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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규‧홍은녀 마라토너 부부의 슬기로운 결혼생활!

by 최연신


인터뷰―만나고 싶었습니다.


이민규‧홍은녀 마라토너 부부의 슬기로운 결혼생활!


기획 및 취재 최연신(하상매거진 인터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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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쓴 작가 생텍쥐페리는 ‘사랑이란 서로를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행복한 부부란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나란히 손을 잡고 한곳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아닐까? 이민규(39세)·홍은녀(44세) 마라토너 부부의 경우가 그렇다.


“부부란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거잖아요. 마라톤도 똑같은 거 같아요(민규 씨). 같은 길을 달려간다는 것이 즐겁습니다. 행복합니다(은녀 씨).”


결혼 13년 차인 두 사람은 마라톤이라는 공통 취미를 공유하고, 많은 일상을 함께하며, 행복한 추억을 꾸준히 쌓아 올리고 있다. 이달에는 마라톤을 통해 부부 관계를 되짚고 있는 남편 이민규 씨를 만나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슬기로운 결혼생활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 이야기 하나_잊지 못할 마라톤 대회


2024년 3월 17일 일요일. 동아일보와 대한육상연맹 주최로 열린 ‘2024 서울마라톤 겸 제94회 동아마라톤’가 세계 10개국 141명의 엘리트 선수와 3만 8,000명의 마스터스 러너가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세계육상연맹(WA)은 마라톤 대회를 4개 등급(플래티넘, 골드, 엘리트, WA)으로 나눠 인증하는데, 서울마라톤은 한국에서 유일한 플래티넘 라벨(최고 등급) 대회다.


이번 마라톤 대회에는 이민규·홍은녀 마라토너 부부도 나란히 참가했다. 두 사람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부터 시작해 숭례문, 서울숲을 거쳐 잠실종합운동장까지 이르는 풀 코스 42.195㎞ 완주에 도전했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은 아내 홍은녀 씨였다. 은녀 씨의 기록은 3시간 46분 10초. 풀코스 최고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은녀 씨는 힘든 레이스를 끝낸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결승선 앞에 서서 이제나저제나 남편의 완주 소식을 기다렸다. 그 시각 남편 민규 씨는 자신과의 한계에 맞서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사실 그날 제 컨디션이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출전하기 며칠 전부터 몸살감기 기운이 있었거든요. 아내한테 얘기하면 뛰지 못하게 할 것 같아 아프다는 말도 못 한 채 출전했습니다. 가이드 러너에게도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참고 뛰었는데, 결국 36km에서 체력적 한계에 부딪혀 멈춰 섰죠. 극한의 고통이 밀려와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지금까지 잘 뛰어왔는데, 이제 6km밖에 안 남았는데,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무엇보다 결승선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 생각하면 다시 힘을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민규 씨는 숨이 차오르다 못해 막혀버릴 것 같고,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 그 자체였지만,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평소 자신의 기록보다 21분이나 단축하며 4시간 29분 39초로 풀코스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함께 성공을 이루었기에 기쁨이 두 배가 된 두 사람은 열심히 달려 완주해낸 서로를 축하했다. 둘 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마라톤 풀 코스를 완주하는 모습이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이하 ‘순간포착’)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부부가 함께 LG유플러스에서 진행하는 사회공헌 캠페인 ‘행복한 나라 프로젝트’를 찍은 적이 있어요. 그 영상을 보고 SBS 방송국에서 연락을 해왔습니다. 처음엔 거절했죠. 그런데 올 3월에 열린 마라톤 대회에 부부가 풀코스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요청을 해와서 촬영에 응하게 됐습니다. 방송이 나간 후, 교회나 VMK에 나가면 영상 잘 봤다고 인사를 건네시는 분들도 많고,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지인들로부터 연락도 받았죠. 한번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로 훈련을 나갔는데 어떤 학생이 아내에게 다가와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사진을 함께 찍자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방송이 나가고 특별히 달라지거나 일상에 큰 변화는 없지만, 덕분에 색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아내 은녀 씨의 시각장애 원인은 망막색소변성증(알피)이다. 빛 정도만 감지할 수 있다. 민규 씨는 레버씨 시신경 위축증을 진단받았다. 현재 사물의 형체 정도는 볼 수 있어 단독보행이 가능하다. 시각장애가 있는 두 사람은 어떤 계기로 마라톤에 입문했을까?


부부가 함께 마라톤을 시작한 건 2016년부터였다고 한다. 어느 날 민규 씨는 한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지인은 S-OIL이 주최하는 ‘감동의 마라톤’ 프로젝트에 사연을 신청하면 그리스에서 열리는 2016 아테네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할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며 시도해볼 것을 권유했다. 그전까지 민규 씨와 은녀 씨 둘 다 마라톤을 해본 경험이 없는 상태였다. 반신반의하며 작성한 사연이 선정됐고, 두 사람의 그리스행이 이루어졌다.


