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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댄스스포츠‧라인댄스의 세계로 안내하는 ‘정은오

by 최연신


인터뷰―만나고 싶었습니다.


매력적인 댄스스포츠‧라인댄스의 세계로 안내하는 ‘정은오’ 강사를 만나다!


기획 및 취재 최연신(하상매거진 인터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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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쉘 위 댄스’는 40대 평범한 직장인 스기야마 쇼헤이가 단조로운 일상을 탈피해 가족 몰래 댄스교습소를 오가며 활력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주인공 쇼헤이는 마이라는 미모의 여강사에게 반해 춤을 배우기 시작하지만, 곧 댄스스포츠 그 자체의 매력에 빠져든다. 영화는 쇼헤이가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무게감에서 벗어나 댄스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고,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댄스스포츠는 15~16세기에 사교를 위한 목적으로 처음 시작됐다. 이후 18세기 말~19세기 초 영국 상류사회 모임에서 오락 요소를 더한 볼룸댄스, 즉 사교댄스로 발전했다. 이후 198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가입을 추진하며 댄스스포츠로 공식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1995년 IOC는 댄스스포츠를 경기 종목으로 잠정 승인했다.


이젠 댄스스포츠란 용어가 낯설지 않다. 최근엔 주민센터, 복지관, 문화센터뿐만 아니라 대학 교양강좌나 학교 특별 활동을 통해 댄스스포츠를 배우는 사람들이 느는 추세다. 댄스스포츠에 관한 관심은 시각장애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댄스스포츠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또 하나의 도전이며,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좋은 생활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볼 수 없지만 시각장애인도 얼마든지 춤을 즐길 수 있다. 단순히 즐길 뿐만 아니라 장애인전국체전 등 각종 대회에서 기량을 뽐내는 선수로도 활동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물론 숨은 조력자가 필요하다. 바로 시각장애인의 파트너가 되어주는 비장애인 선수들이다. 이달에는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댄스스포츠와 라인 댄스를 지도하는 강사이자 비장애인 선수로 활동하는 정은오(28세) 씨를 만나 이야기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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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 :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정은오 : 저는 대학에서 작업 치료학을 전공하고, 현재 병원에서 운동 치료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또 춤이 좋아 댄서로서의 길도 걷고 있죠. 장애인댄스스포츠 비장애인 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댄스스포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팀을 이뤄 춤을 추는 운동입니다. 지난해에는 제4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댄스스포츠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하상 :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복지관에서 댄스스포츠와 라인 댄스를 가르치시는데 어떤 춤인지 설명해 주세요.


정은오 : 댄스스포츠란 사교댄스에 스포츠 요소를 가미한 춤으로 생활 체육의 한 분야입니다. 남녀가 한 조를 이뤄 음악에 맞춰 약속한 스텝을 지켜가며 추는 춤이죠. 스포츠 특성과 예술적 특성이 함께 어우러진 종합 예술이기도 하고요. 정신적 즐거움과 육체적 건강을 동시에 얻는 건전한 스포츠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댄스스포츠는 단순히 춤을 추는 행위를 넘어 파트너와의 교감과 소통을 통해 배려심과 매너를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신체의 균형과 마음의 안정을 찾아 정신건강 및 재활 의지를 높일 수 있는 좋은 스포츠입니다.


댄스스포츠는 음악에 따라 라틴댄스와 스탠더드댄스로 나뉘는데, 빠른 리듬과 열정적인 퍼포먼스가 특징인 라틴댄스에는 룸바, 삼바, 차차차, 파소도블레, 자이브가 있고, 우아함과 섬세함이 특징인 스탠더드댄스에는 왈츠, 퀵스텝, 탱고, 슬로우 폭스트롯, 비엔나 왈츠로 세분됩니다. 댄스스포츠의 경우 시각장애인이라 하더라도 파트너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두려움 없이 텐션의 호흡이라든지 루틴의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대단히 큰 이점을 가지는 종목입니다.


반면 라인댄스는 여러 사람이 줄을 맞춰 다양한 안무를 추는 춤을 말합니다. 특별한 파트너 없이 앞줄과 옆줄의 라인을 만들어 추는 선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트너 없이 혼자 춤을 춰야 하기에 시각장애인들은 배우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체적으로 크게 부담을 주지 않는 쉬운 안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처음에 안무를 익히는 과정만 체득하게 되면 시각장애인들도 어렵지 않게 춤을 출 수 있습니다.


