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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김유정신인문학상 동화 부문 당선, 정복연 작가

by 최연신


인터뷰―만나고 싶었습니다

제29회 김유정신인문학상 동화 부문 당선, 정복연 작가를 만나다!

기획 및 취재 최연신(하상매거진 인터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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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문학촌과 강원도민일보가 공동 주관하는 제29회 김유정신인문학상에서 ‘장마가 끝났다’란 작품으로 동화 부문 당선의 영예를 안은 정복연 작가의 수상소감 중 일부이다. 화가를 꿈꾸던 정복연(46세) 작가는 12세부터 당뇨병을 앓다 27세에 실명을 하고 꿈을 접었지만, 뒤늦게 만난 동화라는 세계에서 새로운 눈을 떴다.

김유정신인문학상의 그녀의 성장동화의 예고편이기도 하다. 이달에는 정복연 동화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가 작품 속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무엇인지, 동심 가득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것인지 이야기 나눴다.


하상 : 부산이 고향이세요?

정복연 : 네, 부산 토박이예요. 1977년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상 : 시력은 어느 정도 되시는지, 시력을 잃은 원인을 여쭤봐도 될까요?

정복연 : 1형 당뇨 합병증인 망막병증으로 27살에 시력을 잃었습니다. 어릴 때는 시력이 조금 나쁘기는 했지만, 세상을 보는 데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빛도 감지하지 못하죠. 청력 기능도 떨어졌습니다. 오른쪽 청력은 완전히 상실했고, 왼쪽도 좀 안 좋네요. 현재 한쪽 청력만으로 화면 읽기 프로그램을 통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상 : 요즘 컨디션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건강이 나빠지신 건가요?

정복연 : 혈액투석이 필요한 수준으로 신장 기능이 나빠졌어요. 이미 10여 년 전에 신장이식을 받았는데, 지금은 수명이 다 된 거죠. 병원 측에선 하루라도 빨리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하상 : 무엇보다 건강 먼저 챙기셔야겠네요. 혹시 시력을 잃기 전까지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정복연 : 실명하기 전까지는 여러 가지 일을 했습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한 공부도 했죠. 원래 꿈은 화가였어요. 그런데 예체능 계열의 경우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단 직장 생활을 하며 경제적인 활동을 해야 했어요. 최종 목표는 화가였지만 실명을 하게 되는 바람에 결국 포기했습니다.

하상 : 화가의 꿈은 접는 대신 동화작가가 되셨네요. 동화 작가가 된 동기나 이유가 뭔지 궁금해요.

정복연 : 솔직히 처음부터 동화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에요. 시력을 잃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이것저것 공부도 하고 소설이나 시 습작도 했습니다. 몇몇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 까닭인지 제 시가 너무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흐르더군요. 일상에 발 딛지 않은 시, 모호한 감상을 나열하는 시를 쓰고 싶진 않았어요. 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소설작법에도 관심이 있었죠.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플롯이나 문장과 같은 기술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장편 소설의 경우 긴 호흡으로 써야 하는데, 체력과 사유의 힘이 한계에 부딪혀 중단했습니다.

그러던 중 내게 동화가 찾아왔어요. 동화라면 비교적 짧은 분량 안에 강한 임팩트가 있는 메시지를 남길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동화에 빠져들었습니다.

동화가 주는 정서적 감흥은 생각보다 커요. 짧은 단편 동화도 소설 못지않게 흥미롭고 마음을 충만하게 해주는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되었다고 동심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누구나 어린 시절을 지나왔고, 마음속에 다시금 불을 지필 동심의 불씨는 살아 있으니까요. 동화를 쓰노라면 제 어린 시절의 감흥이 고스란히 되살아남과 동시에 어린 나를 안아주는 기분이 듭니다. 추억의 창을 통해 다시금 세상을 보는 것이 너무 좋아요. 건강이 좋지 않아 힘들 때도 있지만, 글을 쓰면 살아있다는 느낌도 들어서 놓을 수 없습니다.

하상 : 작가님의 수상 작품 ‘장마가 끝났다’는 진백이라는 주인공이 시골로 이사를 온 후 옆집 아저씨와의 만남 과정에서 생긴 오해와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요. 어린아이의 생생한 고민이 살아 숨 쉬는 이 작품의 집필 계기나 작품에서 작가님이 말하고자 한 핵심? 혹은 작품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뭔지 듣고 싶어요.

정복연 : 작품 속 등장인물 중에 옆집 아저씨가 나와요. 진백이와 동네 어른들은 옆집 아저씨의 외모와 말투, 목소리 등 몇 가지 단서만 가지고 그 옆집 아저씨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죠. 비 오는 어느 날 위기에 처한 진백이와 엄마가 옆집 아저씨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사람의 겉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실수를 범해요.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 등으로 인해 그 사람의 내면과 됨됨이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마찬가지고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을 인식하는 태도나 방식이 부정적이고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것이 사실이니까요.

