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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득여사 Oct 11. 2024

몰타의 바다는 내게 착했다

#땅 짚고 헤엄치기의 고수 #지중해 석양을 바라보며

몰타가 유럽인들 사이에서 바닷가 휴양지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연중 따뜻하고 깨끗한 지중해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중해 바다에서의 휴양보다는 중세시대의 문화를 그대로 품고 있는 몽환적인 구도시 발레타의 정취가 단연 몰타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신비롭고 서사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애석하게도 나는 수영 젬병일 뿐더러, 물 공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물 공포가 있으니 수영도 못한다. 그렇다고 트라우마를 지닐 만한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겁도 많고, 몸으로 하는 모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향과 여러 환경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이 나이 될 때까지 수영을 못하는 안타까운 신세(?)가 된 것이다.


다행히, 남편과 딸은 수영을 잘하는 것을 넘어서서 매우 좋아한다. 특히 딸은 휴양지에서 하루 종일 물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할 정도로 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동안의 여름 바닷가 휴양지에서는 남편과 딸이 신나게 수영하는 모습에 대리만족 하며 선배드에서 땀을 흘리는 시간이 많았다.

바닷가의 태양은 왜 이리 늘 뜨거웠던지….



'땅 짚고 헤엄치기'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속담은 예술이다. 구구절절 한 상황이나, 철학적 이야기를 단 하나의 짧은 비유의 문장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한다. 속담은 곧 비유인데… 이 속담은 나에게 비유가 아니라 사실 그 자체이다.  바로 ‘땅 짚고 헤엄치기’.


내가 할 수 있는 물놀이의 최고봉이 바로' 땅 짚고 헤엄치기'인 것이다.

수영장이나, 바다나 일단 발이 바닥에 뿌리처럼 굳건히 닿아야 하며, 수심은 나의 쇄골뼈 위를 넘지 않아야 하고, 수온은 나의 온몸이 고슴도치처럼 잔털이 바늘 선 듯한 서늘함이 없어야 하며…(쓰면서도 찌질하게 느껴짐).  이런 조건이 모두 갖추어진 물이어야만 비로소 입수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몰타 여행의 물놀이 상황(바다, 리조트 수영장, 크루즈 투어)에서 나는 남편과 딸과는 다른 동상이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물 밖에서 신나게 놀기

최대한 물 안에서 신나게 놀기


바다는 바라보기에 딱 좋은 곳

바다는 수영하기에 딱 좋은 곳





'선셋 크루즈사랑고'

크루즈에 홀로 아내쌍해진


엄마 뭐 하나 좋은 거 사줘야겠다


몰타여행을 갈 계획이 있으신 분들에게 또 하나의 추천은 바로 ‘선셋 크루즈’이다.

몰타의 ‘선셋 크루즈’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크루즈를 즐기며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와 그 바다 곳곳에 떠 있는 고대 화석 유물 같은 황토색 섬들의 경관을 보는 것과, 크루즈가 정박한 채 지중해 바다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는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다. 5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프로그램이다.


당연히, 나는 한 마리 토끼만 잡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물론 수영복을 겉옷 안에 입고 있기는 했지만, 내 안의 수영복이 비록 젖을 일이 없다 해도 하나도 안타까울 것 같지는 않았다. 바다를 가르며 질주하는 크루즈에서 바라보는 몰타의 작은 섬들이 보여주는 자연 그대로의 근원적인 아름다움에 이미 충분히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크루즈를 타고 몰타 해안가를 벗어나면 바다는 더욱 짙푸른 빛을 띤다



한참을 질주하던 크루즈는 어떤 동굴이 보이는 작은 바위섬 근처에 멈추었다. 삼십여분 정도 수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줄 터이니, 즐겁게 수영을 즐기라는 선장의 우렁찬 안내가 들렸다. 사람들은 일제히 우~ 일어나더니, 훌러덩 겉옷을 벗어던지고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바다로 뛰어들었다. 수심이 깊은 곳이었기에 바다 빛깔이 매우 짙은 블루였다.


