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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득여사 Sep 09. 2024

콩 튀듯 맘이 튈 때

# 콩 튀듯 마음이 심란할 때 누구나 있지

톡 탁 타닥 탁 톡 타닥!


어릴 적 건강간식으로 엄마가 프라이팬에 콩을 볶아주셨었다. 검은콩이 기름 없는 프라이팬에 부어지고 엄마는 살살 뒤집게로 뒤적이신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날 것 그대로 매끈하고 단단하던 생콩들은 성질 급한 애들부터 ‘앗 뜨거워!’하며 툭. 톡. 탁. 탁 부풀어 오른 속살 툭 꺼내 보이며 위로 튀었다 떨어진다. 시간의 차이일 뿐! 가스불이 벌겋게 프라이팬과 조우하는 동안 대부분의 콩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나게 프라이팬에서 춤판을 벌인다. 어느 정도 춤판이 끝나 콩들도 속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드러내고 잠잠 해 지면 온 집안을 가득 메운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볶은 콩 내음만이 춤판의 여운으로 남곤 했다.


어릴 때는 볶은 콩이 그다지 맛있는지 몰랐었다. 볶은 콩을 담은 그릇을 식탁에 올려놓으시고는 엄마는 우리들에게 ‘오며 가며 먹어라’라고 하셨다. 그런데 좀처럼 그릇의 콩이 줄지 않는다. 아마도 콩이 아니라 ‘쫀드기’ ‘새우깡’ ‘달고나’였다면 사 남매의 손에 남아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럴 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꼭꼭 계속 씹으면 고소하고 맛있단다. 그리고 꿀꺽 삼키면 몸에 정말 좋지.”




우리 마음콩이 튈 때!



그런 날이 있다. 일상의 짜증스러운 상황, 사람, 사건들이 벌건 불길이 되어 마음팬에 닿으면 잠잠히 있는 마음콩알들이 탁탁 톡톡 튀어 오른다. 또 때로는 어디서 불씨가 날아들었는지 알 길이 없는데 마음팬이 달구어지고 마음콩알들이 또 대책 없이 튀어 오르는 것이다. 


설명할 수 있는 것들에 의해 마음콩이 튀는 것도 힘들고

뭐라 딱히 짚어낼 수 있는 것이 없는데도 마음콩이 튀는 것도 힘들다.

결국 마음이 심란해지면 아무튼 힘든 것이다.


달구어진 마음팬에 있던 마음콩들이 소리 내며 튀어 오르면, 우리는 탁탁 튀는 마음콩을 '불안' '초조' '긴장' '분노' '짜증' '두려움' 등으로 이름 붙인다. 먹는 콩은 몸에 좋다지만 마음콩 튀는 것은 반갑지가 않다. 마음의 평온을 깨고 안정과 여유로움이 도망가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이미 달구어진 마음팬은 쉽사리 식혀지지 않고 이미 마음콩들은 저마다의 이름을 붙여가며 앞다투어 춤추기 시작한다. 

탁 탁 톡 타닥 톡 탁 탁!


 “꼭꼭 계속 씹으면 고소하고 맛있단다. 그리고 꿀꺽 삼키면 몸에 정말 좋지.” 어릴 적 엄마의 말씀.

진짜 콩은 정말 몸에 좋지.

그럼 마음콩은 몸에 안 좋은 건가? 

혹시 어릴 적 엄마 말씀대로 마음콩도 '꼭꼭 천천히 씹고 씹다 보면 고소해질까? 몸에 좋은 콩이 될까?' 

속담에 '부모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라고 했으니, 마음콩도 콩이니 잘 볶아진 마음콩을 꼭꼭 씹어 볼까.



진짜 콩은 입으로 씹는다. 마음콩은 어떻게 꼭꼭 씹을까. 

불안콩, 초조콩, 긴장콩, 분노콩, 짜증콩, 두려움콩 이런저런 마음콩알들 다 ~ 꼭꼭 씹어줄게 딱 기다려!! 




꼭꼭 씹기. 그 마음 그대로 인정한다. '네가 지금 불안(그 어떤 이름으로든)하구나' 그대로 명명해 준다.

꼭꼭 씹기. 얼만큼인지 가늠해 본다.  감당할 만큼의 무게인지 아닌지, 감당할 듯한 것만 감당한다.

꼭꼭 씹기. 고개 돌리지 않고 담담히 바라본다. 콩알맹이가 있기나 한 건지, 혹시 빈껍질뿐인지.

꼭꼭 씹기. 씹는 건 나지 콩이 나를 씹는 게 아님을 알아챈다. 마음콩의 주인은 나다. 

꼭꼭 씹기. 형태가 바뀌었음을 느낀다. 딱딱한 형태가 물컹물컹 목 넘기기 좋게 바뀌었다.

꼭꼭 씹기. 이제 꿀꺽! 


자 이제, 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헹군다. 속을 헹군다. 마음을 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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