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년~1616년)는 그의 여러 작품에서 베로나를 주요 배경으로 등장시켰다. 이로 인해 베로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이 살았던 곳뿐만아니라 <베로나의 두 신사>, <말괄량이 길들이기>까지 셰익스피어의 낭만적소설 속 무대가 되는 로맨틱한도시로기억하게 되었다.
언덕 위 숙소에서 내려다 본 베로나 시내, 이 뷰 때문인지 이번 여행 중 가장 마음에 든 숙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셰익스피어는 단 한 번도 이탈리아 베로나를 방문한 적이 없단 사실이다.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를 비롯한 외국을 실제로 방문한 적이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 정설인데, 셰익스피어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일부만 남아 있어 그가 정확히 어디를 여행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그가 이탈리아를 방문했다는 기록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더 붐볐던 피렌체와는 달리 고즈넉하면서도 중후함이 느껴졌던 베로나
셰익스피어 시대의 영국은 이탈리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로, 문학, 예술, 건축에서 혁신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곳이었으며,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큰 영감을 주었기에.
특히, 이탈리아는 정열적이고 극적인 이야기들이 풍부한 곳으로 인식되었고, 이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신비롭고 매력적인 세계를 선사하기 충분했기에 셰익스피어는 더욱 이 도시를 풍부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작품의 주인공들이 사랑하고 갈등하고 비극적 운명이 전개되는 이상적인 배경으로 활용했으리라.
고풍스러운 중세의 거리에 현대식 노천카페가 즐비했던 에르베광장(Piazza delle Erbe)
그 당시 베로나와 같은 이탈리아 도시들이 영국 독자들에게는 실제와 상상의 경계에 있는 신비로운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러한 배경을 통해 셰익스피어는 관객들에게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무대를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해가 저물자 거리엔 불빛들이 하나둘 점등되고, 도시의 무드는 더 짙어졌다.
내가 이번 여행을 통해 다녀온 베로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은 당시의 무드가 고스란히 잘 박제된 듯, 중세 요새도시로서의 면모를 잘 지키고 있었다.
전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줄리엣의 집>, 특히 가슴 부분만 윤이나는 이유는 바로 사랑과 행운을 기원하며 줄리엣 청동상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는 전통 때문이라고.
이에 더해 베로나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중세, 르네상스,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과 도시 계획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각 시대의 역사적 연속성을 보여주는 뛰어난 예로서 건축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도시 자체가 2000년에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웠던 베로나. 베로나를 가로지르는 아디제강에서 매력적인 야경 한 컷.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로마 시대 유적인 베로나 원형극장(*아레나 디 베로나, Arena di Verona). 기원전 1세기에 지어진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으로, 이탈리아에서 콜로세움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 오늘날에도 오페라와 같은 대규모 공연이 열리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매년 여름 6~9월에 열리는 오페라 축제로도 유명한 Arena di Verona,
우리는 오늘밤 바로 이곳에서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가 작곡한 이탈리아 오페라 아이다(Aida)를 볼 예정이다. 웅장한 스케일과 감동적인 음악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아이다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는 4막의 오페라로 이 작품은 파라오 시대의 이집트에서 펼쳐지는 로맨스와 갈등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전쟁과 사랑, 의무와 개인적인 감정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운좋게 우리가 머물렀던 기간에 가장 보고팠던 '아이다'를 공연하다니..
사실 이탈리아어로 노래하고 연기하기에 전혀 해석 불가이긴 해도 미리 보고 간 줄거리와 해설을 기반으로 아름다운 선율을 즐기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6월에 이탈리아 북부 여행을 기획한 첫 단초도 바로 6월부터 시작되는 이 한밤의 노천 오페라를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대 콜로세움에서 즐기는 한밤의 오페라, 상상만으로도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하루종일 가르다 호수를 여행하고 돌아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우리는 미리 예매해 둔 좌석에 앉아 막이 오르길 기다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