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방에 있는 포토가랜드의 사진에는 십 년 전 유럽여행길의 가족사진이 있다. 이번 여행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핸드폰에서 찾아서 십 년 전 사진과 지금의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십 년의 시간 간극이 사진에서 그대로 보인다.
십 년 사이 우리 딸은 어린아이에서 아가씨로, 우리 부부는 젊은 엄마아빠에서 중년부부로 인생챕터가 한 장 넘어갔음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십 년 사이 아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한 딸을 보니 뿌듯하고 기특한데, 십 년 사이 스타일이 변한 우리 부부(특히, 나)를 보니 세월이 또 이렇게 흘렀구나 하는 묘한 기분도 들었다.
십년전 유럽여행 가족사진 포토가랜드
그러고 보니 떠오른 짧은 에피소드 한 컷.
이번 여행에서 알록다록 모자에 헐렁하고 편한 바지에 엑스자로 백을 메고 손가락으로 V를 하며 사진 포즈를 잡는 나에게 우리 남편의 무심코 던질 말에 나는 지중해 태양보다 얼굴이 화끈했었다.
“영락없이 한국 아줌마네!”
헉, 로마 스페인 광장 한복판에서 사랑하는 부인에게 할 말은 아니잖아!
남편은 무심코 장난스럽게(빈말은 잘 못하는 스타일로서) 한 말이었지만 사실 내가 순간 생각하기에도 찔리는 부분이 있어서 스페인 광장의 또 다른 새로운 동상이 되는 줄 알았다.
작품명: 헉! 찔린 동양의 부인.
로마 스페인광장에서
십 년 만에 다시 찾은 바티칸
그렇게 우리는 바티칸을 십 년 만에 다시 찾았다.
십 년 전에도 뜨거운 한 여름이었고 2024년 바티칸도 역시 같은 태양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십 년 전에는 패키지여행이라, 큰 관광버스로 바티칸 입구까지 왔기 때문에 높은 바티칸의 장벽이 별안간 눈앞에 나타난 느낌이었다.
이번은 달랐다. 우리가 로마에서 지낸 에어비앤비에서 걸어서 30분 정도면 바티칸으로 갈 수 있었다. 우리가 묵은 에어비앤비는 관광지 쪽이 아니고 일반 시민들의 거주지역에 가까웠기 때문에 로마시민들의 일상적인 아침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바티칸까지의 도보산책은 상당히 인상적이고 즐거웠다. 습하지 않은 날씨이기에 해가 준비운동 중인 아침시간에는 한여름이라 해도 상쾌함 마저 느껴졌다. 산들바람과 함께 로마특유의 빈티지적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아침전경이 우리의 기분을 들뜨게 했다.
로마의 주거지 건물들은 대체로 높지 않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도 5층 높이였다. 옅은 황토색 석조건물에 아기자기한 창틀과 고풍스러운 문고리들. 깨어진 창문이나, 베란다의 녹슨 철울타리, 칠 벗겨진 육중한 나무현관문, 울퉁불퉁 솟아오르고 부분적으로 이가 깨진 돌블록들. 특히, 50년이 다 되어가는 엘리베이터는 너무 빈티지해서 탈 때마다 '덜컹'거리며 오르내리는 통에 아슬아슬한 재미가 있었다.
그 건물들 사이로 이어진 미로 같은 도로. 그 좁은 도로로 소형자동차들이 오고 간다. 차들은 대체로 오래되고 세차한 지 상당히 된 듯한 차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일상주거지에서 발견한 또 다른 것은 로마사람들은 한국에 비해 큰 대형견들을 많이 키우는 것 같다. 아침산책을 나온 대형견들과 소박한 차림의 로마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로마 일반 주택가의 풍경
오십년 된 엘리베이터
바티칸 외벽(성벽)에 줄을 서고 있는 관광객들
로마도시가 품고 있는 바티칸.
이런저런 전경에 빠져서 걷다 보니, 금세 바티칸의 장엄한 돌벽이 눈앞에 보였다. 그새 준비운동을 끝낸 지중해의 태양은 위용을 단단히 보여주겠다는 듯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십 년 전에는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의 신기루 궁전처럼 바티칸이 홀로 동떨어진 마술적인 신전 같았다면, 2024년 여름의 바티칸은 로마시민들의 역사와 삶 속에서 공존하는 현존의 바티칸으로 다가왔다. 비록 바티칸은 독립국(세계에서 가장 작은)이지만 바티칸을 둘러싸고 있는 로마의 전경과 하나로 어우러졌다. 나중에 가이드를 통해 들은 이야기이지만 바티칸 주변의 건물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의 높이보다 높게 짓지 않아야 하는 규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티칸을 중심으로 한 로마도시는 서로 이질적이지 않고 어우러져 보이는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 바티칸 원데이 투어.
