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만나고 싶었습니다
저시력 화면해설 작가 강내영 씨를 만나다!
기획 및 취재 최연신(하상매거진 인터뷰어)
배리어프리라는 용어는 ‘장애로부터 자유롭다’라는 건축학 용어에서 따왔다. 본래 물리적인 장벽을 제거하고자 했던 배리어프리의 범위는 점차 사회적, 문화적 영역까지 확장되는 추세다. 영상 콘텐츠를 눈으로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화면해설을, 대사나 효과음, 배경에 삽입되는 음악 정보를 소리로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자막과 수어 통역을 제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화면해설 작가는 볼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TV 드라마나 영화 등 화면 속 등장인물의 표정과 몸짓, 대사 없이 처리되는 여러 정보를 음성으로 알기 쉽게 전한다.
그런데 시각장애인도 화면해설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비장애인의 전유물이자 시각장애인의 불모지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시각장애도 병에 따라 보이는 정도와 불편함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면해설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시각장애인이 있다. 바로 강내영(45세) 작가다. 강 작가는 국내 유일의 저시력인 화면해설 작가이자 시각·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버전 제작자이다.
강 작가는 영화 〈7번방의 선물〉, 〈변호인〉 등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제작 작품 및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 〈킹덤〉, 〈형사록 시즌2〉 등 글로벌 기업(N사, D사)의 스트리밍 서비스 프로그램, 부산국제영화제, 서울장애인권영화제 출품작 등 13년간 300여 작품, 총 2,000여 편의 화면해설 대본 집필 및 제작에 참여했다. 영상뿐만 아니라 공연예술 및 관광, 미술품 전시 분야에서도 배리어프리 도입 초반부터 꾸준히 활동해 왔다. 또한 배리어프리의 필요성을 포함한 장애 이해 교육, 공연 및 영상 배리어프리버전 제작 워크숍 및 무용 음성해설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는 개개인의 장애에 맞는 환경만 주어진다면 장애인도 충분히 배리어프리 작가나 제작자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하지만 강 작가는 올해 초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기업인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의 운영을 접었다. 그동안 강 작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저시력 시각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위한 콘텐츠 접근성을 고민하고 최전선에서 노력해온 강 작가의 최근 근황이 궁금했다. 인터뷰 요청에 강 작가는 흔쾌히 필자를 집으로 초대했고, 지난 3월 26일 서울 동작구에 있는 작가의 집에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하상: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먼저 자기소개 간단하게 부탁드려요.
강내영 작가: 저는 화면해설 작가이자 배리어프리 버전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회사를 접었지만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대표로 일했습니다.
하상: 시력은 어느 정도 되시는지, 시각장애의 원인을 여쭤 봐도 될까요?
강내영 작가: 어렸을 때는 눈이 나쁜 원인을 알지 못했어요. 맹학교에 입학하면서 검사를 다시 받았는데 ‘시신경 위축’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화면해설 작가를 공부하던 시기에는 녹내장도 생겼고요. 현재 오른쪽 눈은 빛 정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이고, 왼쪽 눈은 가까운 사물만 볼 수 있는 저시력입니다.
하상: 서울맹학교는 언제 입학하셨나요?
강내영 작가: 고등학교까지 일반 학교에 다녔어요. 대학교에 다니다가 집안 사정 때문에 휴학하고 맹학교에 입학해 2년 과정의 이료재활과를 이수했죠.
하상: 작가님은 화면해설 작가로 시작해서 현재 배리어프리 버전 제작자로 활동 중이신데요, 화면해설 작가를 선택한 과정이나 배경이 궁금합니다.
강내영 작가: 전남편이 저보다 잘 보지 못하는 저시력이었어요. 저시력 시각장애인도 잔존 시력과 시야에 따라 볼 수 있는 정도가 천차만별이잖아요. 제가 본 것을 설명해도 이해를 못 하는 상황이 잦았습니다. 처음부터 화면해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과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설명을 잘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보는 것을 상대도 같이 봤으면 하는 마음이 컸죠. 마침 2011년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가 운영하는 정보채널 ‘넓은 마을’에 화면해설 방송작가 양성 교육이 진행된다는 공고가 떴더군요. 자격 조건이 글쓰기 관련 교육을 이수했거나 전·현직 작가 대상이었는데 저는 해당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배워보고 싶다고 문의했더니 한시련에서 내부 회의를 진행한 끝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일에 시각장애인도 참여하면 좋겠다는 결정이 났고, 저시력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교육을 받게 됐습니다.
하상: 그럼 교육 이수 후 바로 활동을 시작하셨나요?