이런 진풍경이 없었다. 역시 한국인은 장비빨인가! 한국에서부터 철저히 공수해 온, 각종 물놀이 도구들을 이미 장착한 물고기 부녀는 나에게 손을 흔들며 짙푸른 지중해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다. 그 많던 사람들은 이미 다 물고기가 되어 있었고…. 벗어던진 옷과 신발들만 여기저기 흩어진 채 나와 저 끝에 연로하신 한 할머니 그리고 선상의 직원들만이 사람인 채로 배에 남았다. 

백인 할머니는 '너는 왜 바다에 안 들어가니?' 묻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선상의 키 작은 그을린 피부의 선원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웃으며 지나간다.  나는 '난 전혀 문제없다. 충분히 즐겁다'라고 답하는 듯 씽긋 웃어주었다.  흠…. 뭐 나에게는 익숙한 상황이기도 했고, 팔딱팔딱 수영하는 물고기 인간들 보는 재미도 내심 솔솔 했다.


뿌뿌!! 다시 크루즈가 선셋지역으로 이동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자 물고기들이 인간으로 되돌아오느라 크루즈는 다시 분주해졌다.   

신나게 수영을 즐긴 남편과 딸이 바닷물을 뚝뚝 흘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딸이 수건으로 몸을 감싸며 하는 말.


“엄마, 아빠가 엄마 뭐 좋은 거 사줘야겠대!”

“왜?”

“나랑 아빠만 신나게 수영하고 혼자 배에 있는 엄마가 안쓰러워서래!”

“어머! 진짜야?”

남편을 바라보며 물었다.

“응, 마음이 자꾸 쓰여서…”

“어머머, 지금 눈에 눈물 고인 거야?”

“으응? 아.. 아니야 바닷물 때문에 눈이 짜서 그런 거야.”


남편은 이미 닦은 얼굴을 타월로 연신 문지르며 아닌 척한다. 마음이 뭔가 뭉클했다. 정신없이 다들 물고기마냥 신나게 수영을 즐기느라 정신없을 때, 남편은 배 위에 남아있는 부인이 마음에 못내 걸렸던 것이다. 비록 내 수영복은 젖지 않았지만 그 순간 내 마음은 고마움과 감동으로 젖어들었다. (그래서 남편은 과연 무엇을 사주었을까? 그 스토리를 풀자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궁금하신 독자 분들께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나중에 이 에피소드로 따로 글을 올릴 수 있기를...)




저녁 6시가 넘어가자 몰타의 하늘빛이 살며시 홍조를 띠기 시작했다. 배가 한 시간 반 정도 정박하는 아주 작은 섬에 도착했다. 그 섬은 수심이 매우 은 지중해 바다 주변이라 물속에서 석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수심이 고 완만하다는 설명에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 드디어 나도 지중해 바다에 몸을 담가볼 수 있겠구나!


하늘은 그 새 더욱 붉어지기 시작했다. 지중해 태양은 밤에게 자리를 내주기 아쉬운지 하늘과 바다 틈 사이에서 늑장을 부리며 서성대고 있다.

살금살금 모래 사이로 밀려오는 바닷물에 꼼지락꼼지락 발가락을 담가보았다. 따뜻한 바닷물이 나를 안심시킨다. 수온은 오케이! 살금살금 더 들어가 본다. 종아리, 무릎, 허리… (살짝 심호흡 한번) 가슴, 잔잔한 바닷물이 쇄골 선까지 찰랑 거리는 곳까지 오케이!

몰타의 석양 지는 바다는 따뜻했고,  편안했으며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몰타의 바다는 나에게 참 착했다. 


호흡이 천천히 잘 쉬어진다. 팔을 천천히 휘저어 따뜻한 지중해 바닷물에 길을 내어본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의 무게도 느껴본다. 팔을 앞뒤로 휘저으며 마치 수영하는 듯한 흉내를 내어본다. 완벽한 ‘땅 짚고 헤엄치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행복해하는 나를 보고 남편과 딸이 깔깔깔 웃는다.


따뜻한 지중해 바다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우리 가족은 석양을 바라보았다. 몰타의 하늘도 몰타의 지중해 바다도 이미 짙은 홍조를 띠고 있었다. 서로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니, 우리 가족의 얼굴도 행복의 홍조로 이미 발그레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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