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만능 스포츠맨, 김정빈 선수를 만나다!

by 최연신


인터뷰―만나고 싶었습니다


만능 스포츠맨, 김정빈 선수를 만나다!


기획 및 취재 최연신(하상매거진 인터뷰어)



KakaoTalk_20240305_013639153.jpg?type=w773


김정빈(33세) 씨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쇼다운에서 한국인 최초로 국제대회 승리 선수로 이름을 남겼고,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역도를 거쳐 지금은 탠덤 사이클 국가대표선수로 활약 중이다. 그는 이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탠덤 사이클을 택한다고 했다.


2016년에 처음 사이클에 입문한 그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지난 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탠덤 사이클로 3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제4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도 2관왕을 달성해 명실상부한 한국 탠덤 사이클의 에이스임을 입증했다.


최근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는 그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정빈 씨는 안내견 메이와 동행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점잖고 영리한 메이는 우리가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한쪽에서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김정빈 씨의 첫인상은 단정하고 세련된 훈남이었는데, 안내견 메이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에서, 예의 바른 말씨와 정중함, 그리고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에서 그의 따뜻한 품성까지 엿볼 수 있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김정빈 씨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하상: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시력은 어느 정도 되시는지, 시력을 잃은 원인을 여쭤봐도 될까요?


김정빈: 저는 망막색소변성증(RP)입니다. 보통 RP는 주변 망막에서 먼저 변성이 시작하기 때문에 주변 시야의 협착이 먼저 나타나고 중심 시력은 나중에 감소한다는데, 저는 현재 중심시야는 거의 사라지고 주변 시야만 약간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하상: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야맹증이 동반됐고, 중학교 때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정빈: 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 곰곰이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더 어릴 적부터 야맹증이 있었습니다. 어렴풋이 5살, 6살 무렵이 기억나거든요. 해가 지면 물체를 분간하기 힘들어 저녁엔 밖에서 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참 좋아했습니다. 운동을 직접 하는 것도 즐기고,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도 좋아했어요. 물론 친구들과 축구나 야구를 할 때면 날아오는 공이 잘 보이지 않아서 불편하긴 했죠. 하지만, 일상생활에선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고, 고3 후반부터 급격하게 시력이 안 좋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운동과도 멀어졌습니다.


하상: 과거 밴드에서 기타를 치는 기타리스트로 활동도 하셨다죠?


김정빈: 네, 장애 판정을 받은 후 진로·진학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만약 당시에 장애인 스포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도전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일반학교에 다니면서 관련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운동을 좋아하지만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에는 흥미도, 소질도 없었고요. 운동 외에도 평소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역시 예체능이었습니다. 특히 밴드 음악 듣는 걸 좋아했는데, 음악은 시각장애가 있어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가 있어도 훌륭한 음악가가 많잖아요. 청각장애가 있는 베토벤도 있고, 팝페라 가수로도 알려졌지만 클래식 성악가로서는 드물게 음반 수천만 장의 판매 실적을 보여준 안드레아 보첼리는 대표적인 시각장애인 음악가죠. 레이 찰스나 스티비 원더는 흑인영가나 블루스, 재즈 분야에서 활약한 시각장애 음악가들이었고, 라울 미동은 시각장애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타 연주와 가창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아티스트죠.


밴드 음악을 좋아했던 저는 ‘그래 나도 한번 음악을 해보자.’ 결심하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진학도 실용음악과를 선택해 기타리스트의 꿈을 키우기도 했죠. 20대 중반까지는 밴드 활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기타 강습도 했지만, 당시에 전 무척 행복했어요.


KakaoTalk_20240305_013714894_02.jpg?type=w773


하상: 그렇다면 사이클은 언제부터 시작한 건가요?


