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에가는길 Jun 24. 2024

등갈비 김치찜을 먹을 자격

어느 대학생의 일기


2020년 4월, 저녁 8시 9분.

오늘도 집에서 수업을 들었다.



 엄마가 등갈비 김치찜을 했다. 특식이다. 게다가 무려 쟁반에 흰쌀밥이랑 김치찜을 올려서 내 방문 앞까지 대령해 주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가족들과 같이 식사하지 않고 내 밥을 따로 챙겨 먹었던지라 이런 일은 낯설다. 학교에 안 나가고 집에만 있으니 엄마 밥상도 받게 되는구나. 낯설어서 그런가, 한술을 뜨니 마음 한 구석이 켕긴다. 내가 뭐라고 이런 상전 대우를 받나.... 김치찜을 직접 해다가 엄마한테 갖다 드려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인데 컴퓨터 켜고 앉아서 빈둥대다가 엄마가 날라주는 밥상을 받다니.


 집에 갇히게 된 걸 끔찍해하는 사람들과 달리 난 타의로 감금되었대도 큰 불만이 없었다. 원체 나가는 걸 귀찮아하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순간을 마주하고 보니 매일매일 나갈 곳이 있는 게 차라리 편한 것 같기도 하다. 수업도 집에서, 교수님과의 면담도 집에서, 과제도 집에서 다 하니 엄마 눈엔 내가 뭔가 대단히 바쁘게 사는 듯 보였던 모양이다. 그냥 할 일만 대충 하며 빈둥대는 대학생일 뿐인데. 내가 뭐 그리 잘나고 뭐 그리 하는 게 많고 내 미래가 뭐 그리 유망하다고 나의 부모는 이렇게 밥을 해다 주고 그 많은 돈을 일 년에 두 번씩 따박따박 내 등록금으로 들이붓고.......


 황송하고 송구해서 불편해진다. 나는 받은 게 있으면 줄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인간이다. 그래서 우리 집 환상의 동물인 '애교쟁이 딸'에 대한 생각이 또 불쑥 든다. 나는 평생을 무뚝뚝한 딸이었다. 타고난 성격도 별로 애교스럽지 못하거니와 오랫동안 가족들을 미워해와서 그랬던 것도 있다. 기원이 뭐고 이유가 뭐든지 간에 이제는 얼추 굳어진 부분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부터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게 그렇게 애교가 없냐느니 딸은 애교가 있어야 한다느니 염불을 외웠었다. 그의 오랜 염원인 셈이다.


 그땐 그게 그렇게 짜증스러울 수가 없었다. 왜 되도 않을 걸 당연하단 듯 바랄까 싶었다. 별로 화기애애하지도 않은 가정에 무뚝뚝한 딸을 낳아놓고는 무슨 애교를 내놓으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귀염성이 뚝뚝 떨어지는 딸로 변모하길 바라는 것보단 지금이라도 하나 더 낳고 이번엔 제발 쟤랑은 다른 애이길 물 떠놓고 기도하는 게 더 가능성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여전히 엄마의 바람은 택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젠 새삼스럽게 짜증날 것도 없고 가끔은 좀 안됐다 싶기도 하다. 자식이나 부모나 원하는 상대를 고를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니까.


 그래서 나의 부모를 위한 상상을 한 가지 해 본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안 될 것 같고(솔직히 되기도 싫다), 만약 우리 집에 애교쟁이 막내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술 취한 아빠 헛소리가 교리라도 되는 양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아요 그럼요 비위를 맞추고, 언성이 높아질 것 같으면 거실에서 재롱이라도 한 판 떨어주고, 엄마가 해준 그저 그런 저녁밥을 먹으며 호들갑스럽게 엄지를 치켜드는, 그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애가 우리 집 자식이었더라면. 그럼 다들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걔는 필히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울 아빠는 평소엔 참 좋은 아빤데 술을 많이 드셔서 가끔 그래, 언니야 누나야 우리집은 참 좋은 집이다, 그치? 걔는 그런 식으로 뻔뻔스럽게 우리집을 훌륭한 가정으로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면 정말로 훌륭한 가정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덜 화내고 덜 슬퍼하고 서로에게 더 자비롭고 더 금방 웃을 수 있게 되고,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부끄러움도 미움도 다 눈 녹듯이 사라졌을지도. 그렇게 되지 못하고 여태 삐걱대는 건 결국 그런 자식이 없었기 때문인가. 하늘이 애교둥이 막내를 내려주지 않았으니 그건 결국 내가 해야 했을 역할이었던 걸까. 내가 아빠를 하자 있는 아빠라고 생각하듯 나 역시 하자 있는 자식인가.


 아빠랑 나는 대화를 안 한다. 우리는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서로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 물론 이건 내 입장이고 아빠는 그냥 둘 다 무뚝뚝해서 관계가 살갑지 않은 것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늘 의식적으로 아빠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가능한 한 아빠를 보고 듣지 않을 수 있도록 생활을 조정한다. 아빠가 거실에 있는 동안은 숨을 죽인 채 방 안에 머물고 아빠가 잠든 새벽이 되어서야 나가서 밥도 먹고 물도 떠오고 한다. 한 집에 사는 남인 거다.


 내가 그럼으로써 아빠의 인생을 외롭게 만들고 있는 걸까 는 생각을 또다시 했다. 이른바 '한 중년의 삶을 망치고 있는 듯한 죄책감'이 내 인생에서 한 구석을 차지하기 시작한 지가 좀 되었다.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다가도 또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가족이라면 서로를 외롭지 않게 하고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는 의무를 모두가 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서로가 서로에게 공평하게 아는 척을 하지 않는 지금, 이 의무는 나만 저버린 것이 아니고 쌍방으로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아빠도 나를 즐겁게 만들지 않는데 왜 나는 아빠를 즐겁게 해야 하나? 아빠는 우리한테 잘못한 게 많고 재미도 없는 아빠인데 왜 나만 애교 있는 딸이 되어주어야 하느냐고?  그러나 이런 생각은 결국 어디로 가냐면 돈으로 간다. 아빠는 돈을 벌어다 주었지. 밥을 먹여주고 잠잘 곳을 제공해 주고 학교도 보내주었지. 이미 많은 걸 받아버렸고 무엇 하나 돌이킬 수 없다. 아직 갚은 것도 없다....... 저들이 늙고 병들면 차차 갚게 되겠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면 또 머리가 지끈거린다. 돈만으로 되는 일들도 아닐 것 아닌가.


 좀 더 평범한 자식이 되어있을 미래의 나를 떠올린다. 부모를 간병하고 돈도 대고 까마득한 과거 따윈 이미 기억도 나지 않는 척하고 있을 나.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자식으로서 인간으로서 할 몫을 해내려고 애를 쓰고 있을 테지. 오늘 등갈비 김치찜을 받아먹지 않았으면 그때 들여야 할 수고가 한 숟갈 덜어졌으려나. 몰라, 벌써 다 먹고 소화시킨 지 오래다. 늦었다. 모든 게 다 늦었어.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어찌나 전전긍긍하며 사는지. 우리는 모두 태어나게 해달라고 빈 적도 없고 그저 태어났으니 살 뿐인데 왜 평생을 불안해하도록 만들어졌을까? 나는 종교가 없어서 원죄 같은 것도 믿지 않고 유한함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인간이 영원히 사는 존재라면 나는 서두르지 않고도 빚을 다 갚고는 부모를 훌훌 버리고 나만의 세상으로 날아갈 텐데. 부모의 삶도 나를 키우다 저무는 대신 몇 번이고 다시 새롭게 시작될 테고.......

이전 02화 적어도 손절 아닌 익절이었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