐끔 보더니 이내 내 가방을 톡톡 두드려 나를 불렀다. 달갑지 않았다. 나는 늘 이어폰을 끼우고 다니기 때문에 누가 말을 걸면 그걸 빼야 한다. 여기서부터 일단 귀찮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었는데 그게 듣기 좋은 소리였던 적은 거의 없었다. 벌써부터 올라오는 미미한 피로를 억누르며 나는 네? 하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가방이 무거우면 자기 무릎 위에 올려두라고 했다. 어, 많이 무거워 보였나? 아니 물론 무겁긴 한데, 그렇게 막 무거운 건 아닌데.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쑥스러운 듯 웃더니 곧 고개를 돌렸다. 수다스러운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로서도 어느 정도의 용기를 내어 건넨 호의였음이 짐작되었다. 그 수줍은 친절에 나는 이어폰을 도로 끼우지 못하고 만지작거렸다.
시간이 마저 흘렀다. 내 앞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내릴 채비를 했다. 옆에 노인이 서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앉으려 하지 않고 노인을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노인은 정중하면서도 다소 급한 어투로 “제가 좀 앉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시라고 했다. 그런데 노인은 자리에 앉는 대신 뒤에 서 있던 아내를 얼른 불렀다. 그의 아내는 거동이 편치 않아 보였다. 흔들리는 전차 안에서 몇 걸음을 걸어와 앉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내가 앉고서야 노인은 한 시름 놓은 얼굴을 했다.
한참 뒤 당신 앞의 자리가 비었을 때 노인은 내게 앉으라고 권했다. 내가 거듭 사양하고 나서야 그는 아내 옆에 앉았다. 노부부는 나란히 앉아서 멀리까지 갔다. 가는 내내 그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바퀴가 철길을 구르는 금속성 소란과는 어울리지 않는 평온한 둘만의 세계였다. 덩달아 내 마음도 고요히 가라앉았다. 1호선에 무수히 오르며 매일같이 치러 왔던 내 전쟁들이 다 바보같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았다. 지하철은 정말 내게 나쁜 것만 주었나, 고통으로만 나를 길렀나. 그렇지는 않았다.
어느 날 교복 입은 학생이 열차 바닥에 구토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 칸 곳곳에 타 있던 승객 여럿이 가방에서 저마다 휴지와 물티슈, 비닐봉지 같은 것들을 꺼내더니 일사불란하게 모여들어 토사물을 순식간에 치우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흩어졌다. 한 청년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쓰러질 듯 바닥에 주저앉자 중년들이 다가와 마치 제 자식을 돌보듯 손을 주무르고 등을 쓸어주던 날도 있었다. 어떤 아주머니들은 내가 5분 정도 지도앱을 들여다보며 길을 알려주자 15분이 넘게 나를 칭찬하고 고마워했다.
지하철에는 정말로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사람이 모인 곳에 좋은 일이 있다면 나쁜 일도 있고, 나쁜 일이 있다면 반드시 좋은 일도 있다. 지하철이 나를 구역질하게 만들 때면 나는 여기에 좋은 것이라곤 단 한 포기도 자라날 수 없을 거라고 매도하지만 실은 그런 모든 순간에도 사랑이 실재한다. 나보다 훨씬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지고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조차 서로에게 기꺼이 친절하다. 그런데 나의 초라한 사랑은 어디로 숨어버렸나.
독일이었나, 영국이었나. 유럽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갔을 때 나는 고된 여행 일정과 시차에 못 이겨 지하철에서 앉은 채로 잠에 들었다. 몇 분쯤 잤을까. 어느 현지인이 내 어깨를 흔들어 깨우고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 무슨 문제가 있는 거니? 나는 괜찮다고 손을 설레설레 저었다. 그가 못내 찜찜한 얼굴로 떠나고서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친절은 고맙지만 걱정할 일은 아니에요. 한국에서는 다들 지하철에서 잠을 잔답니다. 남녀노소 잠이 부족하거든요.
1호선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술을 밤새 진탕 마시고 널브러져 있다가 첫차를 타든, 그날 할 일을 가까스로 다 해내고 뛰어서 막차를 타든 절대 나 혼자 열차에 오르는 법은 없었다. 언제 어느 때든 적어도 몇 사람은 지하철에서 저마다의 삶을 시작하거나 마무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같이 참 바쁘고 고되게들 산다. 바쁘고 고되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날을 세우고 미워할 수도 있지만 서로의 지친 어깨와 무거운 눈꺼풀을 연민할 수도 있다. 그럼 나는 무엇을 골라야 할까.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원래 어렵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어진 만큼이나 서로를 미워하게도 만들어졌다. 보다 보면 단점도 보인다. 부대끼다 보면 자연스레 미워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남이 잘 씻기고 빗겨놓은 남의 집 개의 윤기 나는 털을 예뻐하는 건 얼마나 쉬운가. 남의 손을 꼭 붙잡고 다니는 남의 집 아이의 얌전한 걸음을 귀여워하는 건 얼마나 쉬운가. 사람 없는 곳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건 얼마나 쉬운가. 얼마나 쉽고 무용한 일인가.
내가 심리학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노교수가 강의 중에 말했다. 심리학을 하려거든 사람을 사랑하고 연민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게 아직도 어렵다. 나는 인간으로서도 심리학도로서도 아직 갈길이 멀다. 그래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는 알 것 같다. 사랑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부대끼고 산뜻하지 않은 살냄새를 맡고 부시럭대고 중얼대는 소리들을 들으면서 해야 한다. 그러니까 바로, 출퇴근 시간대 1호선의 지옥 같은 만원 열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