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만나고 싶었습니다.
안마사로 쌓은 30년 내공의 주인공, 청담 정통안마지압원 도승희 원장을 만나다!
기획 및 취재 최연신(하상매거진 인터뷰어)
오전 6시. 도승희(남. 55세. 시각장애 1급) 원장이 잠에서 깬다. 그는 아내가 전날 저녁에 씻어둔 쌀로 밥을 안치고 찌개를 데운다. 도 원장은 남자, 여자 할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천성이 부지런한 그는 집안일도 스스로 찾아서 한다. 사회초년생인 큰딸과 대학생 작은딸을 깨워 출근과 등교를 시키는 일도 그의 몫이다.
세상은 장애인 부모에 대해 편견을 가지기 쉽다. 비장애인 자녀가 장애가 있는 부모를 일방적으로 돌보고 챙길 것이라고.
“다 큰 자식들이지만 항상 어린아이처럼 염려하는 게 부모 마음이잖아요. 시각장애인 부모라도 예외는 없어요. 결혼하기 전까지 우리 딸들의 보호자는 어디까지나 저와 제 아내죠. 눈이 안 보여서 조금 불편할 뿐이지, 습관처럼 굳어진 일은 못 할 것도 없고, 비장애인과 다를 게 없습니다.”
오전 9시, 딸들이 직장과 학교로 빠져나간 후, 도승희 원장은 어김없이 안마지압원의 문을 연다. 30평 남짓한 규모의 지압원은 일터이자 네 식구의 생활 터전이다. 큰 방 2개는 시술실로, 또 다른 방 한 개와 옥탑방은 자녀들 방으로 사용한다. 가장 안쪽에 욕실과 부부가 생활하는 내실이 따로 있다.
정통안마지압원은 청담동의 오래된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탓에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 오랜 단골과 입소문으로 늘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기껏해야 하루 평균 대여섯 명이 찾을 정도로 고객이 급격히 줄었다. IMF와 코로나의 영향으로 폐업한 가게들이 넘쳐날 때도 흔들림 없이 무려 30년 넘게 한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던 도 원장의 안마지압원이었다. 청담동의 터줏대감인 도 원장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이달에는 도승희 원장을 만나 최근 근황과 함께 그의 외길 인생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하상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해주세요.
원장 : 안녕하세요, 도승희입니다. 청담동에서 정통안마지압원을 30년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상 : 시각장애 원인과 현재 시력은 어느 정도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원장 : 선천성 시신경 위축으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약한 상태였어요. 옛날에는 눈이 나쁘면 무조건 눈을 안 써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어른들은 책도 텔레비전도 못 보게 했어요. 눈을 아끼라고요. 초등학교 5학년까지는 일반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당시엔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가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눈이 나쁘니 학교생활은 당연히 힘들었죠. 보다 못한 학교 선생님 한 분이 제게 특수학교를 추천해주셨고, 6학년이 되면서 인천 혜광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하상 : 안마원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원장 : 20대 초반에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호텔 사우나 등에서 출장 안마사로 일했는데, 일자리가 늘 불완전했어요. 당시엔 일 좀 할만하면 나가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직장을 전전하며 고생할 바엔 차라리 직접 안마원을 운영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여기저기 떠돌다가 93년에 이곳 청담동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젊은 나이였기 때문인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패기와 열정이 넘쳤던 것 같아요.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자취하며 안마원을 차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수성가했습니다.
하상 : 그 당시 안마원을 차린 곳이 이곳인가요?
원장 : 아닙니다. 처음엔 청담 사거리 쪽에 안마원을 마련했습니다. 사무실 반쪽짜리를 얻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건물 관리인이 자꾸 트집을 잡더라고요. 화장실이 지저분해도 제 탓, 복도에 담배꽁초가 떨어져도 저를 탓했어요. 심지어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도 말이죠. 눈 안 보이는 사람이니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린다는 황당한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앞 못 보는 사람이 자꾸 왔다 갔다 해서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한다고도 했고요. 장애인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도저히 참고 있을 수 없어 2년 만에 안마원 자리를 지금의 건물로 옮겼습니다. 시각장애인에게 임대할 수 없다는 곳들이 많아 가게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죠. 다행히 건물주가 제게 치료받던 고객이셨고, 저의 성실성을 알아봐 주신 덕에 안마원 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월세로 시작해 2000년도 초반에 인수했고요.
하상 : 원장님 외에 직원이 따로 있나요?
원장 : 업무 보조를 돕는 분이 두 분 계세요. 시술과 치료는 저와 아내가 함께 맡아서 하고 있고요.
