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의 발레타. 발레타는 중세 구시가지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발레타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것은 바로 ‘빛깔’이다. 발레타의 빛깔은 전체적으로 연한 황토색이다. 건물도 해안절벽도 전체적으로 황토빛깔이 많다. 그리고 그 빛깔과 대비되는 짙은 녹색 바다빛깔. 그리고 맑고 푸른 하늘빛깔. 그리고 또 다른 빛깔들!
빛깔(사전적 의미) 물체가 빛을 받을 때 빛의 파장에 따라 그 거죽에 나타나는 특유한 빛.
일반 상식사전에서는 태양이나, 인위적인 조명 등 빛의 파장으로 생성되는 것이 빛깔이라면, 나의 감성사전에서는 마음빛의 파장에 따라 더해진 특유한 마음빛깔은 어떤 것일까?
몰타의 빛깔들
연한 황토빛깔!
비행기 창으로 내려다 보이는 몰타는 황톳빛이었다. 해안을 따라서 황토 빛 벽돌로 이루어진 구시가지는 전체적으로 연한 황토빛깔이었다. 비행기 착류 전 내려다보이는 몰타는 다소 황량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실제 몰타에 도착해서 몰타 발레타로 우버를 타고 이동할 때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진하지도 않고 연하지도 않은 황톳빛 중세시대 건물들이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같은 색으로 어우러진다.
창틀이나 육중한 나무 문들의 색은 파랑 빨강 원색으로 칠해서인지 동화스럽고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어느 건물 하나만 톡 튀지 않았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게나 식당카페 골목의 간판들도 네온사인은 찾아보기 어렵고 물감이나 페인트로만 마감되었다.
그래서 렌즈가 정확하게 맞지 않은 뿌연 안경을 쓰거나, 초점 맞지 않은 채 사진을 찍으면 몰타의 발레타는 전체적으로 진하지 않은 황토빛깔 수채화 물감으로 칠한 느낌이다.
몽환적이고 따뜻한 빛깔, 흙내음이 바람결에 나풀거리는 빛깔, 시대의 변화속도와 무관한 빛깔, 움직임보다는 멈춤이 더 어울리는 빛깔. 연한 황토빛깔의 발레타!!
해안을 따라 구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발레타 구도시의 골목계단은 바다로 이어진다
짙은 녹색빛깔!!
해안을 따라 발레타 구시가지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황토빛깔의 수채화를 칠해놓았다면 발레타를 품은 지중해 바다 빛깔은 짙은 녹색과 파랑이 절묘하게 뒤섞여 있다. 강렬한 지중해 태양의 열기에 따라 바다는 녹색과 파랑 사이에서 일렁거렸다. 발레타의 구시가지를 품은 지중해는 마치 몰타의 대서사시를 읊조리는 듯 조용히 때로는 격랑 치며 끊임없이 춤을 추었다.
짙푸른 녹색과 파랑의 두 무희의 무리가 한데 얽혔다 흩어졌다는 반복하는 발레타의 바다. 멈춘 듯 고요한 황톳빛 구시가지와 절묘한 대비를 이루며 우리를 유혹했다. 저 지중해 먼바다에서 세이렌(Siren)이 유혹의 노래를 흘려보내고 있을 것 만 같은 신비한 에머럴드 빛깔의 매혹적인 군무!
발레타 해안 구시가지와 인접한 바다는 녹색빛깔에 가깝고, 먼바다는 짙은 코발트빛깔에 가깝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 나를 빠져들게 하는 색. 녹색과 코발트블루의 매력은 나를 늘 꼼짝 못 하게 한다.
짙푸른 바다 . 사진은 푸른빛이 많지만 실제는 에머럴드 빛도 많다.
깨끗한 파랑빛깔!!
