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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득여사 Nov 01. 2024

치유소설. 뽀득여사의 거울가게(2)

제 1화. 아버지 그리고 아들

1. 아버지 그리고 아들


‘어이쿠, 이거 요상한데... 잘못 들어왔어!’


홀린 듯 들어와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남자는 순간 몸을 돌려 나가려는 찰나

“안녕하세요.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남자는 ‘댕글댕글’ 온몸으로 울려 나오는 우리의 뽀득 여사의 목소리에 또 한 번 멍해졌다.

“저기 저... 잘못... 들어온 것 같아서...”

“잘못 들어오긴요. 잘 들어오셨는데요.”

“음 그러니까, 그게 저는 거울가게인 줄 몰랐어요. 그래서...”

“무슨 상관이에요. 아무렴 어때요. 지금 막 커피를 내렸고요. 머그잔에 마침 커피 두 잔이  딱 채워지는걸요.”


등받이가 높은 진초록 의자 사이의 둥근 탁자에는 물음표 같은 김이 솔솔 올라오는 커피가 머그잔 두 개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뽀득 여사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먼저 쿠션이 푹신한 진초록 의자에 풀썩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미소 띤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 거린다. 남자는 ‘이거 좀 이상한데...’싶은 마음이 일렁이면서도 쭈뼛쭈뼛 쿠션 푹신한 진초록 의자에 걸터앉는 것이었다. 어색함에 남자는 각양각색의 거울들이 걸려있는 벽면을 초점 없이 휘휘 둘러보았다. 우리의 뽀득 여사는 두 손으로 머그잔을 감싸고 천천히 커피 향을 먼저 음미하고는 다시 지긋이 남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커피 감사합니다.”

어색한 남자. 남자도 어느새 머그잔을 두 손으로 조심히 감싸듯 쥐고는 커피 한 모금. 입안에서 퍼지는 커피의 풍미에 남자는 한결 편안함을 느낀다.


“사실... 여기 술집인 줄 알고 들어왔어요. 하하”

“오호! 밖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안이 잘 안 보이고 하니.”

“자세히 살피지도 못하고 불쑥 들어와 버려서.....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요. 오히려 술집이 아니라서 죄송하네요. 호호호.”


‘댕글댕글’ 뽀득 여사의 웃음소리에 남자는 긴장의 빗장이 ‘스르륵’ 열리는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의자 끝에 걸터앉았던 자세를 고쳐 어느새 의자 깊숙이 몸을 넣는 자신이 느껴진다.


“거울이 참 많네요. 이렇게 여러 가지 모양의 거울들은 생전 처음이에요.”

“많지요. 참 많아요.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이 많은 거울들 중에 내 거다 싶은 것은 딱 하나랍니다.”

“그러고 보니 특별히 거울을 따로 사본 기억이 없어요. 그래도 거울은 늘 우리 주변에 있죠.”

“그래요. 거울은 늘 우리 주변에 있어요. 그렇지만 ‘깊은 거울’은 드물죠.”

“깊은 거울이요?”

“일단 커피 드세요. 따뜻한 커피가 좋죠. 이런 날씨에는요.”


남자는 아직도 손바닥으로 커피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머그잔을 입에 가져간다. 한 모금, 또 한 모금, 또 한 모금.... 괜히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 그래서 혼자 한잔 할까 했었거든요.”

“그럴 때가 있지요. 술 한 잔 혼자 하고 싶은 그런 날. 어째요. 여기는 거울이랑 커피밖에 없는데.”

“아닙니다. 아니에요. 좋습니다. 좋아요. 뭐랄까... 아무튼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커피 다 마시고 꼭 거울 하나 사드릴게요.”

“이런, 제가 커피 한잔으로 부담을 드렸나 보네요. 전혀 부담 갖지 마세요.”



사실 남자는 오늘 취하고 싶었다. 맨 정신에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되풀이되는 것이 싫었다. 아들 녀석의 냉랭한 뒤통수를 망연자실 쳐다보는 것도, 마음에 없는 독한 말을 쏟아내는 자신도 싫었다. 그리고 그런 부자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서있는 마른 잎사귀 같은 아내의 떨리는 눈빛도 싫었다.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휴’ 뱉어 내었다.


“아들이 하나 있어요.”

“그렇군요. 요즘은 다들 자식이 한 둘이지요.”

“네. 요즘 같은 세상에 가진 것도 없이 빠듯한 벌이에 자식욕심은 아니다 싶어서요. 하나라도 잘 키워보자 했었습니다.”

“귀한 자식이네요. 얼마나 애지중지할까.”

“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지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지요. 그런데 그런 아들 녀석이 속 썩이네요. 나쁜 자식 같으니라고. 머리 컸다고 아빠 알기를 개똥으로 아는지...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흥분해서!”

“괜찮아요. 아빠 알기를 개똥으로 알면 당연히 열받지요.”

