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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에가는길 Jun 10. 2024

너의 장례식

어느 대학생의 일기


2019년 9월, 밤 11시 30분.

비가 억수같이 내리다 그쳤다.



 A가 죽었다.

 나는 검은 옷에 그 애의 죽음을 묻히고 돌아왔다.


 낮에 전화가 왔다. 후배 K였다. 일을 하고 있었고, 전화가 오는 건 알았지만 받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와 다르게 전화는 몇 번을 더 걸려왔다. 부재중 알림과 함께 근거 없이 불길함이 고개를 들었다. 전날의 기억. 동기에게서 열 통이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는데 왠지 시답잖은 장난일 것 같지 않아 가슴이 서늘해지던. 그 전화는 별것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의 전화는 별것이었다. "언니, 이거 보면 바로 전화해". 아, 오늘이구나. 바로 전화를 걸었다. 소식 들었어? A 오빠, 찾았대. 죽었대. 흐느끼는 목소리에 현실이 아득하게 멀어진다. 언젠가 우리의 모교 근처에서 같이 분식을 먹었던 날이 스쳐갔다. 나 얼마 전에 엄청 우울했었어. 심각하게. A는 웃으며 말했고 그래서 나는 모든 게 다 지나간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웃음으로 감춰봐도 못내 가슴을 철렁이게 하던 뉘앙스를 떡볶이랑 같이 꿀꺽 삼켰었다.


 너는 이번에도 웃어넘겼어야 했다. 이것도 지난 일이 되었어야 했다. 그래야 했을 텐데. 한참 전에 먹은 떡이 이제 와 목구멍에 걸린다.


 전화를 끊으니 영문 모를 울음이 났다. 이상하게 눈물은 나는데 슬프지가 않았다. 30초 정도 울고 얼굴을 닦아냈다. 주변에 연락을 돌리고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담당자에게 마감 기한을 늘려달라고 부탁하고, 씻고, 한참이나 옷과 신발을 골랐다. 엄마, 이게 낫나? 구두 신어야겠지? 이런 거 신어도 되는 거야? 행색이 어떤가 거울을 본다. 입으라는 대로 입고 신으라는 대로 신었는데도 평소의 나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해진다. 휴대폰으로 장례 예절을 검색해 달달 외우며 간다. 왼손을 오른손 위로, 왼 무릎을 먼저 꿇으면서……. 그러는 내내 나는 A의 어렴풋한 존재를 인식해 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A의 부재가 실감나지 않는 게 아니었다. 나는 A의 존재를 감각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게 영 이상했다.


 지하철에서 내린다. 동기와 만나고, 우연히 마주친 후배 둘과 택시를 같이 탄다. 빗길을 택시가 달린다. 차가 더럽게도 막혔다. 다들 죽은 친구에게 가는 길일까? 그렇지 않겠지만 왠지 그런 것만 같았다.


 봉투에 조의금을 넣고 분향소에 들어섰다. 상주 노릇을 하는 후배의 안내에 따라 어리숙하기 그지없게 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고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유족께 고개를 숙인다. 절차에 어긋날까 내내 눈치를 보느라 묵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의젓한 후배 녀석의 하는 양을 열심히 눈으로 훔치며, 겨우 어머니의 손을 잡는다. 우리 A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전에 네 세례명을 들었던 것도 같은데, 뭐였더라. 장례는 천주교식으로 치러져 분향이니 절을 하는 방법 따위를 외운 게 무색해졌다. 나는 그냥 고개만 숙였다. 기도는 못 했다. 눈물도 더는 안 났다.


 마치 성능이 아주 나쁜 로봇이 된 것만 같았다. 주인이 있다면 이 녀석 왜 이래, 왜 이리 빠릿빠릿하지가 못 해, 하고 답답해 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손을 한두 번 마주 잡았던 것 외엔 내가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뻣뻣하고 무표정한 주제에 모든 게 어설픈 로봇은 얼떨떨하게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제야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검고 핼쑥한 얼굴들. 상이 차려져 있으면 밥을 먹어야 하는 거겠지. 국물을 한술 뜨고, 좋아하지도 않는 전을 한두 점 먹고, 물도 마시고, 떡을 베어 물었다. 육개장은 맵고 떡은 밍밍해서 남기고 싶었지만 다 먹었다. 목이 막히지는 않았고 그냥 맛이 없었다. 내가 멀뚱히 앉아있는 동안 성능 좋은 이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고 조문객을 맞았다.