강내영 작가: 처음엔 의욕이 충만했죠. 실력을 쌓기 위해 정규 교육 과정을 마친 후 재교육도 받고, 자조 모임도 만들어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을 받았다고 모두 작가 활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당시 3기 교육생이 저 포함 15명이었는데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가는 작가는 대여섯 명 정도 됩니다. 저도 교육을 받고 2년 가까이 제대로 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어요. 사실 화면해설 작가는 비장애인의 전유물이어서 장애인의 역할은 비장애인 작가의 작업을 모니터하거나 감수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시각장애모니터요원으로서의 활동만 주어졌는데 비록 화면해설 작가 일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때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제게 시나리오 작가가 쓴 화면해설 대본의 모니터를 맡겼었는데 시나리오 작가가 화면해설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쓴 대본이라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해당 문장에 의견을 달고 수정 문장을 추가해 대본보다 더 많은 분량의 모니터 보고서를 제출했죠. 감독님이 보시고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써줬다며 제 노력과 실력을 인정해주셨어요. 제게 최종 대본 수정을 맡기셨지만 여러 사정으로 비공식 데뷔작이 됐습니다. 그 이후 한시련에서는 모니터 활동만 주어졌고 설상가상 녹내장 진단까지 받으면서 화면해설을 포기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2013년에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대만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의 실화를 담은 〈터치 오브 라이트〉의 화면해설 대본 감수를 제게 의뢰했어요. 그 작품을 통해 다시금 화면해설 작가의 꿈을 가졌고,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제작한 배리어프리 영화 〈7번방의 선물〉로 정식 데뷔를 하게 됐습니다.
하상: 작가 활동에 그치지 않고 화면해설(음성해설)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를 운영하시기도 하셨죠? 어떤 곳인지, 어떤 일을 해오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강내영 작가: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화면해설과 수어자막이 삽입된 배리어프리콘텐츠를 기획 제작하는 기업이에요.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를 설립하게 된 건 장애인 당사자주의에 입각한 제작 활동을 하고 싶어서였어요. 환경만 마련되면 시각장애인도 얼마든지 전문 모니터 요원이나 성우, 사운드 편집자로 활동할 수 있죠. 뜻은 좋았지만, 현재는 사업을 접은 상태예요. 2017년에 회사 설립해서 올 초에 문을 닫았으니까 약 7년 정도 운영했네요. 문을 닫기 전까지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하상: 무슨 이유로 사업을 접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강내영 작가: 이 세상에 어느 하나 쉬운 일은 없지만 사업은 생각보다 더 힘들더라고요. 회사를 설립하고 다음 해 2018년 이후로는 사업이 번창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코로나가 닥쳤습니다. 타격이 컸어요. 영상이든 공연이든 상반기에는 일이 없고 하반기에 반짝 일이 몰렸어요. 일 년에 절반 작업한 수입으로 한 해를 버텨야 하다 보니 적자가 날 수밖에 없었죠.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투자비며, 작가와 직원들 월급 주기도 벅차더군요. 대출도 받고, 닥치는 대로 강의도 뛰고, 밤잠을 줄여가며 일해도 부족한 비용을 메울 수가 없었어요. 너무 무리한 탓인지 건강까지 안 좋아지더라고요. 결국 10년 가까이 같이 작업했던 작가들이 모두 떠났어요. 비장애인 없이 시각장애인이 사업을 하기란 어려웠고, 다른 선택지가 없어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하상: 혹시 실패했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작가님에게 ‘실패’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강내영 작가: 실패라면 실패일 수도 있지만 배운 것도 많아요. 모든 경험은 다 소중하죠. 인생은 끊임없는 성공과 실패 속에서 성장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데 이런 말이 있어요. 사회적 기업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선한 마음이 실패하는 건 아니며, 소속된 멤버들의 개인 역량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요. 그 말에 동의합니다. 성공은 운과 시기, 본인의 능력, 이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고 하잖아요. 언젠가 다시 기회가 찾아오겠죠. 그때를 위해 지금 잠깐 충전의 시간을 갖는 과정으로 생각합니다.
하상: 배리어프리 콘텐츠가 대중화되기 위해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달라지길 기대하나요?
강내영 작가: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을 위한 공연은 당연히 무료여야 한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공짜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죠. 그게 세금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희생과 봉사, 시간과 노력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장애인도 자신들이 즐긴 콘텐츠에 대해 정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장애인이 수혜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리어프리 버전 제작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뿐 아니라 장애인의 인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상: 어린 시절과 청년기의 경험이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잖아요.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는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냈을지도 궁금해요.
강내영 작가: 저는 학창 시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만화를 접했는데 곧잘 따라 그렸어요.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죠. 고등학생 때 친한 친구가 함께 미대를 가자고 하더군요. 사실 저희 집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는데, 미대 입시학원을 보내달라고 엄마를 졸랐어요.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아버지는 평소에도 제 눈 관리가 중요하다며 책도 못 보게 불을 꺼버리셨던 분이에요. 저는 해보기도 전에 ‘너는 못할 거다’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부정적인 면이 싫었습니다. 반대로 엄마는 언제나 제 편이셨죠. 엄마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저를 미술학원에 보내주셨어요.
하지만 저는 결국 3개월도 못 돼 미술을 포기했습니다. 당시 미대에 가려면 데생이 필수였어요. 하얀 아그리파 석고상을 그려야 하는데 흐리멍덩하게 그려지는 데다 선생님이 자꾸 각진 면이 어쩌고, 그림자가 어쩌고 하는데 못 알아듣겠는 거예요. 그때 알았어요. 멀리 있는 아그리파의 얼굴이 제 눈에는 흐리멍덩하게 보이니까 흐리멍덩하게 그릴 수밖에 없었던 거라는 걸요.
