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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에가는길 Jul 15. 2024

최악의 버스데이 걸

어느 대학생의 일기


2020년, 생일



 우리말에는 버스데이 걸이나 버스데이 보이 같은 표현이 왜 없을까? 그나마 ‘생일자’라는 말이 종종 쓰이지만 그건 또 다르다. 어감도 용법도 충분히 요란하지가 않다. 만약 그런 표현이 있었다면 난 그 단어를 쓰지 않는 마지막 한국인 중 하나였겠지. 생일을 별로 안 좋아하고, 그걸 요란하게 꾸미는 행위는 더더욱 안 좋아하니까.


 오늘은 내 생일이다. 잊고 있었는데 지난주에 동기들이 갑자기 약속을 잡으려고 호들갑을 떨길래 왜들 이러지 의아해하다 문득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놀자던 날짜가 내 생일 하루 전인 어제였던 것이다. 나는 그걸 모르는 채로 거절했었고 이내 깨닫게 되었으나 그래도 다시 한번 거절했었다.


 그러자 결국 애들이 그냥 솔직하게 말해왔다. 네 생일파티 하려는 거니까 좀 나오라고. 거기다 대고 또 거절을 했고 다음 달에나 한번 보자고 했다. 별로 나가고 싶지 않았고 내 생일파티라면 더더욱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제 그만 생일이라는 것이 이 사회에서 많은 의미를 갖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챙겨주려 하는 친구들을 굳이 물리쳤다는 게 좀 마음에 걸린다.


 나는 생일과 생일파티를 적어도 기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처음부터 싫어했다. 첫째로 저녁에 반드시 온 가족이 모여 앉아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우리 가족은 누구 생일이 되면 꼭 생일상 앞에 모여서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전통이 있었다. 성인이 되면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지만 엄마의 고집으로 기어이 오늘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그 파티의 좋은 점이라고는 엄마가 잔치상에만 큰맘 먹고 올리는 딸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뿐이었고 나머지는 다 싫은 부분이었다. 어차피 노래 한 곡 억지로 다 부르고 나면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흩어질 거면서 왜 모여야 하는 거지? 노래란 것도 끔찍하기 짝이 없다. 사랑하는 000,라는 소절이 단연 최악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싫어서 나는 늘 그 부분을 부르지 않고 어물쩍 넘겼다.


 생일이 싫은 두 번째 이유는 그냥이다. 굳이 따지자면 아웃사이더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이겠지. 원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건 조금씩 다 싫어다. 그래서 왁자지껄한 생일 축하로부터 늘 도망치려 했다. 그런데 너무 유별난 인간이 되기는 또 겁이 나서 소심한 저항만 했다. 메신저 프로필에 생일이 표시되지 않도록 설정한다든지, 생일 당일에 사람들이 내 SNS 피드에 축하메시지를 남기지 못하도록 막아둔다든지.


 그래도 챙기는 걸 좋아하는 이들은 어떻게든 챙기더라. 사람들의 그런 거침없는 침범이자 접근 행위를 고마워해야 할지 기분 나빠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고맙다고 했다.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어차피 이젠 SNS도 안 한다. 시간이 더 흐르고 인간관계가 좁아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겠지. 그땐 비로소 고요해질 수 있을 거야.


 그 밖의 수많은 이유들을 하루종일도 말할 수 있다. 생일의 모든 것 모든 부분이 다 싫다. 나는 심지어 케이크조차 좋아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초콜릿 케이크는 입에 대지도 않을 정도로 싫어한다는 걸 가족들은 오래도록 발견해주지 않았다. 아니면 알면서도 그냥 사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오빠가 초콜릿 케이크를 좋아하니까.


 뭐 그럴 수 있다. 나는 어차피 케이크를 안 좋아하니 케이크를 좋아하는 오빠 입맛에 맞춰서 사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그냥 중학생 자식보다는 고등학생 자식이 더 중요했는지도.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나보다 오빠가 더 중요한 자식이었는지도……. 생일파티를 오빠는 항상 좋아했다. 이 가족의 방식에 오빠는 늘 딱 맞았고 나는 늘 안 맞았다. 그럼 누가 문제야?


 가족끼리의 생일파티에서 “오늘은 최악의 생일이야”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엄마는 기껏 챙겨줬더니 그딴 말을 하냐고 역정을 냈고 그럼으로써 진실로 최악의 생일 비슷하게 되었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 말을 뱉기 전까진 사실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었을 것이다. 뭔가 나쁜 일이 있었던 건 맞지만 잘 기억도 안 나는 걸 보면 별 것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나는 그냥 심통이 나서 가족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생일이 싫고 생일파티가 싫어서 싫어하는 가족들에게 화풀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생일은 내가 태어난 날이다. 내가 부모로부터 태어나 이 가족의 일원이 된 바로 그날이다. 나는 그걸 축하받고 싶지 않다. 가족끼리 생일파티를 한다는 건 네가 태어나 이 집에 살게 된 걸 환영한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아서 난 거기에 장단 맞추고 싶지가 않다.


 가족이 싫다. 가족들은 내게 나쁜 것을 많이 주었고 내게 잘 맞지 않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 모든 불행이 가족들로부터 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내 못되고 이기적인 성정의 일부는 처음부터 그냥 존재했다. 엄마는 이런 나를 설계해서 낳은 적 없다. 나는 우연히 이렇게 태어났다. 그 사실에 죄책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낀다. 내 신체는 엄마에게서 왔지만 내 영혼은 허공에서 왔다.


 아무튼간에 그날 내가 했던 말에는 어폐가 있다. 그 생일이든 이 생일이든 최악은 아니다. 생일에 최고 최악이랄 게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난 그런 걸 따질 정도로 생일에 기대하는 것도 없다. 최악이라는 딱지를 굳이 어딘가에 붙여야 한다면 내 이마가 적당할 것이다. 축하를 받으면 두드러기가 난다는데, 이보다 나쁜 생일자가 어디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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