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복면 둘러쓰고는 눈코입도 모두 가리고 먹잇감이 포위망에 걸려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요즘 핸드폰 덕분에 포획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와글와글 즐거워하는 녀석들의 비웃음이 들리는 것 같다. 왜냐하면, 불쌍한 이 포로(나)도 하염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딱 걸려들었기 때문이다(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된 이후 나의 핸드폰 사용량이 급 증가했음을 고백한다).
우리가 방심한 틈에 쉽게 걸려들 것을 알기에 녀석들은 특별히 추가적인 무기는 필요 없다.
그들의 온몸 전체에 초강력 생화학 천연 무기가 장착되어 있기에!
더구나, 더 독한 것은 그 놈들은 스스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며 그 가공할 생화학 천연 무기를 발사한다는 사실이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자신 한 몸 으스러지고 짓이겨지는 희생을 불사한다는 결의는 이미 누런 복면을 둘러쓰기 이전에 결연히 끝마친 상태이다.
복면 뒤집어쓰고 각자 위치로! 흩어지지 말고 최대한 모여있어라! 영웅의 으깨짐에 경의를! 자, 습격개시!!
읔 방심했다가 그만!
파박, 신발밑창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
정신 차려보니 난 노란 은행지뢰밭에 꼼짝없이 걸려든 포로 신세였다.
이 냄새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똥냄새도 아니고, 하수구 냄새도 아니고, 청국장 냄새도 아니고, 여름철 음식물 쓰레기 봉지 냄새도 아니고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합한 냄새!
직경 2미터 정도의 은행지뢰밭 한가운데 나는 발을 떼지 못하고 얼음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여기를 빠져나가지? 정신을 바짝 차리자!
녀석들의 포위망에 걸려 든 나
진정하고 탈출계획을 빠르게 머릿속으로 세워본다.
첫 번째, 까치발과 몸의 균형 잡기 등의 신체적 능력을 시뮬레이션해 보아야 한다.
두 번째, 수도 없이 마구잡이로 퍼져 있는 은행지뢰들 사이에 그래도 온전한 땅이 남아 있는 위치를 눈으로 빠르게 스캔한다.
세 번째, 이미 터진 은행과 아직 터지지 않은 은행들을 면밀히 살피고 가능하면 터지지 않은 은행들 쪽의 땅을 겨냥한다(터진 은행들이 많은 곳은 이미 땅에 그 잔재와 냄새가 퍼져 있으므로).
마지막으로, 혹시 점프를 하다가 소지품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가방을 단단히 잡는다.
휴!! 심호흡 한번 하고는
점프! 점프! 점프!
드디어 탈출 성공이다!! 행여 생화학무기의 잔재가 남지는 않았는지 킁킁 소매에 코를 대보며 안전한 장소까지 빠르게 줄달음친다.
뒤돌아보니, 신병 몇몇이 누런 복면 급히 뒤집어쓰고는 낙하산도 없이 수직하강 하고 있다. 장렬히 전사한 영웅들의 잔재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