하상 : 30년 동안 강남에서 안마원을 운영할 수 있었던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원장 : 최선을 다해 치료한 날들이 하루하루 쌓여 입소문이 더해지면서 30년간 안마지압원을 지켜온 것 같습니다. 고객 대부분이 5년 이상 단골일 만큼 실력은 인정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저와 제 아내는 매 순간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요. 안마, 마사지, 지압은 맨손요법을 계통별로 체계화한 수기요법의 총화입니다. 손의 테크닉이 가장 중요하죠. 그러나 기술과 실력만으로는 부족해요. 건강 상태를 세심하게 관리함과 동시에 대화와 설명을 통한 상호 이해와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합니다. 특히 건강 문제와 관련해 궁금증을 가진 고객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정확한 지식을 알기 쉬운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상 : 안마원 운영 중 겪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원장 : 내원한 단골 중에 70대 노인이 계세요. 30년 동안이나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셨던 분이죠. 40대 때 병원에서 수술을 한 차례 받았지만, 오히려 수술 후유증으로 상태가 더 안 좋아지셨다고 해요. 똑바로 누워 잘 수 없어 엎드려 잠을 청하고, 그조차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습니다. 그러다 우리 안마원에 내원하셨고 꾸준히 지압을 받으면서 정말 많이 호전되셨어요. 이제는 잠도 바른 자세로 누워 잘 수 있게 됐고, 계단도 혼자 힘으로 오를 수 있을 만큼 건강을 되찾으셨습니다. 그분이 제 손을 꼭 잡으시며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셨는데, 마음이 찡하기도 하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고객 중 제게 10년 넘게 안마받던 단골이 계셨어요. 그러다 미국으로 이민 가셨는데, 그곳에 정착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고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 흘리는 날이 많다고 하세요. 막상 떠나보니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사실 우리나라는 돈만 있으면 천국이잖아요. 대중교통도 좋고, 치안도 안전하고, 의료보험도 잘 되어 있어 몸이 아프면 아무 때나 내가 원하는 병원에 찾아가 진료를 받을 수 있고요. 그분은 특히 미국에서 안마받기가 어려운 점을 불편한 점으로 꼽으셨습니다. 2~3년에 한 번씩 한국에 다녀가실 때마다 우리 안마원을 방문하셔서 지압을 받고 가시더니 결국 이민을 포기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셨죠. 한국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귀국을 결심하셨는데 마음껏 지압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그 한 이유로 들어주셨어요. 그럴 때마다 제가 이 일을 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하상 : 다른 사람의 건강을 치료하기 위해선 자신의 건강도 돌봐야 할 것 같은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원장 : 맞아요. 지압을 통해 다른 사람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서는 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죠. 남들보다 의지가 강한 점도 있지만, 맹학교를 다니면서 쌓은 기초 체력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꾸준히 운동했습니다. 역도 종목으로 장애인체전에도 나가 금메달을 따기도 했죠. 올림픽 도전까지 생각했지만, 당시엔 시각장애인 역도는 장애인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니어서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요. 어쨌든 맹학교 시절 역도를 했던 경험이 지금까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밖에 일상생활 속에서도 기초 체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상 : 정통안마지압원은 늘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명성이 쌓인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그 이유가 가까운 곳에 새로 생긴 불법마사지샵 때문이라고 하는데, 맞나요? 현행 의료법은 시각장애인만 안마사가 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스포츠 마시지, 경락 마사지, 중국 마사지, 태국 마사지 등 불법 마사지 관련 업체들이 난립하고 있는 게 현실이잖아요. 최근엔 자본력을 동원해 비장애인 마사지를 대중화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원장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원장 : 솔직히 요즘 운영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유사 업종이야 언제나 있었지만, 최근엔 그런 업체들이 대형화‧체인화가 되면서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죠. 얼마 전에 우리 안마원 길 건너편에도 또 하나의 대형 무자격불법마사지샵이 생겼어요. 원래 병원 외에는 증세를 간판에 걸면 안 되는데 그곳에선 디스크 관리, 체형 관리 등 2층 전체를 삥 둘러서 버젓이 간판을 내걸었죠. 그곳은 강남에만 5곳, 전국에는 12개 이상 가맹점을 두고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현행법률상 안마업은 시각장애인에게만 허용해주고 있지만, 유명무실한 수준이에요. 현행법을 어기고 비장애인이 안마업을 하다가 경찰의 단속이 있어 기소가 되면 항상 헌법소원으로 맞서고 있어요. 유죄 판결이 내려져도 벌금을 내면 그뿐, 여전히 영업을 지속하고 있죠. 더 어처구니없는 건 여성 일자리 창출을 명목으로 강남구청에서 소상공인에게 지급하는 지원금을 받아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할인율과 자본력 싸움에서 우리 같은 시각장애인 안마업은 열쇠일 수밖에 없어요. 불법 업소들이 오히려 포털 사이트 광고 독점권도 따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포털 사이트의 첫 페이지 상위 5개 정도는 전부 불법 마사지 업체고요.
하상 :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이세요?
원장 : 이곳은 30년간 제가 흘린 피 땀 눈물로 지켜온 곳입니다. 이대로 멈출 수 없어서 인테리어를 새로 했습니다.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신경 쓸 예정이고요. 불법마시지업체에 맞서 법적인 조치도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와 더불어 류재성 선생님 등 서울맹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분들과 의기투합해 시각장애인 안마 보급화를 위한 다양한 구상도 하고 있습니다.
하상 : 원장님에게 안마는 어떤 의미일까요?
원장 : 완전한 생업이자 보람이고 행복이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직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에겐 안마가 저를 살게 하는 힘이고 평생 직업입니다. 직업에 대한 소명감과 자부심도 느끼고 있고요. 그 덕에 결혼도 했고, 아이들을 낳아 훌륭하게 키울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거냐고 물어봐요. 저는 그때마다 밥숟가락 잡을 힘이 있을 때까지 이 일을 놓지 않을 거라고 답해요. 그때까지 후회 없이 열심히 일하고, 고객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겁니다.
하상 : 앞으로의 계획이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들려주시면서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원장 : 비록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위기도 잘 극복하면 훗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유사업종은 계속될 위협이 될 테고, 위기가 있으면 극복할 기회도 있는 거잖아요. 다른 분들도 그때마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월간문화교양지 하상매거진 2024년 10월호(통권 제1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