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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혜 Jun 29. 2024

얼렁뚱땅 졸업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수능 시즌이 오기 전. 다들 수시 준비로 바쁜 시기였다. 나는 어느 학교를 가야 되는 걸까, 한참을 고민하던 중에 어느 전문학교의 애동물학과 신설 광고를 보았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본 것인데, 순간 홀린 듯이 들어가서 정보를 확인했다. 서울에 있는 곳이었는데, 천안에서 서울까지 가기엔 먼 거리였다. 창피한 일이지만, 나는 공부를 못 했다. 어쩌면 못 했다긴 보단 안 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내가 가고 싶은 학과는 국어국문학과 아니면 문예창착과였는데, 그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한 때 꿈이었던 사육사를 생각했다. 당시에 앵무새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 좀 두렵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약을 먹고 있고, 서울까지 올라가서 언제 천안에 있는 병원에 올 수 있는 걸까. 나는 지금 만난 의사 선생님이랑 잘 맞는데, 이 분 아니면 다른 선생님 약은 처방 못 받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천안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던 것 같다. 정겹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난 다는 것은 도전과도 같았다. 아무튼 그래도 나는 부모님과 상의를 하고 전문학교에 면접을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학교에 면접을 보려면 학생기록부를 제출해야 됐다.


나는 담임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서 팩스로 원서를 제출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면접은 가을 초에 봤던 것 같다. 면접을 보러 간 당시에 조퇴로 일찍 빠졌는데, 내가 담임 선생님께 하던 말이 생각난다.


선생님 저 너무 떨려요. 잘할 수 있을까요? 응, 잘할 수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어깨를 토닥여주시던 선생님의 손길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때 많이 안심했던 것 같다. 공황장애는 올 일 이 없을 거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나를 침착하게 다스렸다. 그렇게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짧은 시간에 강아지 훈련도 해보고 단체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가슴팍에는 응시표 명찰을 달고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당시 나는 훈련사에 부푼 꿈이 있었기 때문에 훈련과를 지원했다. 떨리는 마음을 이끌고 면접관 앞에 앉았을 때, 아주 유명한 훈련사 한 분이 앉아계셨다. 총 세 분께서 내 지원서를 넘겨보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곳에 지원한 이유와 왜 훈련과를 가고 싶은지 여쭤보셨다. 강아지는 키우지 않지만, 앵무새를 훈련시키고 있다는 순진한 말을 던졌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그 말에 웃음을 흘리던 면접관의 얼굴이 생각난다.


그런데 나는 학생부에 적혀있는 교과목의 등급이 신경 쓰였다. 쪽팔렸다. 공부 안 해서 성적 엉망일 텐데. 분명 공부 안 하는 친구네.라고 생각하겠지. 다른 사람 생각을 넘겨짚는 안 좋은 버릇이 튀어나왔다. 면접에 신경 써야 되는데, 공부 안 해서 엉망인 성적을 신경 쓰는 꼴이라니. 하찮았다.


아무튼 나는 이곳에서 내 꿈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장황한 말들을 늘어놓고 면접을 끝냈다. 그때 딱 하나 잘 한 건 단정한 교복을 입고 갔다는 것이다. 공부는 못 하지만 평범하고 조용한데, 단정한 학생. 바른 이미지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3년 동안 선도부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공황 장애나 불안 장애 없이 면접을 잘 마쳤다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약도 미리 챙겨서 먹기도 하고, 공황이 오지 않도록 숨을 최대한 골랐었다. 면접을 잘 끝낸 뒤 기차를 타고 천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대망의 결과 날, 합격 발표가 떴을 때, 두 눈을 의심했던 것 같다. 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저 합격했어요. 어, 그래. 축하한다. 잘 됐네.


부드러운 어조와 흐뭇하단 아빠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 뒤로 나는 아이들이 수시 준비를 할 때 시간이 남는 친구들과 모두의 마블을 하거나,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모의고사 날이면 손을 덜덜 떨다가도 진정이 되어서 엎드려서 잠을 잤다.