“하하하! 네. 사람 똥도 아니고 개똥이요. 하하하”


남자는 처음 보는 거울가게 주인 앞에서 주책없이 속마음을 다 내보인 것 같아서 당혹스럽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러지!’ 싶어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자 커피를 다시 한 모금 쭉 마시고는 다시 거울들을 살펴보았다. 아까부터 왼쪽 벽 구석에 작은 원형 거울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이따 갈 때 저거를 사가야겠네.’ 남자는 커피에 신세타령까지. 이 당혹스러운 민망함을 거울 구매로 대신하면 되겠다 싶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 ‘거울 가격이 비싸더라도 깎지는 말아야겠다.’라고 덧붙여 생각하면서.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생각나네요.”

뽀득 여사는 햇살처럼 퍼지는 눈가의 주름이 더욱 깊어지는 웃음을 지어 보인다.

“아, 그러고 보니 저는 개똥도 없었네요. 흐흐”

남자가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어떤 사람들은 네다섯 살 때 기억도 조각조각 난다고 하던데요. 저는 미련한 건지 열 살 전 기억이 희한하게 깜깜해요. 우리 아버지가 딱 제가 아홉 살 때 돌아가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기억이 안 나요. 아버지랑 저의 추억이요. 이상하죠. 열 살 전 기억은 감쪽같이 도둑맞은 것 같아요.”

남자는 마치 열 살 전의 기억 꼬투리라도 찾아 헤매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공중에 눈길을 던져본다.

 

“때로는 그 요상한 도둑이 바로 내 속에 살기도 하지요.”

“네?”

“내가 만든 도둑이 내 것을 훔쳐 가면 참, 누구 탓도 못하고 답답할 노릇이지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뽀득 여사는 조용히 남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남자도 잠시 침묵.

“제 기억을 제가 훔쳤을까요?”

“기억이라는 것, 조금 더 멋지게 말하자면 추억이라는 것 말이죠. 고것이 참 이상해요. 멈춰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죠. 고 녀석들은 꼬물꼬물 살아있단 말이죠. 고 녀석들 성격이 다 달라요. 어떤 녀석은 대차고 어떤 녀석은 수줍고 어떤 녀석은 싸움꾼이고 또 어떤 녀석은 죽은 듯 꼼짝 않고 숨어만 있고.”


남자는 점점 생전 처음 본 이 우아한 거울가게 사장님과의 이 희한한 대화에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느끼고 있다.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남자는 지금 이 순간이 낯설지 않다는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그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죽은 듯 어딘가에 숨어있는 걸까요? 내가 만든 도둑이 그 녀석을 훔쳐간 걸까요? 아니 살아있으니, 납치해 간 거네요.”

“글쎄요. 내가 어찌 알겠어요. 손님만이 알겠지요.”

“아버지가 없다는 것 오십이 코 앞인 이 나이까지 살아 올 동안 그렇게 서글프거나 기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아마 생활력 강하고 씩씩한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인 것 같아요. 유난히 씩씩하셨죠. 어머니는….”

“유난히 씩씩하셨군요. 왜 저는 ‘유난히’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릴까요.”


남자는 뽀득 여사의 이 말에 명치가 ‘찌르르’ 울리는 것 같았다. ‘유난히 씩씩했던 어머니’. 남자는 왜 이때껏 이 강한 신념을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을까? 정말 우리 어머니는 유난히 씩씩하셨던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보이려고 하셨던 것일까?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 같다.



“저는… 제 딴에는 애썼습니다. 우리 아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고 아내에게는 좋은 남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름 노력했습니다. 교회 ‘아버지 학교’도 자발적으로 몇 차례나 수료했고요. 부끄럽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책도 여러 권 섭렵하기도 하고요.”

“아이고 그러네요. 많이 애쓰셨네요.”

“애는 썼는데요. 애만 쓴 것 같아요. 애만 쓴 거죠.”

남자는 말끝을 흐리고는 커피가 반 정도 차있는 머그잔을 내려다봤다.


“자연스럽게 내 몸에 배어있으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이 내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그만큼 힘들지요. 때로는 그러면 참 ‘유난스러워’ 지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저는 ‘유난히’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컸던 것 같아요. 비록 아버지는 내 기억에 없지만 그 부재가 지금 내 인생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나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마치 우리 어머니가 남편이 없다는 것이 어머니의 인생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싶으셨던 것처럼요. 유난히요.”

“아들 녀석이 어제는 이런 말을 제게 하더라고요. ‘착각 좀 그만하시라고요. 저도 좋은 아들은 아니지만 아빠도 좋은 아빠는 아니라고요.’라고요. 그리고는 문을 쾅하고 닫아버리더군요. 다른 때 같으면 호통을 쳤거나 아들 방문을 벌컥 열고는 한바탕 설교를 했을 텐데, 어제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자다가 가위눌린 것처럼 몸이 꼼짝도 않더라고요.”

