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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득여사 Sep 30. 2024

아직도 이렇게 나 설레게 하기야?

# 추억은 시제가 없다 # 나를 보고 당신은 웃었어 지금처럼

그때,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신촌의 한 카페.

그때의 늦가을은 지금보다 좀 더 쌀쌀했었나 봐. 아니면, 그 해가 유독 추위가 일찍 시작되었을까?

아니면 추위를 유난히 많이 타던 내가 기억하는 주관적인 날씨일 수도 있지.

두툼한 자주색 재킷 단추를 끝까지 잠그고 카페로 들어갔던 걸로 기억해.

카페문이 바로 보이는 자리에 나는 앉아 있었어. 조금 일찍 도착했었던 것 같아.

조금 뒤, 카페문이 열리고 당신은 나를 보고 웃으며 급하게 다가와 앉았지.

이마에 살짝 땀이 배어있었어. 늦을까봐 열심히 뛰어왔다고 했었지.

나는 추웠다고 기억하는 그날. 당신은 내게 뛰어오느라 땀이 이마에 맺혀 있었어.

갈색점퍼의 지퍼는 잠그지도 않고 팔을 두어 번 걷어올린 채로.

그리고 나를 보고 웃었어. 지금의 그 웃음 그대로 그렇게 웃었지.

나도 같이 웃었어. 지금의 이 웃음 그대로.

나는 당신의 웃음이 좋았어.

바로 지금처럼.



바로 지금,

10월을 며칠 앞둔 9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후.

당신은 뛰고 있어. 아니 뛰어 오고 있어. 내게로.

올여름은 길게 더웠고, 얼마 전에서야 가을이 시작되었지.

늦게 시작된 가을은 더욱 반가웠고 이 바람은 참 시원해.

당신은 시원한 이 바람을 가르며 뛰어 오네.

나는 시원한 바람 때문인지 멀리서 뛰어오는 당신의 실루엣 때문인지

벌써부터 입꼬리가 올라가.

나는 손을 높이 들고 흔들어 주었지.

당신도 손을 흔들고는 다시 뛰던 자세를 유지하며 뛰어 오네.

점차 당신의 실루엣은 확대되고

내 발걸음도 속도를 내지.

우리의 거리는 몇 미터로 좁혀졌어.

당신은 내게 뛰어오느라 땀이 이마에 맺혀 있었어.

그리고 나를 보고 웃었어. 그날의 그 웃음 그대로 그렇게 웃었지.

나도 같이 웃었어. 그날의 그 웃음 그대로.

나는 당신의 웃음이 좋았어.

바로 그날처럼.



“당신 이렇게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하기야?”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그 순간에. 그런데 하지 못했다. 남편의 환한 미소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서로의 거리가 좁혀지는 그 순간에 나는 환하게 웃음만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의 첫 데이트 '그날 그 순간'이 바로 떠올라서 나는 말을 할 틈을 찾지 못했다.

마치 그날과 지금의 시공간 두 개가 공존하는 기분이 들었다.

물리적 시간은 스물 하고도 일곱 해가 지났다. 내가 지금 쓰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스물은 빼고 일곱 해라고 해도 될 만큼 내 머릿속 그때는 이렇게 선명한데.




시간 날 때마다 우리는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함께 두 손 잡고 나무, 꽃, 호수 보며 산책을 한다.

최근에는 호수공원에서 산책이 아닌 운동을 하기도 한다. 그 운동 방법이란 나는 속보로 걷고 남편은 조깅을 하는 것이다. 서로 각자의 방법대로 걷고, 뛰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남편은 빠르게 조깅을 하고 되돌아 다시 뛰다 보면 나를 만나게 된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추억이란 과거가 아니다.

기억은 과거

추억은 현재


기억이 감정과 합일되어 추억이 되면 더 이상 과거가 아니다. 추억은 어쩌면 시제가 없는 것이 아닐까?

기억이 감정을 얻어 추억이라는 존재로 승화되면 그 추억은 더 이상 사진첩 속의 박제된 것이 아니다.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살아 숨 쉬는 상태이다.

추억의 심장에는 감정이라는 심장박동이 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동이 아닌 산책모드로 전환!

나는 남편과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다.

석양이 시작되는 하늘도 보고, 색이 변해가는 나뭇잎의 흔들림도 보고, 땀에 젖은 머리칼을 선들선들 말려주는 초가을 바람도 느낀다.

그리고 맞잡은 손 안에 감도는 간질간질 기분 좋은 촉감도 느껴본다.


입안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말.

꼭 해주고 싶은데 조금은 부끄러워서 머릿속으로만 되뇌어 보는 말.


“당신 이렇게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하기야?”








** 달리는 남자는 실존인물(!!), 다른 사진은 픽사베이 차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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