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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보다 믿음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믿는 뇌

by 마싸

남편은 나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담배를 끊었다. 내가 담배 피우는 남자와는 만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여느 흡연인과 마찬가지로 담배가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 여기며 십여 년을 살아온 남편은 다른 스트레스 해소제가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술.




나는 술이 센 편이지만 술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20대엔 술을 엄청 먹었는데 술이 세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왜 그러고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술이 취하려고 하면 정신을 더 붙들어야 했기에 ‘술 취하면 기분이 좋다’라는 느낌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다. 오히려 불안했다. 필름이 끊기면 주사가 심했던지라 술을 마실 땐 긴장해야 했고 술 취하는 느낌이 들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한 우리는 늘 술을 마시면서 데이트를 했다. 담배를 끊어 헛헛한 마음을 술로 달랬던 남편은 이렇게 술 잘 마시는 여자와 결혼하면 함께 술을 마시며 지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술로 스트레스를 풀고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남편과 달리 난 정말로 술을 별로 안 좋아해서 함께 먹어주지 않았다.



"술이 맛있어?"

"스트레스 풀려고 먹지. 내가 담배도 안 피우는데, 술 아니면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

"술 먹는다고 스트레스가 해소 돼?"



아주 냉정한 인간인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을 제거해야지, 술을 마신다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건 아니라고 늘 입바른 소리를 해댔다.



요컨대 술을 마시는 행위는 스트레스 해소되는 느낌만 줄 뿐이지 몸은 여전히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결론이다. 술은 스트레스를 푸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중략) 단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술은 정말 몸에 좋지 않은데"라고 생각하며 마시지는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마음으로 술을 마시면 음주 행위 자체가 스트레스로 더해질 수 있다. 그러니까 어차피 마실 거라면 "이건 대뇌피질을 마비시키는 마법의 물약이다. 하하 어때, 즐겁지?"하고 낙관적인 기분으로 마시는 것이 좋다.
- 삶이 흔들릴 때 뇌과학을 읽습니다 p.146



그리고 내가 한 말이 영 틀리지는 않았다. 술은 뇌 건강에 썩 좋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 좋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법. 어떤 행위로 스트레스를 완전히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저 어떤 행위로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믿는 자체가 스트레스 해소에 간접적인 도움을 준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이 문장을 읽고 난 후 나는 달라졌다. 신랑이 술을 먹고 싶어 하면 함께 마시면서 '신랑의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술을 마신 후 (잘 취하지는 않지만) '기분이 좋아진다'라고 생각했다. 실실 웃어 보기도 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마실 때만큼은 술이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물약이라 생각하며 먹었다.




남편은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약을 매일 먹어야 해서 술을 거의 먹지 못한다. 단 하나 있던 스트레스 해소제를 잃어 삶의 재미를 잃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그에겐 또 다른 해소제가 생겼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비디오 게임과 주말마다 가족이랑 함께 (간헐적으로) 가는 야구장.



그래, 너의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면 난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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