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티칸에서 성당이나, 예술작품에 대한 나의 충족감이 충분했다고 느꼈기에 몰타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몰타 발레타의 몽환적인 중세 구도시와 연초록 지중해 바다 그리고 세인트 줄리언스에서의 힐링휴양지의 휴식…. 몰타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이것이었다.
나의 여행스케치에서 바티칸이 대의적이고 역사적이라면, 몰타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서정적인 스케치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몰타의 ‘성 요한 대성당’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었다. 이렇게 화려한 보물이 작은 몰타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몰타 여행스케치 연재에서 이번 글을 ‘성 요한 대성당’으로 다룬 것은 이 보물상자를 열지 않고 그냥 봉인해 버리기에는 화려함의 광채가 너무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독자님들 중 눈의 수정체가 약하신 분들은 이 글을 보시기 전 선글라스를 준비하셔야 할 듯하다ㅎㅎ.
여기서 잠깐, 역사공부 조금 하고 넘어가 보자!
십자군 전쟁 당시 8개국의 기사들로 결성된 성 요한 기사단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이 지역을 오가는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군사조직을 결성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가 가장 사랑했던 성 요한(Saint john)을 수호성인으로 모셨다. 그 후 1530년경 성 요한 기사단이 몰타에 들어와 중세 도시 발레타를 건설하면서 성 요한 대성당을 이 도시에 헌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사단이 250여 년간 몰타를 지배했었다. 더 자세한 역사적 지식을 원하신다면 네이버 지식백과 등을 써치 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며 이제 나는 내가 보고 느끼고 흘러간 사유의 이야기를 꺼내고자 한다.
성당 내부 입구의 정교하고 화려하게 조각된 벽장식
금빛으로 찬란한 내부전경
심해의 낡은 난파선에서 찾아낸 어떤 상자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과 격랑에 오랜 세월 침식되고 각종 해초와 조개껍데기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상자. 우연히 확보된 그 해묵은 상자의 자물쇠를 열었는데……. 오색창연하게 뿜어내는 빛으로 눈앞이 순간 깜깜해지고 점차 시력이 확보되어 보이는 것은 오색창연 진귀명귀 한 보물들!
딱 이 느낌이었다. 성 요한 대성당은!!
'성 요한 대성당'은 발레타 구도시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그때의 발레타 구도시 풍경은, 각종 화려한 휘장이 휘날리고 거리에서는 명칭을 알 수 없는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었기에 흥겹고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자칫하면 그 분위기에 휩싸여 연황토색의 다소 밋밋한 한 건물을 지나칠 뻔했다. 그런데, 그곳이 바로 '성 요한 대성당'이었다.
나는 그 순간, 이미 발레타 구도시 분위기와 사랑에 빠져 있었기에 그 퍼레이드 인파에 같이 묻혀있고 싶었다. 저 밋밋하고 좀 어두침침해 보이기까지 한 건물로 들어가고 싶지 않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몰타의 가장 명소라는데 얼른 보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입성!
그. 런. 데!! 오마나!!
나는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손으로 입을 막았다.
휘황찬란! 오색창연! 또 어떤 사자성어가 있을까? 아무튼… 휘둥그레해 진 나의 눈은 두 배로 커진 듯했다!(미리 검색을 하지 않고 갔었기에, 그 화려함에 더욱 감동했던 것 같다. 검색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경험을 했다 ㅎㅎ).
성당중앙 내부는 온통 금빛이었다. 디테일하고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과 예술작품들이 온 벽면과 천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절정! 타원형의 천장은 성 요한의 일대기를 묘사하는 그림들로 채워져 있었다. 성당 중앙의 미사집전 회당은 지금까지 봐 왔던 어느 성당내부 보다도 화려했다. 특히, 중앙의 초록벨벳과 금빛휘장의 장막은 마치 천상천국의 꽃가마 같다는 상상을 했다. 인간이 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장식을 하기 위함이었을까!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내부에서도 가장 화려한 중앙미사집전 회당 앞에서 나는 넋을 놓고 있다가 무언가 압도되는 신성함에 숙연히 기도를 올리고 물러났다.