“그래요. 마음이 순간 ‘쿵’ 하면 온몸이 순간적으로 ‘오프’가 되어버리죠.”

“네 완전 ‘멈춤’이 되어 버리더라고요.”

“멈춤이 되었을 때는 그냥 멈춰보는 것이 좋을 때도 있더라고요. 오프상태인데 억지로 뭐 해보려고 하면 진만 빠지죠.”



남자는 지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땅거미가 질 때 이 가게에 들어왔었는데 밖이 안 보이는 이 가게에서 얼마나 자신이 있었는지 도무지 가늠이 되질 않는 것이었다. 다시금 그 거울을 봤다. 이 수많은 거울 중에서 그다지 눈에 띄는 모양도 아닌 저 작은 거울이 왜 자꾸 눈이 갈까.


“깊은 거울을 찾으셨나 보네요.”

“네?”

“깊은 거울은 딱 하나거든요. 손님만의 ‘깊은 거울’이요.”


환하게 웃는 뽀득 여사의 눈가의 펄아이섀도가 ‘차르르’ 빛을 뿌리는 것 같다. 여사는 우아하게 일어나더니 남자의 눈이 머무른 거울 앞에 서는 것이다. 그리고는 ‘호호’ 입김을 불더니 그 거울을 ‘뽀득뽀득’ 소리가 나게 닦아주었다. 남자는 조용히 그 거울 앞에 서 보았다.    


“깊은 거울을 볼 때는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춰진답니다. 깊고 고요하게 멈춰진 시간 안에서 깊게 깊게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는 거지요.”


남자는 큰 숨을 천천히 내쉬며 그 거울 속의 자신과 마주했다. 처음에는 지치고 조금은 슬퍼 보이는 중년의 거울 속 자신이 거울 밖 자기를 바라보는 듯하더니, 깊게 천천히 들여다보니 피부가 탱탱해지고 새치가 검게 변하면서 빛나는 눈빛을 지닌 청년시절의 자신이 보였다.

순간 남자는 청년의 자신이 아들 녀석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이내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이 사그라들더니 옅은 눈가 주름이 잡히면서 청년도 중년도 아닌 자신이 보인다.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는 얼굴. ‘아버지’.

남자는 지금의 자신보다 십 년은 젊은 나이에 요절하신,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뜬, 사진에서나 보던 아버지를 마주한다. 거울 속 남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인다. 남자는 거울 속의 자신, 아니 아들, 아니 아버지를 향해 손을 뻗어 쓰다듬어본다. 그렇게 멈춰진 시간 안에서 남자는 거울과 한참을 마주했다. 



남자는 이 가게에 들어올 때보다는 가슴이 따뜻한 채로 집으로 향했다. 그의 깊은 거울을 품에 품고서.



남자가 가게를 나가고는 뽀득 여사는 커피 잔을 치운다. 어느새 아가가 곁에 와 있다.

'처음에 들어올 때와 지금 나갈 때 아저씨 얼굴이 많이 달라 보였어요.'

"오우, 우리 아가는 눈썰미도 좋구나!"

'할머니가 요술을 부렸나요?'

아가의 눈빛이 반짝반짝.

"아니란다. 나는 손님의 이야기를 들어드린 것밖에 없어. 음, 그리고 따뜻한 커피를 대접한 것. 뽀득뽀득 거울을 닦아드린 것 정도."

아가는 가뜩이나 없는 목을 갸우뚱거린다.

"손님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만의 깊은 거울을 찾아낸 거지. 그 거울을 마주하는 것에서 이미 마법은 시작된 거란다. 뾰로롱!"

뽀득여사는 아가의 촉촉한 분홍 코를 톡 치며, 장난스레 윙크한다.


“아가야, 오늘은 밤공기가 좋을 것 같구나. 밤 산책 나가지 않으련?”

‘우리 뽀득 여사님이 오늘 좀 걷고 싶으신가 보네요.’

아가는 짧고 굵은 다리를 곧게 펴며 ‘톡톡톡’ 뽀득 여사 곁으로 오며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착용해야 하는 안전 목줄을 위해 최대한 격조 있는 자태로 목을 길게 빼는 것이었다(늘 아가는 이 순간 목을 길게 뺀다고는 하는데 사실 별반 차이는 없다).

“그래 아가야, 오늘은 왠지 걷고 싶구나. 이런저런 생각도 나고.”

‘음, 저도 사실 아까부터 이런저런 생각이 나더라고요. 몸집이 산처럼 컸던 엄마의 품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젖을 빨던 그 수많은 나의 형 누나 동생들이요. 사실 누가 형인지 누난지 동생인지 알지는 못했지만요.’

“나도 어릴 때 생각도 나고 부모님도 생각나고 또…’


천천히 걸어가는 뽀득 여사와 아가의 머리 위로 초가을 밤의 바람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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