김정빈: 2016년 여름, 재활을 위해 경기도시각장애인복지관을 다녔습니다. 그때 복지관 팀장님이 장애인 스포츠가 있다며 제게 운동해볼 것을 추천해 주셨어요. 팀장님의 권유를 계기로 쇼다운을 시작했죠. 이어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역도를 거쳐 지금은 탠덤 사이클에 정착했고 2018년부터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하상: 쇼다운, 스키, 역도, 그리고 사이클까지 이처럼 다양한 스포츠를 거쳐 사이클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정빈: 스포츠마다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스포츠를 통해 아시안 게임, 세계선수권, 올림픽 등 세계 무대까지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아쉽게도 대부분 종목은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했어요. 이를테면, 크로스컨트리는 패럴림픽 정식 종목에 들어 있지만 아시안 게임 종목에는 없고, 쇼다운은 세계선수권 대회만 있고, 역도는 아시안 게임도 패럴림픽도 채택이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이클은 열정과 노력만 기울인다면 세계 무대에서 기량을 맘껏 펼쳐볼 수 있는 최적의 종목이기도 하고, 다행히 제게 소질도 있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습니다.


하상: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사이클만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김정빈: 사실 시각장애인은 사이클에 도전하기 쉽지 않아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걷는 것도 달리는 것도 힘든데, 사이클을 탄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기 힘든 일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눈이 되어주는 동승자가 필요하죠. 탠덤 사이클은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2인 1조로 동승해 탑니다. 비장애인 파일럿이 앞좌석에서 방향을 조절하고, 뒷좌석의 시각장애인이 함께 페달을 밟아 속도를 내죠. 탠덤 사이클의 매력이라면 스피드와 균형입니다. 달릴 때 느껴지는 속도감도 즐겁지만, 중심을 잡고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재미도 쏠쏠해요. 또 바람의 냄새와 살갗에 스치는 촉감 등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도 사이클의 매력입니다.


하상: 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탠덤 사이클로 3관왕을 차지하셨는데, 경기파트너 윤중헌(전북장애인사이클연맹) 선수와 함께 출전하셨죠. 10월 23일 4,000m 개인 추발에서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6일엔 18.5㎞ 도로 독주에서 우승, 그리고 27일 69㎞ 개인 도로에서 1시간 35분 27초의 기록으로 대회 세 번째 금메달을 차지하셨습니다. 단순한 우승이 아니라 3관왕을 차지한 소감은 남달랐을 것 같은데 수상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김정빈: 한국 선수로서 사이클 종목에서 장애인아시안게임 3관왕이 나온 것은 첫 기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첫날 4,000m 개인 추발 경기 때 가장 많이 긴장했습니다. 첫 경기이기도 했지만, 훈련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정말 잘 타고 싶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이런 긴장감이 저를 각성시켰고,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모든 경기가 다 의미 있지만, 첫 번째 금메달은 정말 뜻깊었어요. 시상대에 올라가서는 감격해서 울컥하기도 했는데, 그동안 도움을 주고 응원해 준 가족, 친구, 지인들, 그리고 여자친구, 안내견 메이가 생각이 나면서 만감이 교차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안 게임에 함께 출전해 금메달을 딴 윤중헌 선수와 지금까지 저와 호흡을 맞춰 주신 또 다른 파일럿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하상: 선생님이 운동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은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군요.


김정빈: 네, 맞아요. 좋아하는 운동이지만 힘든 순간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가족과 여자친구, 그리고 안내견 메이는 제가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입니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 음악을 전공하고 직업으로 삼고 있던 제가 늦은 나이에 운동선수로 직업을 바꾸어도 될까 고민이 많을 때, 부모님께서는 흔쾌히 허락해주셨고 지원도 아낌없이 해주셨죠. 제 곁에서 10년을 함께한 여자친구도 항상 저를 믿어주고 용기를 주는 고마운 사람이고요. 제 눈이 되어주는 안내견 메이 역시 제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상: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한 조로 출전하는 탠덤 사이클의 경우 파일럿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경기라는 인식이 있어요. 파일럿에 따라 순위가 바뀌기도 한다던데 맞는 이야기인가요?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김정빈: 그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스포츠도 있지만, 탠덤 사이클은 꼭 동행자가 있어야만 이길 수 있는 종목이죠. 그렇다 보니 당연히 파일럿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뒤에서 페달을 밟는 시각장애인 선수의 기량도 중요합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예로 들어볼까요? 요즘은 선수별 데이터를 살펴보고 분석하며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데, 카자흐스탄에서 전 프로 출신 파일럿이 출전했습니다. 키가 190이 넘는 월등한 피지컬을 가진 선수였죠. 저와 함께 출전한 윤중헌 선수도 카자흐스탄 파일럿의 파워가 본인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사이클 실력이 ‘어나더 레벨’이라고 말하더군요. 체격 조건도 좋고 실력까지 겸비한 프로 선수가 파일럿이라고 하니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뒷좌석의 시각장애인 선수의 실력은 보통이었어요. 결국 도로 독주에서 저희가 1등을 했고 카자흐스탄 선수들은 3등에 그쳤죠.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아무리 파일럿의 실력이 뛰어나도 동승자인 시각장애인 선수가 받쳐주지 못하면 앞 선수는 저항이 배로 걸려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탠덤 사이클은 파일럿과 장애인의 ‘합’이 중요한 경기입니다.