지중해의 바다가 짙푸른 에머럴드 빛깔에 가깝다면, 지중해의 하늘은 정말 ‘파랗다’ 빛깔이다.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일 필요도 없을 만큼, 깨끗한 ‘파랑’ 그 자체이다. 몰타의 하늘은 햇살 때문에 눈이 부시기 전에, 너무도 깨끗한 파랑 빛의 순수함에 아찔하게 눈이 부시다. 맑고 깨끗한 파랑 하늘에 하얀 구름이라도 몽실몽실 떠 있으면 그 천진난만함에 내 마음과 눈은 이미 동심으로 가득 찬다.
우리가 몰타에 머물던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흐리거나 비가 온 적이 없었다. 몰타가 여름휴양지로 떠오르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 날씨가 한몫하는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하늘은 ‘파랑’ 그 자체로 펼쳐져 있다.
하얀 도화지가 아니라 ‘깨끗한 파랑도화지’ 한 장이 촤르르 펼쳐져 있는 느낌이다.
예닐곱 살 아이의 그림처럼 뭉게뭉게 하얀 구름을 그리고 싶기도 하고, 찐 노랑 크레파스로 동그란 해에 삐뚤빼뚤 빗금의 햇살을 그려 넣고 싶기도 하다. 아니다! 너무 순수한 파랑이라 그냥 그대로 두고 바라보고 싶은 파랑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랑' 그 자체의 하늘
농염한 붉은 빛깔!!
치명적인 유혹에 어울리는 색감으로 왜 붉은색을 많이 쓰는지 알겠다. 몰타의 파랑 하늘은 지중해의 태양이 사그라지는 때에 그 빛을 거두고 붉은 물감을 하늘물에 방울방울 떨어뜨린다. 순수하늘물에 떨어진 붉은 물감은 붉은 치마폭으로휘감듯 몰타의 하늘을 감싼다. 석양은 다 멋지기 마련이라지만, 지중해에서 만끽하는 일몰과 석양의 빛깔은 나의 눈과 가슴을 떨리게 하였다.
맑은 하늘이라서 석양 빛깔도 이리 순수하면서도 농염한 것일까? 시시각각 붉은빛이 더욱 진해 지다가 어둠의 장막 속으로 사그라드는 진홍빛 석양은 나를 취하게 한다.
지중해 석양의 몽환적인 운치
그래서 취했다. 붉은 와인에!
지중해 밤공기를 듬뿍 품은 발레타의 밤에 와인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발레타의 밤 정취는 이미 나를 취하게 했다. 그리고 구시가지의 밤을 배경으로 한 발레타 식당가에서는 은은히 퍼지는 지중해 바다의 내음과 소금기 묻은 바다의 미풍을 안주 삼아 와인을 안 마실 수 없다.
잔에 담긴 붉은 와인에는 발레타의 바람냄새가 배어있다.
몰타의 와인은 몰타의 내음이 배어있다
그리고 사랑빛깔, 그 오묘한 빛깔!
빛깔로 기억되는 발레타.
따뜻하고 청량한 느낌이 공존하는.
고즈넉함이 주는 여유로움과 안정감.
지중해 바다는 원형적 근원의 느낌. 엄마의 자궁 속 태아의 느낌일까.
지중해의 석양은 위로와 평온.
몰타의 와인은 땅의 내음이 배어있다.
발레타에서의 우리 가족의 사랑빛깔은 무엇일까?
사랑은 빨강도 좋고
사랑은 파랑도 좋고
사랑은 초록도 좋고
사랑은 그 어떤 색도 다 좋다. 하물며 다 덮어버리는 검정이라도, 증발해 버리는 하얀색이라도 사랑은 어떤 색이라고 해도 강렬하게 존재한다.
몰타의 발레타는 내게 ‘빛깔’로 먼저 각인되었고 먼 훗날 그 빛깔로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오래 가장 깊이 남는 것으로는
아름다운 발레타에서 함께 웃고, 감탄하고, 얘기하고, 걷고, 먹고, 마시고, 자고, 일어나고….. 함께 한 우리 가족의 빛깔! 그 사랑의 빛깔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