그래도 그때 내 주변에 앉아있던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수다를 떨고 놀면서 즐겁게 보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신라면을 부수어먹기 위해 가방에서 라면을 꺼낼 때였다.


민혜야, 같이 먹자. 그다지 친하지 않은 친구들이 나를 둘러싸고 앉았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지만, 친구들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될지 머릿속을 빠르게 굴리던 찰나였다.


근데 민혜는 수시 준비 안 해?


부반장의 물음이 들려왔다.


아, 나는 이미 학교 붙었어. 전문학교인데 애동물학과라고. 헐, 진짜? 아, 그래서 여유롭게 있던 거구나. 아니 나는 영화도 보고 놀길래, 궁금했어. 부럽다.


그 말에 그저 웃어넘겼다. 아이들이 나에 대해 전혀 궁금해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라면을 다 부셔먹고 잘 먹었단 이야기가 돌아왔다. 그 뒤로도 종종 선생님들의 물음이 들려왔다. 너는 수시 준비 안 하니? 그럴 때면 옆에 있던 친구가 대신 대답해 줬다. 쌤, 얘는 벌써 학교 붙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전문학교가 생소할 때라 다들 어리둥절했다. 이 말들을 초등학교 동창 친구에게 전했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있었다.


아니, 나는 되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학교에 네가 붙은 학교 광고 붙어있길래 내가 애들한테 자랑했어!


입꼬리가 씰룩씰룩 올라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때서야 잘 한 선택이라고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학과를 갈 수 있게 지원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12월 달에 지하철을 타고 전문학교에 가서 입학식을 치렀었다. 레드벨벳이 와서 입학문을 열어줬는데, 너무 찬란하고 예뻐서 넋을 두고 봤던 것 같다. 그때 양 옆에 앉아있던 친구들과 번호를 나누고 헤어진 기억이 난다.


처음으로 설렘이란 마음이 찾아왔었다. 늘 불안하고 강박적이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가서 높은 건물과 건물에 붙어있는 광고판, 유명한 아이돌을 접했을 때, 두근 거림을 참지 못 했다.


아, 내가 진짜 새로운 곳에 가는구나. 또 다른 시작이겠네.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졸업식 날, 수원에 살고 계시는 이모가 찾아오셨다.


나의 졸업식을 축하해 주시기 위해서였다. 그날 나는 가족에게 말했다. 나 친구 없어서 사진 별로 못 찍을지도 몰라.


내 착각이었다. 내가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과 사진을 찍으며 눈물을 훔쳤다. 같이 모두의 마블 게임을 했던 친구와 사진을 찍었는데, 내가 눈물을 보이자 털털하던 그 친구도 눈물을 보였다.


뭐야, 민혜 울어? 서로 웃을 듯 말듯한 표정으로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도 사진을 남겼다. 그 친구는 항공과를 준비하던 친구였는데, 내 말에 늘 웃어주던 친구였다. 그 친구를 마지막으로 사진을 다 찍고 밥을 먹으러 갔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아빠의 말이 들려왔다.


민혜 친구 많던데? 네? 아...


바보 같이 그렇다고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소심하고, 말이 없던 내성적인 나에게도 어느 한편에는 나의 친구들이 있었다. 단지 친하지 않다고 해서 친구가 아니라, 같이 밥을 먹고, 같은 수업을 듣는 소중한 친구들.


나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추억을 만들던 이들이기에, 더없이 소중했다.


눈을 뜨면 내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내가 먼지가 되어 사라지던지. 늘 같은 마음으로 살아왔었는데. 그날 따라 살아보고 싶단 마음이 생겼다. 어제의 나와 다른 오늘의 모습에 신기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조금만 더 살아보자고.


그렇게 불가항력 같던 나의 나날들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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