하상: 가장 소중한 보물 1호는? 또는 살면서 가장 힘이 되는 존재는 누구인지? 그 이유도 말씀해 주세요.
강내영 작가: 엄마요. 어렸을 땐 엄마였다가 결혼하면서 전남편이었다가 반려견이었던 적도 있어요. 그들이 모두 떠난 후에도 변함없이 곁에서 저를 지켜주는 사람은 엄마더라구요. 자식이 아프면 엄마들은 죄인이 된다잖아요. 저희 엄마도 그래요. 늘 자식 걱정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으세요. 엄마만 생각하면 죄송하고 눈물이 나요. 걱정 안 시키고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해요.
하상: 앞으로 좋은 모습 보여드리면 되죠. 여가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며 보내시나요? 일 외에 취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강내영 작가: 예전에는 제 인생에 화면해설밖에 없는 것처럼 일에 파묻혀 살았어요. 그러다가 2021년, 14년 동안 키우던 반려견을 하늘나라에 보냈는데 마음이 허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담금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안동소주 40도짜리로 41종이 넘는 과실주를 만들었죠. 그렇다고 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열심히 만들어서 나눠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주로 SNS를 통해 나눔 이벤트를 하는데 반응이 꽤 좋아요. 요즘엔 딸기 잼도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뭔가 만든 후 결과물이 보이는 취미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하상: 10년 후에 강 작가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마지막으로 최종 꿈과 목표, 꼭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나 바람을 이야기해주시면서 인터뷰 마칩니다.
강내영 작가: 솔직히 10년 후가 잘 그려지진 않아요. 전엔 화면해설의 대중화를 꿈꾸기도 했고, 배리어프리 콘텐츠 제작에 있어 최고 권위자가 되고 싶다는 야망도 있었는데 지금은 별 욕심이 없어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동안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했지만, 정작 제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서 책 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세계적인 주식 투자자 워런 버핏이 한 강연회에서 성공에 대해 정의한 글을 봤어요. 그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이 성공이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바로 내가 된다면 다른 사람도 나를 그렇게 대우해 줄 것이다.’라고 성공을 정의했는데 그게 더 어려운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전 그냥 평범하고 싶어요.
비록 지금은 백수지만 엄마에게 더는 손 벌리지 않고, 걱정시켜 드리지 않고 제 인생 제가 온전히 책임지는 삶을 살고 싶어요.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인생을 즐겁게,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에필로그
강 작가의 집은 소품 가게를 방불케 했다. 꽤 다양한 종류의 소품들이 아기자기하게 진열되어 있었는데 소녀 감성이 그대로 전해졌다. 카페 분위기로 꾸민 베란다에서 인터뷰를 시작하며 강 작가는 직접 내린 커피와 곁들이 도넛을 건넸다. 초봄의 한기를 녹이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대화를 나누었다.
강 작가는 인터뷰 중간, 중간 울먹일 때가 많았다. 어머니 이야기가 나왔을 땐 결국 눈물도 보였다. 힘들다고 항변하지는 않았지만,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 느껴져 마음이 애잔했다. 건강도 좋지 않아 보였다. 직업병인 허리 디스크 통증 때문에 오래 앉아 있기 힘들어했다. 천식도 문제였다.
인생을 살다 보면 파도에 실려 수없이 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만난다. 어쩌면 강 작가는 지금 또 하나의 파도를 넘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 앞에 닥친 파도가 어떤 것인지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강 작가의 저력을 믿어본다. 십 년 넘게 국내 유일의 저시력인 화면해설 작가이자 시각·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버전 제작자로서 수많은 값진 성과를 이뤄낸 것처럼, 앞으로 더 멋진 도전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으리라는. 아니 그의 바람처럼 평범한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차곡차곡 저축하는 삶을 살아도 좋겠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주요 경력
서울맹학교 이료재활과 졸업. 대구대학교 초등 특수교육과 졸업.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부설 미디어 접근센터 ‘화면해설 방송작가 양성 교육 과정’ 수료(3기). 양천구 장애 체험관 장애인권 강사 양성 과정 수료. 2017한국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팀 선정. 2019 청년창업사관학교 입교(9기). 전 (주)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대표. 전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소속 화면해설 작가. 화면해설365법칙 제작, 서울시 시각장애인용 점자가이드북 제작 기획 자문. 300여 개 작품, 총 2,000여 편의 화면해설 대본 집필 및 제작(대표작: 〈7번방의 선물〉, 〈변호인〉) (2024년 3월 말 기준, 영화 205편, 드라마 730편, 애니 291편, 예능 826편, 다큐 226편, 기타 영상 51편, 전시 4편, 그림해설 2편, 연극&연극영상 배리어프리 버전 제작 63편)
출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월간문화교양지 하상매거진 2024년 5월호 (통권 제1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