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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득여사 Sep 06. 2024

지켜나가는 것이냐, 그대로 두는 것이냐

#시간의 진공관 속 세상 #예스러움(빈티지) 속에 살다

발전과 개혁. 혁신과 번영, 개선과 쇄신.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어울리는 캐치프레이즈이다.

우리나라의 발전은 딱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같다. 술래가 잠시 벽에 눈을 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획 뒤돌아 볼 때마다 아이들이 저만치에서 성큼성큼 술래 앞까지 어느새 와 있다.

세계가 놀랄 만큼의 초고속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 그래서 유난히, 우리나라의 세대 간에는 ‘나 젊을 때는’ ‘나 너만 할 때는’식의 이야기들이 마치 다음 세대들이 들으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쯤 되는, 이미 그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된 전래동화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초고속 성장 대한민국의 서울 야경

그래서일까? 십 년 사이만 보더라도 외국을 나갈 때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외국에서 한국의 위상이 계속 상승한다는 것, 또 하나는 한국이 여러 가지 면에서 살기 좋다는 것이다.


로마와 몰타 여행스케치를 ‘광복절 축사’스럽게 시작한 것이 의아할 수 있겠다. 그 연결고리를 이어보자면, 너무 상반되는 삶의 방식과 속도의 차이를 이번 여행에서도 실감했기 때문이다.    



패키지여행이 아닌 자유여행의 좋은 점은 취향과 관심사에 따른 유연한 발걸음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눈길이 가고 머물고 싶은 곳에서 발길을 늦출 수 있다는 것!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가족 세 명이 서로 오케이만 한다면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이거 할까 저거 할까’, ‘이거 먹을까 저거 먹을까’ 서로 합의만 이룬다면 얼마든지 여행길은 변경될 수 있었다. 다행히, 가족 수가 적고 고집불통의 성격은 아니다 보니 의견합의가 순조로웠다.


이번 여행은 그래서 좀 찬찬히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특히 좋았다. 로마와 몰타의 구석구석,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 아닌 그들의 생활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몰타 발레타의 주거지역


몰타 발레타지역  옛날 석벽, 색 입힌 나무 대문



시간의 진공관에 들어온 느낌


" 깨어진 모퉁이 벽돌, 테라스 철조물의 녹물 자욱, 본래의 칠 색을 가늠하기 어려운 손때 탄 문 손잡이, 도로 모퉁이에 질서 없이 웃자란 들풀들, 세월의 바람에 씻기고 깎인 교회 종탑, 네온사인이 아닌 페인트와 그림으로 칠 한 가게의 빛바랜 간판, 몇 백 년 전의 것인지 가늠도 안 되는 골목골목의 돌벽돌길, 돌벽돌과 집 사이에 박혀있는 닳아 뭉뚝해진 주춧돌, 외벽 창틀 위 낭창하게 걸린 줄에서 나무 끼는 식탁보와 수건 몇 장, 대형 액자처럼 사람 키높이의 두 배 이상의  둔중한 나무 문, 창틀 밑 소박한 제라늄은 선들선들 흔들리고, 한낮 해 가려주는 격창이 삐끗 열려 있거나 또는 닫혀있는 돌외벽의 창문들, 셀 수 없는 세월 동안 수많은 발걸음이 닿았던 건물입구 안의 대리석 바닥의 해묵은 윤기…."


여기저기 눈길 닿는 곳곳, 발길 닿는 곳곳은 아마 30년 전, 100년 전, 300년 전 그 이상 전에도 늘 그 모습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로마와 몰타에서는 시간의 진공관 속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몰타 발레타. 해안을 따라 자리한 주거지역의 야경



건축물이나 주거 환경만이 아니다.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어서 좀 조심스럽지만, 시사용 글이나 기사가 아닌 개인에세이니 자기 검열에서 자체통과 시킨 관점임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로마와 몰타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미디어물들(광고, 드라마, 쇼프로 등)이 덜 세련된(?) 느낌이라는 점이다. 어찌 보면 좀 순박한 느낌마저 든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파리올림픽 기간이라 올림픽 관련 중계방송이 많았는데, 앵커들이나 영상의 구성들이 뭔지 모르게 순박(!!)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혹시, 나만의 편견이나 보편적이지 않은 시각인가 싶어서 남편과 딸에게 의견을 물으니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일단 세 명의 의견이 같으니 조금의 보편성은 확보한 것이리라. 꾸밈이나, 과도한 세련미, 인공적이고 규격화된 미의 기준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인상을 더욱 받은 것 같기도 하다.