 A는 어느 날 집을 나섰다가 영원히 돌아지 않았다. 3일을 실종됐다가 발견되어 부검을 했고, 이젠 관에 들어가야 한다. 강아지같이 순하고 해맑게 웃는 얼굴은 사라지지 않고 영정으로 박제되었다. 하도 환한 웃음이라서 나는 즐거워졌다. 귀여운 놈. 그 애와 보낸 무수한 날들이 다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그 웃음만은 선명하다. 문득 나는 그 웃음이 정말 내게 익숙한 것이었나 생각해 보았다. 네가 정말 내 곁에 있었가민가했다. 너는 내게 뭐였지? 네가 살아있을 때는 한 번도 그걸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네가 죽으니 그 생각만 하게 된다. 너랑 나는 친했나? 나는 울 자격이 있나? 울어야 하는 사람인가? 너와 보낸 시간을 저울에 올렸다가 내렸다가 한다. 네게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 우리 친했니? 그러면 너는, 아, 뭐야 누나. 나 서운하다. 실망한 척 눈을 흘길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로 실망할지도 모른다.


 한번은 너랑 노래방에 갔었다. 첫차가 뜨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기계에 몇천 원을 넣어놓고 졸음에 못 이겨 나란히 꾸벅꾸벅 졸았다. 그 꼴을 발견한 주인아저씨에게 쫓겨나듯 나오는 길이 참 머쓱했다. 지금 생각해도 쪽팔린 기억이다. 너랑 있는 시간이 다 즐겁지는 않았다. 누가 시킨 일을 밤새워가며 하느라 같이 욕을 삼켜야 했던 날도 있었고 잘 안 된 연애사를 괜히 털어놔서 더 구질구질해지던 날도 있었다. 대단한 주당들도 아닌데 쓸데없이 경쟁이 붙어 소주를 연달아 들이켰던 날에 넌 친구들에게 실려갔고 난 집에 가다 토했다. 항상 멋진 척을 하고 싶어 하던 나는 네게 멋없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그래도 너는 살갑게 나를 불렀다. 누나야, 누나야.


 그럼에도 네게 문을 활짝 열어두지 못했던 걸 기억한다.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나는 형편없는 인간이라서 네 지척에 있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스무 걸음 멀어져 버리곤 했다. 좁은 마음에 사람 들일 공간을 만드는 게 늘 어려워서.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냐는 타박도 어느 순간부턴 그리 따끔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이미 진작에 너를 잃어버렸다. 그래도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늘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안 됐다. 오랫동안 답장하지 않고 내버려뒀던 메시지엔 영영 대답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너로 인해 슬퍼해도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문을 열어도 들어올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자 방안이 못 견디게 싸늘해진다.


 상실 앞에서 서성이고 있으려니 길이 덜 든 구두코에 엄지발가락이 눌려 아팠다. 한참 발치에 두었던 눈을 들어보면 저기에 네 어린 동생이 있다. 동생이 있다고 네가 말했던가? 분명히 했을 것이다. 저 애가 저렇게 슬퍼할 줄 알았더라면 너는 죽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너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은 못 됐다. 너의 메시지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응, 잘 지내는 것 같아, 하는 대답이 보인다. 2년쯤 뒤에 또 함께 술잔을 기울이다가 네가 누나, 나 그때 죽으려고 했었다? 말하는 상상을 한다. 그때 너는 웃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웃게 하지 않지만 그래도 너는 자꾸 웃는다. 누나야, 나 그때 진짜 죽을 뻔했어. 짧은 상상이 끝나고 네 웃음이 습한 공기 속에 녹아내린다. 이제 너 없이 흘러갈 2년을 그저 기다려야 한다. 기억이 파도처럼 밀어닥치다가 부서져 사라질 때까지. 흠뻑 젖어버리기 전에 급히 작별 인사를 한다.


 인사를 한다. 하려다가, 끝내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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