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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득여사 Oct 25. 2024

치유소설. 뽀득여사의 거울가게(1)

프롤로그. 뽀득여사의 거울가게를 소개합니다.

프롤로그


그곳에 언제부터 있었더라. 그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은 갸우뚱 거리며 그 앞을 지나간다. 옛날부터 쭉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알라딘의 요술궁전처럼 하루 밤 사이에 ‘뿅’하고 만들어진 것 같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 가던 길을 가느라 그 가게에 대한 생각을 곧 잊어버린다. 그리고 또 어느 순간 또 문득 그 가게 앞을 지나다가 ‘언제부터 있었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다. 


그곳이 그렇다. 늘 있었던 듯 또는 낯선 그곳. 밖에서 보이는 그곳은 크지도 작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추레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지저분하지도 않은 가게. 더구나 쇼윈도 창은 불투명하다 보니 그 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코끝이 쇼윈도 창에 닿게 들여다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코를 창에 대고라도 그 가게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알 게 된다. 그 가게의 묘한 매력을.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를 끌어당기듯 그 가게의 문고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왜? 글쎄다. 그 문고리를 잡는 사람치고 그 문고리를 당기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뽀득 여사의 거울가게. 그곳이 그곳이다. 둥근 파랑 문의 파랑 문고리를 잡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실 이 가게의 이름을 모르고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뽀득 여사의 거울 가게’의 간판은 이 가게의 존재감처럼 그렇게 묘하게 보이기도 안보이기도,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간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 글쎄다. 그 문고리를 잡는 사람치고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파랑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파랑문을 일단 들어간 사람들은 입 밖으로 또는 입 안에서 또는 머릿속에서 또는 가슴에서 이 말이 가장 먼저 나온다. ‘와’. 

‘와’라는 한 글자는 글자의 조촐한 획수에 비해 엄청 많은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묘한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말을 ‘와’라는 한 글자에 포함한다. ‘묘하다’, ‘예상외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어라 이건 뭐지?’, ‘이상야릇한데’, ‘멋지다’, ‘이상한 곳이네’ ….


가게 안의 크기는 사실 가늠이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온통 사방에 각양각색의 거울들이 있기 때문에 살짝 어질 할 정도로 사방팔방의 각도를 서로 비추는 거울들로 가게는 팽창을 반복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홀린 듯 가게에 발을 들여놓고 ‘와’하고 멍하니 잠시 서있으면 마치 극장무대 한편에서 유유히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우리의 뽀득 여사가 등장한다.


“안녕하세요!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는 뽀득 여사의 등장에 손님은 다시 어질 해진다. 순간 거울들에 비친 여사는 마치 손오공의 머리털 요술처럼 수십 명으로 복재되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멍하니 서있는 손님 앞으로 사뿐사뿐 가까이 걸어 나오면 비로소 오롯한 우리의 뽀득 여사의 실재가 보이게 된다. 


“커피 막 내렸는데 한 잔 드실래요?”


가게 한편에 있는 티 테이블을 가리키며 뽀득 여사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분명 거울을 파는 가게일 텐데 손님에게 거울을 둘러보라든지, 마음에 드는 거울이 있냐라고 묻는다든지 하지 않는다. 마치 미리 예약되어 있는 손님을 맞이하듯이 또는 이미 알고 있는 지인을 티테이블로 안내하는 듯 한 친근함을 보일 뿐이다. 

뽀득 여사는 어느새 커피 잔에 향기로운 커피를 ‘또르륵’ 따르며 먼저 큼직한 진초록 벨벳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손님은 그 폭신한 진초록 의자에 앉든지, ‘실례했습니다’하고는 뒤돌아 파란 문고리를 잡고 이 이상한 가게를 나가든지 하면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단 이 가게에 들어왔던 손님 중에 뒤돌아 나간 손님은 없었다. 왜? 글쎄다. 

 



이쯤에서 우리의 뽀득 여사를 찬찬히 살펴보자.  