눈빛을 마주치려 레이저를 발사!!


‘국·밥·찌게 없이는 못 살아’식의 가족이 원래 아니다 보니(집밥을 열심히 못 해 준 것에서 오는 긍정적 효과라고 해야 하나?) 로마에서도 몰타에서도 우리 가족은 현지 음식들이 맛있었다. 더구나, 이탈리아 음식들은 대체로 익숙했고 몰타는 로마보다도 전반적으로 음식들이 풍성하고 맛있었다.

음식이 맛있었던 가장 첫 번째 이유! ‘일상의 짐’들을 한국에 고이 벗어 두고 온 터라 우리 가족은 ‘가뿐한 머리와 위장’ 덕에 비상용 소화제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성격이 느긋한 편이 아닌 나, 나 보다 더욱 느긋함과는 거리가 먼 남편에게 유럽의 식당문화는 ‘답답’한 구석이 있었다. 한국에서 손을 높이 들며 ‘저기요!’ ‘이모님!’ ‘사장님!’하던 습관은 유럽에서는 매우 터부시 하는 행동이었다. 또한 ‘계산해 주세요!’하며 카운터에서 카드를 들이미는 것도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보편화된 키오스크는 당연히 찾아보기 힘들다. 웨이터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식당 손님이 많을 때는 당연히 더 많이 기다리게 된다. 나와 남편은 급한 마음에 자꾸 손이 올라갔다. 그럴 때마다 딸은 ‘기다려 엄마!’ ‘기다려 아빠!’ 라며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상기시켜 주었다.


손도 못 들고, 부르지도 못하니 방법은 하나! 레이저 눈빛을 발사하며 ‘이곳을 보시오!’라는 텔레파시를 보내는 수밖에 없다. 역시 의지의 한국인! 우리의 레이저가 세긴 센가 보다. 다행히 인내심에 크게 스크레치가 나지 않는 시간 내에서 웨이터와 눈빛이 마주쳤다.  

몰타의 발레타 식당 내부 전경
로마 시내의 식당 앞 ('무엇을 먹을까?')




지켜나가는 것이냐, 그대로 두는 것이냐


로마와 몰타 두 여행지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진 것은 ‘예스러움을 참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연 ‘지킨다’는 의미가 더 적합할지, 아니면 ‘그대로 두는 것’이라는 관점이 더 적합할지!  ‘업어치나 메치나 마찬가지’식의 말장난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지킨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지(변하지 않게 유지시키려는 노력)가 깃들어 있다면, ‘그대로 두는 것’은 능동성과 적극성이 슉~ 빠져버린 느낌이 크다. 과연 그들은 어느 쪽에 가까운 것 인가!


로마와 몰타의 지금이 과거의 것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인지’  그 난해한 생각은 이쯤 하자! 이렇든 저렇든 내가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기에!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지키고 싶은 것'과 '그대로 두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어쩌면 '지킨다'는 것은 변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고, '그대로 두는 것'은 변화를 수용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무엇을 지키려 하고 무엇을 그대로 두려 하는가! 

내 삶의 지향점, 가치관, 신념은 지키고 싶다. 그리고 자연의 순리적인 흐름으로 변화되는 것은 유연하게 수용하는 것 즉 순리에 맡기며 살아가고 싶다. 



‘시간의 진공관 속 세상’ 같은 로마와 몰타는 내게 몽환적인 느낌을 주었다. 특히, 적당히 가려질 것은 가려지고 ‘보이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이 부각되는 로마와 몰타의 밤 전경은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외벽 등 으로 몽환적 분위기가 더해진 야경
몰타 발레타의 밤. 골목식당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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