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력이 먼저인 뇌
기분은 점점 가라앉고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가슴은 답답하고 한숨만 나왔다. 갑자기 울적해지고 허무함이 밀려왔다. '사는 게 재미없다'거나 '이렇게 살아서 뭐 하겠냐'는 냉소의 말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나를 괴롭히기 위해 자극적인 음식을 자주 많이 들이부었고 밤에는 잠을 자지 않으려 핸드폰을 의미 없이 스크롤했다.
오랜만에 그분이 오셨다. 그동안 나름 잘 관리하고 있다고 여겼지만 우울감은 절대 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오셨으니 잘 보내드리는 수밖에...
뇌과학을 알기 전 무기력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 '강제적인 조치'로 행동을 하게 해야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난 '아이들 아침 차려주기'를 선언하고 인증하는 것으로 조치를 취했고 그렇게 무기력했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났다. ("무기력을 어떻게 관리하셨어요?" - 자세한 내용은 이 글에 있습니다~ ^^)
무기력에 빠진 개는 자극을 피하기 위한 능동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따라서 그들이 행동에 의해 자극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배울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그들에게 그 가능성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강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문자 그대로 개들의 목에 목줄을 걸고 잡아당길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숨은 붙어 있으니 살아야겠고 中
이후에 독서를 본격적으로 하게 됐고 뇌과학을 접할 수 있었다. 뇌과학을 공부하다 보니 당시 내가 했던 방법이 너무나 뇌과학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즐거워진다'는 게 뇌과학적으로 증명된 말인데 이처럼 행동을 먼저 하면 기분이 고양되고 즐거운 감정이 따라온다.
의욕이 생겨서 하는 경우보다 일단 시작하고 나니 의욕이 생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중략)
우리 뇌가 출력을 중시하도록 설계된 이상, 저는 항상 출력에 신경 쓰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나답게 살고 싶어서 뇌과학을 읽습니다 p.287
※ 출력은 행동을 말한다.
예전에 우울하거나 무기력했을 땐 화장실조차 가기 귀찮아서 방광이 터질 때까지 버텼다가 갈 정도로 꼼짝도 하기 싫었다. 빨리 기분이 나아지기만을, 행복한 감정이 생기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젠 기분과 감정이야 어떻든 일단 움직인다. 이제 알기 때문이다. 뭔가를 하고 싶은 기분이나 감정은 몸을 움직이면 생겨난다는 걸.
괜찮은 상태였을 때 벌려놓은 일들이 너무 많았다. 하루 7 천보 인증, 인풋(독서) 인증, 주 2회 브런치 발행, 독서 모임, 강의 듣기를 포함해 서평해야 할 책들도 수두룩했다. 그분이 오시면 이 모든 게 상당히 귀찮고 하기 싫어 미칠 것 같은 일들이 되지만 하나도 빠짐없이 실행하고 인증했다. 하기 전에 너무너무너무하기 싫다는 생각이 가득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하게 된다. 하고 난 후에는 성취감이 생겨 한결 기분이 나아지기도 한다. 일단 몸이 움직이면 마음은 따라온다.
회사 가까운 곳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점심을 대충 때울 수도 있지만 일부러 거리가 있는 식당으로 산책길을 통해 걸어가서 먹고 돌아왔다. 걸으면서 주변의 풍경들을 보며 과장해서 감탄하고 사진을 찍었다. 걸으니 기분이 좋아졌고 이 기분을 나누고 싶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단톡방에 올렸고 보고 좋다고 말해주니 그것 또한 기분이 좋았다.
우울감은 불쑥불쑥 찾아온다. 이 우울감에는 원인과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원인이 해결되기를, 우울감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려선 안된다. 보통 해결될 수 없는 이유일 것이고, 이유야 무엇이든 그냥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해야 한다.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면 마음은 또 좋아진다.
그리고 다시는 우울감이 찾아오지 않겠지라는 기대를 하면 안된다. 그렇다고 찾아오는 우울감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그분을 잘 보내드리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괜찮다. 나는 계속 좋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