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결혼식

by 최연신
출처 : 픽사베이

오늘은 승우와 혜진의 결혼식 날이다. 5월은 결혼식을 올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다. 눈 부신 햇살이 연인들의 머리 위에서 조명처럼 빛나고, 초록의 싱그러운 대지가 버진 로드로 깔리며, 신부의 부케를 흩뿌려놓은 듯 하얀 작약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는 5월.


“하늘 참 얄궂네. 하필 오늘 같은 날 추적추적 비를 뿌리실 건 뭐야.”

승우 동생 승희가 거실 창에 드리운 커튼을 젖히다 말고 혼잣말을 한다.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줄기를 가만히 눈에 담던 승희가 다시 커튼을 친다. 승희는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간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푸석푸석하다. 두 눈은 벌겋게 핏줄까지 돋았다. 간밤에 잠을 설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잠을 이루지 못한 건 승희뿐이 아니다. 승희는 아버지가 밤사이 들락날락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도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옥상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아버지는 일 년 전부터 어렵게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분주하고 떠들썩해야 할 결혼식 날이건만, 집안 공기는 한없이 무겁고 차갑다. 질식할 것 같은 고요만이 감돈다. 승희는 공들여 화장하고 옷도 신경 써서 골라 입었다. 얼마 만에 해보는 화장인지.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어쩐지 낯설다.

외출 준비를 마친 승희가 안방으로 향한다. 문을 열고 조심스레 들여다본다. 엄마가 화장대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마치 웃는 법도 우는 법도 잊은 것처럼 텅 비어 있는 듯 허망한 눈빛으로. 그런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는 승희는 가슴이 욱신, 저리다.

“엄마, 서둘러야 해. 이러다 결혼식에 늦겠어.”

엄마는 미동도 없다. 승희의 말은 그대로 허공에서 흩어진다. 승희는 조용히 문을 닫고 돌아선다. 아버지는 양복을 입은 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 승희가 그 옆으로 다가가 말없이 앉는다. 한참 후 엄마가 안방 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 나온다. 신랑 측 어머니답게 푸른색 한복을 입었다. 엄마, 곱다. 승희는 입술을 달싹거릴 뿐 말하지 못한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승희네 가족이 차를 타고 집을 나선다. 승용차가 차탄천을 지날 무렵, 운전대를 잡고 있던 아버지가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앉은 승희와 엄마를 번갈아 바라본다. 엄마는 눈을 감고 있고, 승희는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시선을 던지고 있다. 창밖을 바라보던 승희의 눈에 “목격자를 찾습니다.” 글씨가 적힌 낡은 현수막이 느리고 길게 흘러간다.

승희 가족이 도착한 곳은 서울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있는 한적한 사찰이다. 아침보다 빗발이 굵어졌다. 차에서 먼저 내린 승희가 엄마에게 우산을 받쳐준다. 그러나 사선으로 들이치는 빗줄기는 금세 엄마의 한복 옷자락을 적신다.

신부 혜진의 가족은 이미 도착해 있다. 승희네 가족은 혜진의 가족과 잠시 서먹한 인사를 나눈 후 함께 법당 안으로 들어간다. 법당 안에는 승우와 혜진의 사진과 두 개의 유골함이 나란히 놓여있다.


승우는 혜진과 한날한시에 죽었다. 일 년 전 오늘, 결혼식을 열흘 남겨두고. 웨딩드레스를 맞추던 날, 두 사람은 신랑 집에 인사차 들러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이런저런 담소가 길어지다 보니 밤 10시를 훌쩍 넘겼다. 승우는 혜진을 서울 집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차를 몰고 밤길을 달렸다. 가로등도 얼마 없는 한적한 시골길엔 짙은 어둠이 영원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강물이 보고 싶은데 너무 어두워서 잘 안 보여.”

차탄천을 지날 무렵, 창밖을 내다보던 혜진이 말했다. 그때였다. 반대 차선에서 덤프트럭 한 대가 승우의 차를 마주 보고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흡사 먹잇감을 노려보는 맹수의 눈빛처럼 사납게 빛을 뿜는 트럭. 승우는 트럭의 강렬한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아 팔로 얼굴을 가렸다. 그 순간 덤프트럭이 승우가 몰던 승용차를 덮쳤다. 놀란 승우가 핸들을 틀었지만, 충돌을 면할 순 없었다.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어둠을 뒤흔들었다. 덤프트럭은 승우의 차를 한참이나 밀어낸 뒤에야 멈춰 섰다. 이 사고로 예비 신랑 신부 모두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두 사람의 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엄청난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예측할 수 없던 가족의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가혹한 현실이었다. 승희는 오빠의 장례식을 어떻게 치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뺑소니 운전자를 잡아야겠어. 그래야 우리 승우 한이라도 남지 않을 것 아냐.”

장례를 치른 며칠 후 외출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말했다. 밖에서 무슨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이대로 손 놓고 슬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날부터 승우 가족들은 직접 가해자를 찾아 나섰다. 경찰서에 오가며 다시 한번 교통사고의 진상을 밝혀 달라고 애원했다. 사고 현장에 ‘뺑소니 목격자를 찾습니다’라는 현수막도 내걸었다. 승희도 관련 글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 그러나 사건은 수개월이 지나도록 제자리걸음이었다. 가끔 제보 전화가 걸려 오긴 했지만, 그중 태반이 목격자의 착각이거나 장난 전화였다.