자유여행이었지만 바티칸은 원데이투어로 예약했다. 결론적으로 매우 잘 한 결정이었다. 오전 4시간 정도 바티칸 가이드의 역사적 배경의 작품 설명과 효율적인 안내 덕분에 바티칸의 역사적 흐름과 그 안의 수많은 작품들에 대한 감상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바티칸에서 가장 빠질 수 없는 것. 경이로운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가 일생을 바친 그 대작의 스토리.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성베드로 성당의 장엄함과 화려함. 바티칸 건축물 곳곳의 성스럽고 신비롭기까지 한 작품들과 건축물들. 인간이 신에 대한 경외심을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한계치를 보여주는 듯한 압도적 경이로움에 십 년 전이나 2024년도나 숙연하고 경이로운 감정은 마찬가지였다(십년 전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작품들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또렷한데, 이번에도 내 윗입술과 아랫입술은 쉽게 맞닿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바티칸 내부 성당 건축물
십 년 전에는 없었고 2024년도 바티칸에는 있는 것.
자랑스러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성상.
이번 바티칸에서 가장 가슴 뿌듯했던 것은 바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성상이 성 베드로 성당에 자랑스럽게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작년에 설치되었는데, 바티칸 최초의 아시아 성인의 성상이라고 하니 더욱 어깨가 으쓱했다. 성 베드로 성당 입구 외벽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김대건 신부님의 성상. 그 앞에서 한참을 우러러보고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모습도 얼마나 자애로운 형상인지, 마치 성광이 비치는 듯했다. 단정히 갓을 쓴 모습에 한복 두루마리 도포 차림 위로 가톨릭 성의를 어깨에 걸치신 채 두 팔을 자애롭게 벌리신 모습이 인자해 보였다. 해외여행에서 한국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실감하는 이때에 이번 바티칸에서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성상을 마주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더욱 상승시켰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성상
그리고 바티칸에서의 나의 마음을 잡았던 것. 역시 피에타!
십자가 못 박히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의 비탄을 묘사한 피에타. 바티칸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피에타 조각상 중의 가장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 가이드의 상세한 설명이 더해져서이기도 하겠지만 피에타작품 자체가 주는 숙연함에 휩싸여 침묵 한 채 그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성모마리아의 비통함과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의 성혈이 흐르고 있는 듯한 피에타 앞에서 모두 조용한 침묵 속에 머물렀다.
바티칸의 피에타 (미켈란젤로)
나의 시선은 성모마리아에게 안겨 있는 예수님의 못 자국난 발에 멈추었다.
못 자국이 선명한 예수님의 발.
바티칸의 그 많은 경이롭고 웅장한 건축물과 작품들 중에서 나의 마음렌즈에 가장 깊게 저장된 것이 바로 ‘못 자국 선명한 예수님의 발’이었다.
그 발은.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하는 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걷고 걸었던 발.
인간의 대속을 위해 골고다를 오르던 발.
못 박힘의 고통을 감내했던 발.
나는 피에타의 못 박힌 예수의 발을 눈길로 어루만지며 잠시 기도를 했다.
피에타 (예수님의 못 박힌 발)
십 년 전에도 있고 2024년 바티칸에도 있는 것.
며칠 전 딸에게 물었다.
"예인아, 바티칸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뭐였어?"
"엄마의 눈빛."
"엄마의 눈빛?"
나는 딸의 의외의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딸의 눈을 바라보았다.
"십 년 전에도 엄마가 바티칸에서 너무 감탄하며 좋아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이번에도 엄마는 바티칸을 너무 좋아했잖아. 엄마가 바티칸의 모든 것들을 감탄하고 경이로워하는 그 눈빛이 나는 너무 좋았어."
순간, 나는 할 말을 잃고 딸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무언가가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딸은 내 눈빛을, 표정을, 마음을 바라보고 있었구나!'
시스티나 성당, 천지창조, 미켈란젤로, 피에타, 성 베드로성당, 엄청난 문화적 가치의 작품들 중에서
딸은 '기쁨과 경탄에 찬 엄마의 눈빛'을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한 것이다.
십 년 전 바티칸에도 있었고 2024년 바티칸에도 있는 것.
그 어느 때나, 그 어느 곳이나 변치 않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
2024년 뜨거운 여름, 지중해 태양이 내리꽂히는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지붕의 열기보다도 더 뜨겁고 위대한 것은 '가족의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