하상 : 시각장애인에게 춤을 가르치기 위한 출강은 어느 곳으로 나가고 있나요?


정은오 : 지금은 마포장애인복지관으로 출강하고 있습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도 오랫동안 춤을 가르쳤다가 현재 잠깐 휴강 중인데, 하계부터 다시 진행하게 될 겁니다.


하상 : 저 같은 몸치, 박치들도 춤을 잘 출 수 있을까요?


정은오 : 댄스를 강습하다 보면 몸치·박치라고 자가 진단하는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 대부분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분들이에요. 그렇다 보니 긴장하거나 자신감을 잃고 동작을 취하는 것에 주저하게 되죠. 알고 보면 몸치는 없습니다. 초보자도 배우기 쉽게 단계별로 수업을 진행하면 누구든지 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수강생 개개인 역량에 따라 난이도 조절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도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긴장을 풀고 강사의 지도에 따르다 보면 어느새 춤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하상 : 댄스 강습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정은오 : 저는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댄스스포츠는 전신을 다 쓰는 운동이기 때문에 부상이 일어나기 쉽거든요. 자세가 바르지 않은 상태에서 운동하다 보면 근육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무릎관절이 약해질 수도 있고, 발목을 다칠 수도 있죠. 따라서 저는 수업 초반 스트레칭을 습관화해 근육과 관절을 풀어준 후 본격적인 안무를 시작합니다.


수업 중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많은 인원이 모여서 춤을 추기 때문에 충돌의 위험이 있을 수 있거든요. 턴을 돌다가 옆 사람이나 구조물, 벽 등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다칠 수 있어서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도록 지도합니다.


하상 : 시각장애인을 위한 선생님만의 레슨 차별점이나 선생님만의 레슨 장점이 있나요?


정은오 : 시각장애인분들과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놀랄 때가 많아요. 대부분 박자 감각이 좋거든요. 아무래도 시각의 불편함을 겪는 대신 청각이나 촉각이 더 예민해지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수업을 들어갈 때 먼저 음악에 맞춰 손뼉을 치면서 박자를 맞추는 시간을 가져요. 그다음 춤 동작을 알려드리면 쉽게 따라 하시죠. 물론 처음 배우는 동작은 익히기까지 불편함을 겪지만, 금세 체득하십니다.


강사로서 제 장점을 말씀드리자면, 제가 가진 의료 지식이 강습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많다는 점입니다. 수강생 개개인의 질병에 대한 특성이나 이해도가 높은 편이죠. 혹시 ‘고유수용감각’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밸런스(균형)을 의미하는데 사전적으로는 신체 내부의 감각으로서, 팔다리의 위치, 방향, 운동을 감지하는 감각을 말합니다. 저는 댄스를 통해 고유수용감각을 향상하려고 노력합니다. 고유수용감각을 높여주면 신체의 반응속도와 몸의 균형 감각이 높아져서 골절, 염좌, 낙상 등의 부상을 예방할 수 있죠.


하상 : 시각장애인 제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수강생이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정은오 : 수강생 한 분 한 분 다 기억에 남고 소중하지만, 지난해 제4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 금메달을 취득했던 파트너 최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최 선생님은 저시력이고 충남연맹 소속이에요. 처음 장애인체전을 준비할 땐 제가 도움을 드리는 쪽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다른 커플들과 연합해야 하는 단체전을 준비하다 보면 자칫 소통의 부재로 오해가 생길 수 있잖아요. 그때마다 최 선생님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어요. 춤 실력 못지않게 좋은 성품을 지닌 분이죠. 그런 최 선생님이 대회 첫 파트너였던 것이 너무 영광스럽고 행복했습니다. 덕분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올해도 또다시 전국체전에 도전할 용기를 갖게 됐죠.


하상 : 시각장애인에게 춤을 가르치면서 힘든 점은 없나요?


정은오 : 힘든 점은 없습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국회의원입니다. 제 삶의 지향점은 힘없고, 빽 없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제게 힘이 있어야 하는데, 국회의원이 되면 그 힘을 바탕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국회의원이 된다면 가장 먼저 추진하고 싶은 정책이 보행 도로에 설치된 점자 블록 개수를 늘리는 일입니다. 사실 저는 시각장애인에게 춤 강습을 시작하기 전까지 점자 블록이 뭔지도 몰랐어요. 가끔 보행 도로에 설치된 노란색 블록을 보면 막연히 미끄럼 방지용 정도로 생각했죠. 지금은 거리를 다닐 때마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예의주시하게 됩니다.