뽀득 여사는 우리가 할머니 하면 떠오르는 호호할머니 스타일과는 일단 거리가 멀다. 푸근한 할머니가 아닌 상당히 세련된 느낌이다. 언뜻 보면 나이가 잘 가늠이 안 되는 작고 날렵한 몸에 나비모양의 빨강 반 뿔테 안경은 가면무도회의 반 가면이 연상된다. 안경 안에서 반짝이는 눈빛. 뽀득 여사를 좀 더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손님이라면 뽀득여사의 안경너머의 반짝이는 펄 아이섀도를 볼 수 있다. 주로 라이트 골드 펄을 눈 주위에 옅게 펴 바른 여사의 눈 주변은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 같다. 별빛이 퍼지듯 잔잔히 퍼져있는 눈매 주변의 잔주름은 뽀득여사의 웃음 안에서 그 깊이가 더해진다. 뽀득여사의 가장 큰 매력은 목소리이다. 가게를 들어서서 어리둥절해 있는 손님들은 뽀득여사의 ‘안녕하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라는 말을 듣자마자 무장해제 되어 버린다. 뽀득여사의 목소리는 마치 작은 유리종이 온몸체로 ‘댕글댕글’ 울리듯이 그녀의 자그마한 몸 전체에서 ‘댕글댕글’ 울림을 내며 나온다. 

눈을 감고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아침 호수 물결이 일렁이는, 비눗방울이 톡톡 터지는, 갓 내린 따뜻한 커피를 천천히 젓는, 뜸 들이기가 막 끝난 고슬고슬한 밥을 주걱으로 뒤적거리는, 신생아가 목울대에서 까르륵 가르륵 목 울림소리를 내는 소리’ 같다. 이렇게 뽀득여사의 목소리를 아무리 이것저것 총동원해서 비유해도 뽀득 여사의 목소리가 너무나 오묘하고 신비해서 직접 들어보지 않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아무튼 이렇게 어느 한적한 골목 어귀에 익숙한 듯 낯선 듯 자리 잡고 있는 이 가게는 ‘뽀득 여사의 거울가게’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매력만점의 우리의 뽀득 여사가 손님을 위해 거울에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뽀득뽀득’ 소리 나게 거울을 닦는다. 그리고 기대에 찬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콧노래를 흥얼흥얼 하며 커피를 내리고 있다. 



파란 문고리가 ‘또르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할머니, 뿌염하셔야겠어요!”

“굿모닝 새미, 오늘은 우리 새미가 염색에 꽂혔구나.”

“할머니 정확히 7월 8일에 염색하셨어요. 벌써 3개월이나 지났다고요. 요만큼이나 새 머리가 올라왔다고요.”

새미는 하얗고 통통한 엄지와 중지손가락을 거꾸로 ‘ㄷ’ 자를 만들며 뽀득여사 눈앞에서 오른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래그래, 새미의 날짜 기억력은 컴퓨터보다 정확하지. 이번 주에는 꼭 염색할게. 약속하마.”

“네 할머니, 할머니는 갈색머리 염색이 짱 잘 어울려요. 아휴, 저는 갈색이 안 어울려요. 엄마가 그러는데요. 저는 얼굴이 너무 통통해서 갈색으로 염색하면 더 뚱뚱해 보인데요. 우~ 이 팔뚝 살을 보세요. 저는 너무 뚱뚱해요. 그렇지요 할머니?”

“누가 그러던? 내가 보기에는 지금 딱 예쁜데. 물론 여기서 조금 더 찐다면 그때는 통통하다는 말이 어울리겠지만. 호호호”


새미는 요즘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다. 사실 새미는 꽤 통통하다. 새미의 사랑스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뚱뚱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뽀득여사의 눈에도 요사이 새미는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오르고 있다. 나이는 스무 살이지만 경도 지적장애를 지니고 있는 새미는 이제야 사춘기감정에 발을 담그는 것 같다. 요사이 부쩍 외모이야기, 남자이야기 그리고 음식이야기(이 주제는 새미의 지속적인 관심대상이다)등에 관심이 지대하다. 아침 해 가 뜨기 바쁘게 새미는 뽀득여사 가게로 ‘쪼르르’ 달려와 이렇게 다짜고짜 자신이 관심 있는 이야기를 불쑥 꺼내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왜 그렇게 날씬해요? 밥을 안 드시는 거 아니에요? 정말 신기해요. 할머니 저 이제 운동 가야 해요. 엄마랑 약속했거든요. 아침마다 공원 두 바퀴 돌고 오면 주말에 제가 먹고 싶은 거로 다 사 주신대요. 다녀올게요. 할머니.”