“마라톤 발상지인 그리스에서 열린 대회답게 참가자가 정말 많았습니다. 우리는 10km 마라톤에 도전했죠. 대회는 축제 그 자체였습니다. 날씨도 좋았고요. 우렁찬 팡파르 소리, 수많은 관중의 응원 소리, 엄청난 인파의 에너지 등 뭔가 가슴이 벅찬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결승선에서 들었던 ‘프롬 코리아’의 외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둘 다 깊은 감동을 받았죠.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 모든 분들에게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날의 경험이 우리 부부가 함께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인생이 변곡점이 됐습니다.”


# 이야기 둘_마라톤으로 풀어가는 결혼 방정식


부부가 마라톤을 시작한 지 올해로 9년 차에 접어들었다. 어느새 마라톤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일부분이 됐다. 두 사람은 꾸준한 연습과 훈련을 통해 달리기를 습관화하려 노력한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일주일 기준 4~5회 함께 러닝을 하고, 동호회 활동은 물론 각종 대회에도 적극적으로 출전하며 마라토너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보통 시각장애인은 마라토너 곁에는 함께 뛰는 비장애인 가이드 러너가 있기 마련이지만, 타인의 도움 없이 오롯이 부부 둘이 손을 잡고 함께 달릴 때도 많다. 그만큼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고 또 지지한다.


현재 민규 씨는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회 VMK 15대 회장이자 역대 최연소 회장이다. 젊은 감각을 지닌 회장답게 임기 중에 마라톤회 VMK의 새로운 변화를 끌어내겠다는 당찬 포부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VMK 회원으로 지내면서 느꼈던 아쉬운 부분들을 개선하고자 합니다. 물론 훌륭한 선배님들 덕분에 클럽이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VMK 행사가 우리들만의 이벤트로 끝나버리는 경향이 있었기에, 제 임기 중에는 다양한 대회에 도전해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또 모임을 활성화해서 부족했던 회원 간의 친교를 다질 생각입니다.”


한 지붕 아래에 살아도 대화 단절로 남남처럼 사는 부부도 많은데 두 사람은 언제나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같은 취미를 공유한 사람들답게 서로의 힘든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격려와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장점은 곧 단점이 되기도 하다. 상대방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고 있다 보니 잔소리를 하게 되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민규 씨와 은녀 씨는 언제 어떻게 만나 가정을 이뤘을까. 2008년 당시 삼각지에 있는 교회를 다니던 민규 씨와 은녀 씨는 청년부 활동을 하면서 운명적으로 만났다.


“은녀 씨와는 대화가 잘 됐어요. 같이 있을 때 가장 나다운 모습이 되고, 마음이 편안해졌죠. 이 사람이라면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3년 연애 끝에 마침내 2011년 모든 날 모든 순간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며 결혼했다. 현재 민규 씨는 기업 선수로, 은녀 씨는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둘만의 보금자리에서 하루하루 즐거운 추억을 쌓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금실 좋은 부부라도 싸우지 않고 성장하는 부부가 있을까? 결혼생활이란,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가 화성과 금성도 아닌 낯선 지구에서 평생 합을 맞춰가며 살아가는 것. 수십 년 동안 각자의 집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누리며 살아온 이들이기에 어쩌면 갈등과 다툼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저희 부부도 자주 투덕거리며 싸웁니다. 대부분 생활방식이라든지 습관 등이 달라서 다투는 것 같아요. 며칠 후 뒤돌아보면 기분 나쁜 감정만 남아있을 뿐, 왜 싸웠는지 기억도 잘 안 날 만큼 사소한 문제들이죠. 감정 표현 방법도 서로 달라요. 아내는 화가 나면 버럭 소리를 질러요. 대신 뒤끝이 없죠. 반대로 저는 안으로 삭이며 쌓아두는 성격입니다. 입을 닫은 채 말도 안 하고요. 그렇다 보니 부부싸움 후 화해를 주도하는 쪽도 늘 아내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기쁨도 슬픔도 그리고 장애도 공유하는 관계이기에 누구보다 끈끈한 사이가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부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것은 단절된 대화의 창구가 될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연결고리가 된다. 민규 씨와 은녀 씨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부부이자 동료로서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한다. 결혼하면서 인생의 반려자로 먼 길을 함께 가겠다고 맹세한 두 사람의 약속은 마라톤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속도대로 살아가고 있는 이민규, 홍은녀 부부. 너무 힘들어도 삶은 계속되는 것처럼, 마라톤을 향한 그들의 도전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출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월간문화교양지 하상매거진 2024년 7‧8월호(통권 제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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