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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득여사 Sep 23. 2024

은행 습격 사건

# 그 놈들은 누런 복면을 썼다 # 초강력 생화학 무기를 지녔다

방심하다가 걸려들었다. 한두 놈이 아니다. 무지막지하고 인정사정없는 녀석들의 습격.


누런 복면 둘러쓰고는 눈코입도 모두 가리고 먹잇감이 포위망에 걸려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요즘 핸드폰 덕분에 포획이 훨씬 수월졌다'고 와글와글 즐거워하는 녀석들의 비웃음이 들리는 것 같다. 왜냐하면, 불쌍한 이 포로(나)도 하염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딱 걸려들었기 때문이다(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된 이후 나의 핸드폰 사용량이 급 증가했음을 고백한다).


우리가 방심한 틈에 쉽게 걸려들 것을 알기에 녀석들은 특별히 추가적인 무기는 필요 없다.

그들의 온몸 전체에 초강력 생화학 천연 무기가 장착되어 있기에!

더구나, 더 독한 것은 그 놈들은 스스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며 그 가공할 생화학 천연 무기를 발사한다는 사실이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자신 한 몸 으스러지고 짓이겨지는 희생을 불사한다는 결의는 이미 누런 복면을 둘러쓰기 이전에 결연히 끝마친 상태이다.


복면 뒤집어쓰고 각자 위치로!
흩어지지 말고 최대한 모여있어라!
영웅의 으깨짐에 경의를!
자, 습격개시!!




읔 방심했다가 그만!

파박, 신발 밑창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

정신 차려보니 난 노란 은행 지뢰밭에 꼼짝없이 걸려든 포로 신세였다.

이 냄새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똥냄새도 아니고, 하수구 냄새도 아니고, 청국장 냄새도 아니고, 여름철 음식물 쓰레기 봉지 냄새도 아니고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합한 냄새!


직경 2미터 정도의 은행 지뢰밭 한가운데 나는 발을 떼지 못하고 얼음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여기를 빠져나가지? 정신을 바짝 차리자!

녀석들의 포위망에 걸려 든 나


진정하고 탈출 계획을 빠르게 머릿속으로 세워본다.

첫 번째, 까치발과 몸의 균형 잡기 등의 신체적 능력을 시뮬레이션해 보아야 한다.

두 번째, 수도 없이 마구잡이로 퍼져 있는 은행 지뢰들 사이에 그래도 온전한 땅이 남아 있는 위치를 눈으로 빠르게 스캔한다.

세 번째, 이미 터진 은행과 아직 터지지 않은 은행들을 면밀히 살피고 가능하면 터지지 않은 은행들 쪽의 땅을 겨냥한다(터진 은행들이 많은 곳은 이미 땅에 그 잔재와 냄새가 퍼져 있으므로).

마지막으로, 혹시 점프를 하다가 소지품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가방을 단단히 잡는다.

휴!! 심호흡 한번 하고는

점프! 점프! 점프!


드디어 탈출 성공이다!! 행여 생화학무기의 잔재가 남지는 않았는지 킁킁 소매에 코를 대보며 안전한 장소까지 빠르게 줄달음친다.

뒤돌아보니, 신병 몇몇이 누런 복면 급히 뒤집어쓰고는 낙하산도 없이 수직하강 하고 있다. 장렬히 전사한 영웅들의 잔재 위로!



은행나무는 오랜 전설을 품고 있을 정도로 신성하고

은행잎은 모양도 색도 노 크레파스로 그리기에 딱 예쁘고

은행알은 알알이 구이에 꽂아 구워 먹으면 맛과 건강이 일품이다


그. 런. 데.

은행열매 냄새는 왜 이럴까?

이렇게까지 냄새가 꾸리꾸리하지 않아도 좋았을텐데 말이다.

향긋한 내음까지는 아니더라도 무향무취라는 담백한 옵션도 있지 않느냐 이 말이다.


갑자기 드는 생각.

은행나무의 은행은 왜 이름이 은행일까?

돈 넣고 돈 가져가는 곳도 왜 이름이 은행일까?


한자를 찾아보니, 은행나무의 은과, 우리가 가는 은행의 은의 한자가 동일했다.

은(銀)은 은빛, 돈, 화폐등의 뜻이 있었다.


은행알 모이듯이 돈이 모이는 은행

은행열매에서 은행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단어가 바로 ‘돈’이다.


그러고 보니, 은행알과 돈은 참 비슷한 면이 있다.

잘 모아서 잘 다루면 몸에도 좋고 맛도 좋지만

그 녀석의 덫에 걸리면

옴짝달싹 못하게 되기도 하고

구린 악취에 구역질이 나기도 한다




동글 동글 쌓여가는 은행열매.

동들 동글 동그라미 많을수록 쌓여가는 돈.


맛나고 귀한 먹거리가 될 것인가!

애물단지 길거리 지뢰가 될 것인가!


풍요와 여유로움의 베푸는 자가 될 것인가!

욕심과 탐욕으로 움켜쥐는 자가 될 것인가!


탐욕눈먼 돈다발에서도

길바닥에 짓이겨진 은행열매의 냄새가 날 것 같다.

그럼 좋게 쓰이는 돈다발에서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날까?


오늘은 고소한 참기름에 달달 구워 낸 고운 연둣빛 은행알을 먹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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