중앙의 미사 홀의 전경. 성 요한의 일대기가 그려진 천정화
성 요한 기사단의 위용을 묘사한 대표적인 조각품
미사 집전 회당의 화려함과 장엄함에 압도되는 전경
여덟 개의 나라에서 모인 기사단을 위한 여덟 개의 예배처
그 기사단은 어떤 기도를 올렸을까?
성 요한 기사단은 여덟 개의 나라에서 기사들이 모인 조직이다 보니, 예배처를 각각 두어 각 나라 언어로 집전되었었다고 한다. 참고로, 그 당시 여덟 개 국가는 아라곤, 프로방스, 이탈리아, 영국, 카스티야, 프랑스, 바바리아, 오베르뉴이다. 각 나라의 예배처는 그 나라의 특색이 드러나는 색채와 장식 그리고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성 요한 대성당은 이러한 면에서 유럽의 다른 성당과는 확연히 색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
각 나라별 예배처를 쭉 돌아보며 문득 드는 생각은 그 당시 용맹하고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던 그 기사단들은 이 제단에서 어떤 기도를 올렸을까?
조국을 위해, 가족을 위해, 대의명분을 위해,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 기도를 올렸을까? 지금으로부터 오백여 년 전의 그들은 과연 그 당시 어떤 현실적 갈망과 욕구, 좌절과 절망 그리고 궁극적 소원은 무엇이었을지, 어쩌면 오백여 년이 지난 오늘의 인간사와 별반 차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나니…. 그건 물음표로 남겨두기로 했다.
상당 내부에 8개의 미사집전실이 나뉘어져 있다
성당내부의 복도는 다양한 미사집전실로 통한다
400개의 묘비대리석판을 차마 밟기가!!
공중부양을 할 수 도 없으니, 밟긴 밟는데…..
성 요한 대성당의 가장 하이라이트! 가장 특징적인 것은 바로 성당내부의 바닥이다. 아무리 성대하고 화려한 유럽의 성당들도 성 요한 대성당의 화려함을 따라가기 쉽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바닥 때문인 것 같다. 이곳의 바닥은 400여 개의 기사단의 묘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직사각형의 같은 크기지만 각 묘비석의 대리석 색, 문구, 문양, 상징그림 등은 다 다르다. 고대 그리스어로 쓰여있기 때문에 일일이 해석을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 묘비석에 한 인간의 일생을 갈음하는 문구들이 얼마나 깊은 글들로 채워져 있을지, 숙연한 마음이 든다.
처음에는 금빛으로 번쩍이는 벽면과 천장, 그리고 수많은 예술품들을 보느라 혼이 쏙 빠졌다가 성당 바닥의 이 화려한 대리석들이 모두 묘비명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나는 얼음이 되어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어쩌지, 순간 공중부양이라도 하면 좋겠다 싶었다. 비록 무덤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묘비석에 그 기사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비록 고대 그리스어를 읽어 내려가는 것은 아니지만 묘비석 하나하나를 훑어가며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자연히,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응시했다. 그들의 이승의 삶은 전쟁으로 인해 좀 더 짧았을지도 모르겠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했을 수 도 있고,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을 수 도 있고, 비통한 죽음을 맞이했을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목숨을 바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백 년이 다섯 바퀴를 되돌아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그들의 마지막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성당 전체 바닥은 400 여개의 기사 묘비대리석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당 안의 대리석 묘지석판의 서늘하고 깊은 기운 때문인지, 화려하고 금빛 찬란한 성 요한 대성당은 특히 고요하고 서늘했다.
성당의 묘비석을 어쩔 수 없이 밟으며 성당을 나오자, 뜨거운 지중해 태양의 빛이 순간 눈을 아찔하게 만든다. 성당 바깥은 화려한 퍼레이드로 골목마다 흥에 겨운 사람들의 웃음 가득한 발레타의 현재가 있었다.
백 년의 수레바퀴가 뒤로 다섯 번, 다시 앞으로 다섯 번. 뒤로 돌았다가 앞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오백 년 전의 기사단들의 혼이 깃든 '성 요한 대성당'을 뒤로하고 우리는 발레타 구시가지의 흥겨운 퍼레이드 행렬로 들어갔다. 아직도 한여름 지중해의 태양은 우리 머리 위에서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