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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에가는길 Jul 01. 2024

자두는 여름이 제철이라지만

어느 대학원생의 일기


2023년 7월,

너무 더워서 더운 날의 기억이 났다.



 자두는 지금이 제철이다. 제철 과일 따져가며 사 먹지는 않지만 자두의 제철이 여름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자두를 한 봉지 받았던 여름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두를 먹을 때마다 이름 석 자를 떠올린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울렸던 같은 반 애의 이름이다. 그때의 우리는 제법 친구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애를 친구라고 칭하기가 머뭇거려진다.


 애들은 절대 어른들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쉽거나 어렵거나의 문제가 아니고 그야말로 완전한 예측불가의 생물체들이다. 애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존재들일 수도 없다. 그 어른들의 씨앗이니까.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어른들 사이에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는 한 애들 사이에도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은 어른들이 언제 어떻게 개입해서 무슨 애를 쓰든 대체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들이 삼삼오오 모였는데 잘들 지냈다면 그건 어울린 기간이 너무 짧았던 것이거나 사실 그다지 잘 못 지냈음에도 어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일 따름이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았을 때 모두가 다 똑같이 잘 지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대충 뭉뚱그리자면 푸르고 따듯하고 좋게 기억될 그 모든 순간들에도 어김없이 문제는 있었다. 그애는 내 유년에 점처럼 박힌 그런 문제의 일종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빼짝 마른 몸. 돌이켜 보면 옷차림이 좀 꾀죄죄했던 것도 같고.

 다른 애들이 하는 밝고 선명한 색깔의 옷이나 번떡이는 신발, 예쁜 머리띠나 모자 같은 것은 안 했다.


 곰곰이 머릿속에 그려본 그애는 도통 웃지 않는다. 입꼬리와 눈썹이 조금 쳐진 채로 그냥 그렇게 서 있다. 그애에 대한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당시의 그애에게 중요했을 정보들이 당시의 나에겐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좀 둔한 편이었다. 같은 반 애들의 옷약간 더럽거나 숙제 준비물을 잘 못 챙겨 오거나 부모님이 한 분만 계시거나 한 분도 안 계신 그런 것들을 잘 알지도 못했고 신경도 안 썼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꽤 중요하게 느껴지는 몇 가지 사항들을 따져보자면, 그애는 친구가 나 말고는 별로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애가 같이 어울리던 다른 애들을 기억해 낼 수 없으니까. 내 다른 친구들도 그애와는 별로 안 친했다. 나는 교실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얘랑 놀다가 쟤랑 놀다가 했지만 걔는 계속 나하고만 놀았다. 나는 좀 둔했기 때문에 그애의 유일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애와 집이 가까워 하교를 같이 했지만 그애가 별로 재미없었다. 뭘 물어보면 그애는 대답하기 전에 꼭 "너는?" 하고 되물었다. 내가 답을 하면 그제야 "나도!"라고 했다. 그애는 좋아하는 색깔도, 좋아하는 연예인도, 혈액형마저도 나랑 다 똑같았다. 에이, 뻥치지 마. 아니야, 진짜야. 나는 그애의 모든 대답이 시시해서 곧 그애가 시시해졌지만 그래도 그애는 번번이 그렇게 했다.


 하루는 그애 집에 갔다. 그때 우리가 살던 동네는 좀 못 사는 동네였고 그애의 집은 그 안에서도 좀 못 사는 집이었다. 우리 집도 뭐 번듯하지 못했지만 그애를 따라 그 집에 갔을 땐 아주 작고 좁고 덥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둑한 옥탑방 안쪽엔 그애 아버지가 웃통을 벗고 앉아 부채질을 하고 계셨다. 놀러 오라기에 가긴 갔다만 우리는 거기서 그다지 할 게 없었다. 웃통 벗고 앉은 친구 아버지가 계신 좁은 옥탑방에 들어가기 민망스러웠다.


 그래서 애매하게 서 있다가 그냥 떠났던 것 같다. 거기서 별로 멀지도 않은 우리 집에 가려고 나는 계단을 내려왔다. 얼마 안 걸었을 때 그애가 뛰어와서 나를 불렀다. 아니면 부르지도 않고 붙잡았었나. 그애는 검은 봉다리를 내밀었다. 자두가 한가득 담겨있었다. 나는 약간 당황했지만 그냥 받았다. 뭐, 자두는 웬만하면 맛있으니까. 그애는 자두를 주고 다시 집에 갔다. 그때 나는 돌아가는 그애의 뒷모습을 잠시 보고 있었을 거다. 그날 후론 기억이 없다. 시시하게 마저 어울려 다녔으려나. 그애는 곧 전학을 갔다. 그랬던 것 같다.


 자두는 맛있는 과일이지만 얄궂은 구석이 있다. 신 자두는 너무 시고 단 자두는 또 너무 단 것이다. 제철이라는 여름에 먹어봐도 똑같다. 그래도 나는 자두가 웬만하면 맛있다고 기억한다. 실은 양극단 사이에 절묘하게 놓인 것들만이 맛있지만 나는 내가 먹은 모든 자두들을 대충 뭉뚱그려 적당히 달고 시고 맛있지, 한다. 그때 받은 한 봉지 자두의 맛이 어땠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자두를 볼 때마다 나는 그애를 괜히 한번 떠올려 보고 또 괜히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그애는 나한테 너무 단 자두였나.

 나는, 그리고 다른 애들은 그애한테 너무 신 맛이었을까.

 그래도 그애한테도 이제는 모든 게 뭉뚱그려져 그런대로 괜찮은 시절로 남았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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