새미는 통통한 하얀 팔을 번쩍 들어서 흔들고는 나간다. 뽀득여사는 ‘참 사랑스러운 맑은 아이야’라고 또 한 번 생각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이 골목에 가게를 처음 오픈했을 때 가장 먼저 이 파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이 바로 새미였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새미는 아침 해가 둥글게 튕겨 오르듯이 늘 ‘맑고 순수한’ 얼굴로 파란 가게 문을 ‘드르륵’ 여는 것이다. 어쩌다 새미가 아침인사를 안 오는 날이 며칠 지나기라도 하면 뽀득 여사는 궁금하기도 하고 뭔가 허전하기도 한 아침을 맞이한다.



‘아이코, 내 정신 봐라. 우리 아가는 밤 새 잘 있었나’. 

오늘따라 유난히 새미가 일찍 들렀기에 뽀득 여사는 가게 문을 열고는 바로 챙기는 ‘아가’를 깜박했던 것이다. 


“아가! 아가! 밤 새 잘 있었니?”

가게 안쪽 파티션 안을 빼꼼 들여 다 보았다. 살짝 가게가 추웠었는지 아가의 살구 빛 엉덩이가 오늘따라 하얗게 보인다. 아가는 빨간 푹신한 쿠션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토실한 엉덩이 가운데의 ‘말 빼기’ 표기 같은 아가의 귀여운 꼬리가 여사의 목소리에 ‘살랑살랑’ 반응한다. 아가는 뽀득 여사의 애완아기돼지이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반려돼지라고 하는 게 맞겠다. 


뽀득 여사는 가게에서 늘 이야기를 많이 한다. 거울을 보고, 커피잔을 보고, 심지어 파란 문 손잡이를 보고도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가장 많이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가 바로 ‘아가’이다. 여사와 아가의 대화는 신기하게도 “” 와 ‘’로 이어지는 대화지만 살아있고 존재하고 상호적이다. 이 점이 ‘아가’가 상당히 특별한 아기돼지이며 ‘아가’의 엄청난 자부심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아가의 자존심을 구기는 점 이 하나 있었다. ‘아가’는 이름이 아가이고, 생긴 모습이 너무도 귀엽게 생겨버린(김 서린 납작 진분홍 코에, 살구 빛 살결과 잔털, 늘 싱글 생글한 말 빼기 모양의 꼬리, 결정적으로 오동통한 엉덩이와 짧은 다리) 모습에 평생 아가 취급당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가’는 생의 반환점은 이미 돌아온 ‘나이가 먹을 만큼은 먹은’ 성숙한 중년에 가깝다는 점이다. 그래도 ‘아가’는 뽀득 여사가 댕글댕글한 목소리로 ‘아가야, 아가야’하고 불러주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그러니, 조금은 자존심 상해도 오늘도 귀염성 있는 자태로 꼬리를 흔들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아가야, 좀 추웠나 보구나. 아이코, 엉덩이가 하얗게 질렸네.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주마. 금방 몸이 따뜻해질 거야.”

‘우, 그러게요. 요사이는 몸이 예전 같지 않아요. 나이 탓이죠 뭐.’

“너 내 앞에서 나이 탓 하는 거니? 나이 탓이 아니라 벌써 선선해진 날씨 탓이야. 그렇지 아가?”

‘네네, 알겠어요. 가는 세월 막을 도리가 있나요. 나이를 잊고 살아야죠. 평생 아가의 마음으로요.’


‘아가’는 조금은 도도하게 꼬리를 좌우로 두 어 번 흔들고 오동통한 엉덩이를 일으켜서 여사가 갖다 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유 컵에 코를 박고는 맛나게 홀짝대며 마셨다. 여사는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다가 어느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뽀득뽀득 거울들을 닦기 시작했다.              


댕그렁! 파랑문이 열린다.

                                                                               



                                                      



제가 브런치 스토리에서 '뽀득여사'가 된 이유가 바로 이 소설입니다! 치유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무작정 써 내려갔던 저의 첫 소설입니다. 부족한 점 많지만, 첫 정을 준 소설이기에 저에게는 첫사랑 같은 뽀득여사가 되었습니다. 용기 내어 연재로 올려봅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뽀득여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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