하상 :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잖아요. 춤을 인연으로 시각장애인과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다양성도 알게 되고, 장애인 인프라 확충과 권리 증진에 관한 인식도 생겨나신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선생님은 이타심이 많은 분이시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에게 춤을 가르치는 강사로서 보람을 느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정은오 : 보람은 수업 시간마다 느껴요. 수강생 중엔 여자 회원들이 다수인데 저는 그분들을 공주님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존중의 의미로 쓰는 용어예요. 그 정도로 제게는 소중한 분들이죠. 수업은 일주일에 2시간 남짓이지만, 적어도 춤을 추는 시간만큼은 회원분들이 진짜 공주님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또 회원들끼리 춤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것을 지켜볼 때도 보람을 느낍니다. 호흡을 맞춰 리듬을 즐기는 댄스 수업을 듣는 과정을 통해 친교를 다지게 되죠. 수업이 끝나고 손을 맞잡은 채 지하철역으로 함께 이동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저는 시각장애인 회원들에게 결핍만 보지 말고 늘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의 가치를 알고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작업 치료를 해드리는 환자 중에는 뇌졸중과 파킨슨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아요. 정도가 심한 분들은 식사하는 것도, 화장실에 가는 것도 혼자 해내기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슬픈 일이잖아요. 시각장애인들은 물론 볼 수 없으니 불편한 점이 많죠. 하지만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중증 환자들에 비하면 가진 것과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잖아요. 몸만 건강하면 마음껏 춤도 출 수 있고요.


하상 : 댄스스포츠엔 에로틱한 동작이 많다는 편견이 있어요. 아직도 댄스스포츠를 불건전한 춤이라고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정은오 : 사람은 저마다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크기가 다르죠. 개인의 세계관, 지식, 경험, 상식, 관념 등 본인이 가진 틀로 세상을 보게 마련이고요. 댄스스포츠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수준이 딱 거기까지인 겁니다. 에로틱한 동작이 있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한테 굳이 반박하지 않아요. 어떻게 생각하든 자유이고, 자신의 교양 수준을 드러낸 거니까요.


물론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해 사교댄스 교습이 중단되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댄스스튜디오, 주민센터, 문화센터, 복지관뿐만 아니라 대학의 교양강좌를 통해 댄스스포츠를 배우는 사람이 늘고 있고, 그만큼 대중적인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상 : 그렇다면 선생님이 생각하는 댄스스포츠만의 장점이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정은오 :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댄스스포츠는 가성비가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베이직 스텝만 몸에 익히면 여러 가지 응용 동작은 쉽게 따라 할 수 있죠. 대부분 작품이 베이직 스텝에서 조금 변형될 뿐 기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거든요.


의학 용어 중에 ‘머슬 메모리’가 있습니다. 춤은 대표적인 머슬 메모리 운동이에요. 춤 동작을 체득했다면, 그 사람이 한동안 운동을 안 하다가 다시 시작했을 때 전보다 더 빠르고 쉽게 그 레벨에 도달하기 쉽다고 해요.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쓰기 때문에 근육이 기억하는 거죠.


최근엔 다이어트나 건강을 위해 춤을 배우는 사람들도 많아요. 춤은 그 자체로 즐겁기도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좋은 운동입니다.


그리고 댄스스포츠는 남미, 스페인 등 행복 바이브가 있는 나라에서 기원했잖아요. 댄스스포츠는 한마디로 예술적인 아름다움과 신나는 음악이 접목된 전신운동으로써 신체 단련뿐 아니라 심미성과 정서적 즐거움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상 : 댄스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정은오 : 댄스스포츠는 커플 댄스이므로 파트너와의 소통이 매우 중요합니다. 춤을 잘 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파트너에 대한 배려와 에티켓이죠.


하상 : 앞으로의 계획이나 마지막으로 댄스에 관심은 있으나 배우기를 망설이는 하상매거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들려주시면서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정은오 : 저는 삶이란 ‘나 다운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그 자체로 고통이고 어려운 시험 문제죠.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이 다른데 가끔 똑같은 시험지를 풀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적어도 저와 춤으로 인연을 맺는 분들은 춤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찾아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댄스를 통해 배운 행복을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출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월간문화교양지 하상매거진 2024년 9월호(통권 제1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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