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더 나빠졌다네요.” “에고, 슬프다. 그렇죠?” “아뇨,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기쁜 일이죠! 죽으면 눈도 나빠지지 않는다니까요.” “아하! 그러네요. 눈이 더 나빠진다는 건 살아있다는 거네요.” 하하하. 호호호.
‘제2의눈’의 역사
노안이 빨리 찾아왔다. 오 년 전부터 다초점 안경을 쓴다.
눈은 나의 가장 큰 매력포인트인데 하필이면..(초롱초롱 유난히 맑게 빛나는 눈에 빠졌다는 남편의 수줍은 고백을 덧붙이며, 헤헤…).
반짝반짝 펄 아이섀도를 좋아해서 특히, 눈화장 하는 재미(날씨, 계절, 옷… 기분을 고려하여 색감을 고르는)가 있는 나의 눈인데!
반갑지 않은 노안이 나를 급습했다!
그럴만하기도 하다. 나의 노안을 앞당기는 가장 주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책 읽기’였던 터라, 나는 유난히 오랜 세월 눈을 혹사해 왔다.
눈을 가장 아끼면서도 눈을 가장 혹사해 왔던 나의 아이러니!
그래서, 갑자기 노안이 나를 급습하자 당혹스러웠다.
눈의 피로도는 물론이고 당장 책, 핸드폰, 악보…. 하물며 일상생활의 물건용도 설명서, 식당 메뉴판, 간판…. 가물거리는 시야에서 글자들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나의 다초점안경들.
제2의 눈이라고 내가 명명했으니, 내게 안경은 눈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내 눈에게 선사했던 호사들을 이제 제2의 눈에게 해 주면 된다.
그래서 시작된 나의 사랑스러운 다초점 안경들!
파랑뿔테 티타늄 동그란 안경 (우리 딸이 타요버스 같다고 놀리는)
노랑호피뿔테 티타늄 동그란 안경 (타요버스만 탈 수는 없어서)
금테 티타늄 안경 (가끔은 점잖아 보여야 해서)
그린 안네발렌틴 안경 (현재 내가 지닌 가장 고가안경, 가방으로 치면 샤넬?)
브라운 스퀘어 뿔테안경 (재작년 파리여행 때, 파리지앵 감성에 젖어서)
반호피 타르트 옵티컬 아넬안경 (조니뎁이 쓴 안경이 멋져 보여서)
그리고 이번 생일 선물도 ‘안경’이라고 이미 선포해 놓은 터다.
이번에는 더욱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이미 찜 해놓았다.
그날의 계절, 날씨, 의상, 스케줄… 특히 기분에 따라 안경을 고른다.
나의 사치이자 호사이자 나의 아이덴티티의 상징이 안경이 된 것이다.
나의 안경의 개수가 늘어가면서 조금씩 노안 지수도 올라가서 올해 초 맞춘 안경이 사실 현재로서는 가장 선명하게 잘 보인다. 그 전의 안경들은 이제 조금 선명도가 떨어지지만, 나는 여전히 그날에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안경을 고른다.
나의 픽을 기다리는 제 2의 눈
나의 제2의눈의 역사를 꺼내자니,이야기가 길어졌다.
다시 이 글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보자.
장소: 마두동 네○드 카페
일시: 지난주 금요일 오전 11시경
모인 사람: 일산에서 아동상담센터를 각자 운영하는 3인의 김∙이∙이 원장들(세 사람의 경력을 합하면 대략 70년이 다 된다는…)
사는 동네, 나이, 아이들 연령대, 무엇보다 같은 직종의 같은 직위이다 보니 세 사람은 각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 정도로 허물이 없는 사이이다. 벌써 그 인연이 십 년도 훨씬 넘어간다. 그 사이 자녀들은 초등학생에서 모두 성인이 되었고 남편들은 퇴직이 언제인지를 가늠하는 나이가 되었으며, 우리들은 흰머리 때문에 센터아이들이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한다.
날씨가 좋으면 오전 호수공원을 산책하기도 하고, 날씨가 춥거나 더운 시기에는 우리의 아지트 카페에서 만난다. 요 몇 년 사이에는 상담센터들이 주로 오후가 바쁘고 오전은 뜻하지 않게 한가해졌다. 자연스럽게 주 2회 정도를 오전 모닝커피타임을 갖게 되었다. 거창한 ‘원장들의 조찬모임’이라고 우스개로 명명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그야말로 ‘즐거운 수다’이다. 이야깃거리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끝도 없는 수다가 이어진다. 그렇게 자주 만나도 늘 할 이야기가 넘쳐난다. 실컷 조찬모임(?)으로 머리와 가슴을 비워내고 몇 년째 가는 식당(주메뉴는 옹심이)에서 위를 채운 후 부릉부릉 각자의 센터로 가는 것이다.
지난 코로나시기, 출산율 저하, 바우처 사업과 실비센터들과의 경쟁 등등. 돌아보면 지난 몇 년간 사설상담센터들이 어려운 시기였는데 다행히 3인방은 서로 다독이고, 어깨 두드려주며 그 시기를 잘 넘어왔다.
질리지 않는 놀이 ‘수다’
생각의 물구나무를 서게 하는 '수다'
철학자가 따로 있나, 지인이 지인에게 철학을 선물하기도 한다.
지난 금요일에도 여지없이 우리들의 수다는 주제와 범위의 제한 없이 넘나들었다. 그러다가 나온 이야기가 ‘다초점안경’이었던 것이다. 새로 안경을 맞추었다는 김원장님의 안경스타일 얘기를 하다가, 안경에 진심인 내가 ‘이번 생일 선물’로 안경을 받을 계획이라고 수다가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이야기는 노안 그리고 세월의 빠름 등등으로 흘러가면서 눈이 더 나빠져서 속상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눈이 더 나빠졌다네요.”
“에고, 슬프다. 그렇죠?”
“아뇨,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기쁜 일이죠! 죽으면 눈도 나빠지지 않는다니까요.”
“아하! 그러네요. 눈이 더 나빠진다는 건 살아있다는 거네요.”
하하하. 호호호.
눈이 더 나빠져 속상하다는 나의 말에, 늘 해학이 넘치는 김원장님이 ‘이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인생의 위대한 철학의 단초를 던져주었다. 앗! 우리의 아지트 카페의 기가 막힌 ‘크림라테’의 카페인이 무색하게 김원장님의 말은 내게 샷 10개를 추가한 강력한 정신적 카페인 각성 효과를 주었다. 띠~~ 잉!!
이제는 안경이 없으면 반소경이나 다름없다며, 때로는 세월의 서글픈 상징처럼 피곤하고 흐릿한 눈두덩을 꾹꾹 누르곤 했었다. 초롱초롱 맑게 빛나던 나의 젊음의 상징이 그 빛을 잃었다며 어쩌면 나는 오히려 가장 자랑스러워하던 내 눈을 애물단지로 여겼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제2의 눈의 화려함으로 나의 제1의 눈을 숨기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순리, 순응… 받아들임!
철학적 사유에서 빠질 수 없는 가치이자 많은 철학의 거장들이 평생에 걸쳐 주제로 삼았던 거대담론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