하상: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요즘 부상 치료차 병원을 다니신다고 하셨는데, 어쩌다가 다치셨나요? 상태는 어느 정도인지요?


김정빈: 사고가 일어난 건 지난해 12월 3일, 일본 도쿄 파라사이클링 대회에서였습니다. 함께 출전해 호흡을 맞춘 파일럿은 조선 선수(50)였고요. 도로 독주 종목에서 주행 중에 낙상 사고가 있었습니다. 흙으로 된 구간에 들어갔을 때, 갑자기 뒷바퀴에서 ‘빵’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타이어가 터진 거였죠. 자전거가 전복되면서 화단에 부딪혔는데 저도 조선 선수도 크게 다쳤습니다. 저는 심한 외상과 치골 골절이라는 의사 소견을 들었습니다. 여전히 자전거 안장에 앉긴 어려운 상태라 계속해서 물리치료와 체외충격파, 그리고 도수 등 통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다행히 저는 조금씩 회복해 나가는 단계지만, 파일럿 선수는 크게 다쳤습니다. 경추(목뼈) 골절, 쇄골 골절, 요추(허리뼈) 골절을 입었죠. 일본 병원에서 1차 수술을 받고, 한국에 돌아와 원주 기독병원에서 사지마비로 입원한 상태에서 재활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하상: 두 분 모두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 사이클 대표팀의 훈련 환경은 열악하다. 장애인 사이클 선수들이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실업팀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봤어요. 선수로서의 현실이 어떤 건가요?


김정빈: 사실 우리 장애인 사이클 대표팀의 훈련 환경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현재 저는 한 중소기업 직원 소속 직원으로 최소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실업팀과 직장인부는 다릅니다. 실업팀에 속한 운동 선수와 비교했을 때 고가의 특수 장비 비용과 훈련 지원 등 여러 면에서 부족함이 많아요. 비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은 기량만 뛰어나다면 실업팀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지만 많은 장애인 선수들은 실력이 좋아도 소속팀이 없어 생업과 운동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실업팀이 있는 장애인 스포츠도 있지만 비장애인 스포츠와 비교할 수 없고 사이클은 그나마 실업팀조차 존재하지 않아 너무 아쉽습니다. 저는 장애인 엘리트 스포츠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실업팀 창단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걸 선수의 열정과 인내에만 맡길 수 없기 때문이죠. 따라서 저는 장애인 사이클 선수들이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고 더 많은 어린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실업팀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상: 만약 하루만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나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요?


김정빈: 생각을 아예 안 해봤는데요.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어느 정도 봤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가족이나 친구들의 모습이 시력을 잃은 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요. 만약 하루만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네요. 그리고 시력을 잃고 만난 친구들과 여자친구의 모습은 제가 머릿속으로 그린 모습과 얼마나 비슷한지 궁금하고, 우리 메이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고 싶습니다.


해보고 싶은 일은 운전이요. 제가 손수 운전하는 자동차에 가족이랑, 여자친구, 메이를 태우고 드라이브시켜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상: 마지막으로 앞으로 꼭 이루고자 하시는 목표나 바람을 들려주시면서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김정빈: 아직 은퇴 시기를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나이를 먹고 운동선수로서 기량이 떨어지면 저도 언젠가 은퇴해야 할 때가 오겠죠. 그 전에 꼭 한번 올림픽에 출전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안 좋아질 테고 언젠가는 흐릿하게 보이는 세상도 완전히 빛을 잃겠지만, 항상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 겁니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면서요.


KakaoTalk_20240305_013505844_02.jpg?type=w773


출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월간문화교양지 하상매거진 2024년 3월호 (통권 제149호)




keyword
이전 01화제29회 김유정신인문학상 동화 부문 당선, 정복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