“이런 장난 전화하고 싶어? 상처에 소금을 뿌려도 유분수지. 콩밥을 먹어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아버지는 분노와 격정에 휩싸이는 날이 많아졌다. 승희는 승희대로 시간만 나면 인터넷에 접속했다. 목격자를 찾는다는 게시글에 댓글이 올라왔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응원과 격려의 말뿐, 원했던 대답은 없었다.

수사도 진척 없이 흘러갔다. 경찰은 사고 현장에 그 흔한 CCTV도 없어 운전자가 자수하지 않는 이상 검거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뺑소니 교통사고의 공소시효는 10년입니다. 하지만, 범인을 1년 안에 잡지 못하면 아무래도 미제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져요. 자제분의 교통사고는 심야에 일어났고, 목격자가 없는 데다 차체가 심하게 부서져서 물증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네요. 운전 부주의에 의한 본인 과실로 경찰 조사가 종결됐습니다.”

승희 가족은 결국 가해자 찾기를 포기했다. 아버지는 그동안 굳게 닫아두었던 가게 문을 다시 열었다. 생업에 나선 아버지에게 사람들은 너무 쉽게 위로의 말을 뱉었다. 혀를 끌끌 차며 기어이 한마디를 보태는 이들도 있었다. 어쩌겠어, 잊어야지.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어? 세월이 약이라지 않나. 아버지는 생각했다. 정말 세월이 약이 될까. 땅이 아니라 가슴에 묻힌 자식을 잊을 수 있을까.

승우가 죽은 그날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웃는 법을, 가족 간의 대화를, 평범한 일상을 잃었고, 집안을 감싸던 따뜻한 온기가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승희 가족은 TV를 보지 않게 됐다.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 소식을 접하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승희는 슬펐다. 하지만 그 슬픔의 실체가 오빠의 죽음에 대한 애도인지 자기 연민인지 알 수 없었다. 오빠가 죽은 그날부터 자신의 존재도 지워져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죽은 건 오빠인데 가족들은 유령처럼 겉돌았다. 소외감과 외로움이 찾아왔다. 숨이 막혔다. 이런 감정은 또다시 죄책감의 얼굴을 하고 승희 자신을 날카롭게 할퀴었다. 승희는 간절히 바랐다. 차라리 꿈이기를. 깨고 나면 사라질 악몽이기를….

승우의 사망 1주기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다가 말고 엄마가 불쑥 말을 꺼냈다.

“죽을 만큼 괴로운데 아침이면 저절로 눈이 떠지고,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배가 고파와. 밥이 입으로 들어가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때마다 섬찟섬찟 놀라. 내가 엄마가 맞나 싶어서, 승우한테 미안해서….”

“엄마….”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 엄마가 말을 이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승우와 혜진의 결혼식을 올려주고 싶어. 사후 세계에서라도 부부가 될 수 있게 말이야.”


승우와 혜진의 영혼결혼식이 치러지는 법당 안. 양가 가족과 신랑 신부의 친한 친구 각 2명씩만 초대된 단출한 결혼식이 시작됐다. 그 흔한 주례사도, 꽃장식과 버진 로드도, 축하 하객도 없는 쓸쓸한 영혼결혼식이었지만, 전통 혼례처럼 격식을 갖추어 진행됐다.

법당 안에는 초례상이 차려졌다. 혼례식에 필요한 물품과 백년해로를 의미하는 상징물들이 상 위에 올려져 있다. 양가 가족 중 한 사람씩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남자 모양의 인형과 여자 모양의 인형을 들고 섰다. 영혼결혼식은 사찰에서 준비한 예법에 따라 전안례에서, 교배례와 합근례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향불 아래 영혼 혼례를 축하하고 극락왕생을 비는 주례 승려의 독경으로 갈음했다.

승희는 독경 소리를 들으며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승우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엄마와 아빠의 자부심이자 자랑이었던 아들. 가끔 투덕거리기도 했으나 은근히 서로 마음이 잘 맞았던 오빠, 승우. 그와 함께했던 지난 세월이 낡은 영화 필름처럼 아련하게 지나간다. 승우에게 머물던 승희의 시선이 엄마에게 옮겨간다. 엄마는 신부 어머니와 손을 맞잡은 채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승희는 생각한다. 어쩌면 오늘 치른 영혼결혼식이 하나의 애도 연습일지도 모른다고.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을, 상실감을, 그리움을 덜어내기 위한 애도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영혼결혼식을 마친 승우와 혜진의 가족들이 법당을 빠져나온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새어 나온 빛무리가 산을 비춘다. 산을 타고 내려온 햇빛이 단청을 밝히고 이내 뜰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사찰에서는 갖가지 빛깔의 연등을 내걸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풍경 소리가 연등 사이 사이를 돌아 나간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 탓에 절 마당에는 크고 작은 물웅덩이가 여러 개 생겼다. 한쪽 웅덩이에 고인 빗물 위로 5월의 청명한 하늘과 구름이 잠긴다. 바람이 하늘을 품은 수면을 쓸고 가며 파르르 잔 파문을 일으킨다. 그 위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