사실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것은 어린 시절 깊게 각인되어 있던 하나의 기억입니다. 제가 8살이었거나 9살이었던 같아요. 그날 비가 왔어요. 어머니가 몸이 아픈 저를 업고 초등학교에 데려다주던 길이었죠. 학교 근처 길가에서 죽어 있는 제비를 어머니가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느티나무 아래 묻어주셨습니다. 그때는 어머니의 그 행동이 무얼 의미하는지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 때문인 것 같아요. 어머니는 몸이 아픈 저를 생각하면서 아픈 사람, 아픈 동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마음을 쏟았던 거죠.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이 지난 장마 때 홍수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죽는 모습을 보고 되살아 났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에 마음이 매우 아팠어요. 그러면서 빗속에 죽어 있던 제비를 고이 묻어주던 어머니가 생각났고, 동화를 쓰게 됐습니다. ‘장마가 끝났다’를 통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과 생명의 소중함을요.


하상 : 심사평을 보면 “‘장마가 끝났다’는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이 또래의 아이답고, 거침없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잘 그려진 것이 큰 장점이었다. 장마를 알레고리로 활용한 점이나, 길거리에서 만난 강아지를 통해 주인공의 심리를 투사한 시도는 작가의 세련된 역량을 가늠케 했다. 이후에 작가가 더 나은 작품을 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큰 발전을 기대한다.”는 호평을 받으셨어요. 선생님만의 동화 작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정복연 : 저는 눈으로 아이들의 행동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놀이터나 학교 앞에서, 동네 산책을 하다가 만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는 편입니다. 아이들의 화법과 관심사가 무엇이지 세심하게 관찰합니다. 아이들이 등장하는 신문이나 TV방송, SNS를 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동화책을 많이 읽죠. 어린이의 시각을 상상하면서요. 또 다른 작가들은 어린이의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표현했나 공부하듯이 보곤 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좋은 작품들을 한 줄 읽으며 필사도 합니다.

동화를 쓰면서 아이들이 점점 좋아졌습니다. ‘오세암’을 쓴 정채봉 작가님이 “동심이 불심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 그 말이 이해가 됩니다.

하상 : 많은 글쓰기 장르 중 동화 작업의 힘든 점이라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정복연 : 동화의 세계를 좀 알고 나니 잘 쓰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두려움도 생겨서 오히려 더 글을 쓰기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형식과 내용이어야 하기 때문에 주의할 점과 제약이 많습니다. 단어 선택 하나에도 신중해야 하죠. 동화책 내용이 단순하다고 해서 결코 쉽게 쓸 수 없는 것이 동화입니다. 누구나 동화작가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동화작가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상 : 주로 글은 언제, 어떤 공간에서 쓰시나요? 일에 집중이 안 된다고 생각할 땐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정복연 : 주로 새벽에 글을 씁니다. 노트북은 집중이 어려워서 사용하지 않아요. 데스크탑이 올라간 책상에 앉아야 집중이 되고 글이 써집니다. 건강이 안 좋아서 오래 앉아 있지는 못하죠. 그래서 글을 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것은 속상합니다.

하상 : 좋아하는 책이나 존경하는 작가, 혹은 집필에 영향을 주는 인물이 있다면 얘기해 주세요.

정복연 : 저는 스릴러나 추리 소설을 좋아합니다. 작가는 ‘살인자의 기억법’을 쓰신 김영하 작가님을 좋아하고요. 그분의 소설은 대부분 다 잃는 편입니다. 그리고 동화작가로는 이번 김유정신인문학상의 본심 심사위원을 맡아 주셨던 홍종의 작가님을 좋아합니다.

하상 : 작가님께 가장 소중한 보물 1호는? 그 이유도 말씀해주세요.

정복연 : 제게 보물 1호는 컴퓨터 아닐까요? 컴퓨터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컴퓨터있어야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비록 건강이 좋지 않아 오랜 시간을 몰입할 수 없지만 글 쓰는 순간이 정말 행복해요. 하나의 마력일 것 같아요. 창작이 힘들 땐 내가 왜 이 힘든 글을 쓸까? 싶다가도 일단 글을 완성시키고 나면 그 만족감과 성취감이 이만 저만 큰 것이 아닙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제게 또 하나의 도전입니다. 이뤄냈을 때 뿌듯하고 대견하죠. 과정이 힘들었을수록 성취감은 더 크고요.

하상 : 만약 하루만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나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요?

정복연 : 보고 싶은 사람은 엄마죠. 제 기억 속의 엄마 모습은 박제된 시간 속에서 20년 전 젊었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요. 남동생 말로는 지금의 엄마는 완전히 노인이 됐다는데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주름진 엄마 얼굴은 어떤지 한번 보고 싶네요. 하고 싶은 일은 혼자 떠나는 여행입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뚜벅뚜벅 길을 걷고 싶습니다.

하상 : ‘장마가 끝났다’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선생님의 후속 작품도 기다릴 겁니다. 저도 그중에 한 명이기도 하고요. 신년 계획과 함께 앞으로 꼭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나 바람을 들려주세요.

정복연 : 현재 판타지 장편 소설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생활 동화를 많이 썼는데 판타지 장르 안에서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야기를 쓰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쉽지 않네요. 어렵지만 도전해보려고요. 관련 책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완성되면 ‘문학동네’ 공모전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출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월간문화교양지 하상매거진 2024년 1‧2월호 (통권 제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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