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섬 전설 들려줄게. 아마, 아직 한 번도 못 들어봤을 거야. 세상에는 비밀 같은 전설이 좀 있거든. 그중에 하나야. 이 붉은 꽃섬의 전설도!
조용조용 내 옆으로 다가와서 귀 기울여서 들어야 돼. 아주 작게 말해 줄게. 붉은 꽃섬의 전설 이야기를!
저기 저 꽃섬 보이지? 봐봐, 점점 붉어지다 불쑥 솟은 저 붉은 꽃섬을!
저 꽃섬은 그리움이 만들었어. 그러나 존재하면 안 되는 섬이야. 그래서 결국은 너무 짧은 시간만 머물다 곧 사라져 버리지. 흔적도 없이.
그리움이 모여져 만들어진 꽃섬은 결국 그리움을 다시 남기고 사라져 버리지.
꽃섬은 그래서 슬픈 섬이기도 하지만 기쁨의 섬이기도 하단다.
왜 그런지 말해줄게. 쉿! 더 가까이 다가와서 들어야 돼. 아까보다 더 작게 말할 거니까. 너무 시끄러우면 저 붉은 꽃섬 더 쉬이 사라질까 봐.
저 붉은 꽃섬은 이승과 저승의 인연이 잠시 만나는 섬이래.
이승에서의 인연을 다시 이을 수 없어서, 꿈에라도 만날까 그리워 울다 울다 잠든 이들.
못다 한 말 있어, 하늘 보고 달보고 강보며 숨 토하듯 되뇌다 지친 이들.
이리 가면 느껴질까, 저리 가면 잊힐까 길 못 찾고 헤매는 이들.
이들의 그리움이 그렁그렁 붉은 꽃물이 되어 그곳에 모이면 솟아오르는 거지. 저 붉은 꽃섬이!
이승과 저승의 인연이 잠시 만날 수 있는 붉은 꽃섬.
저 꽃섬이 솟아오르면 그들은 기쁨의 재회를 하는 거야 저 붉은 꽃섬에서.
잠시 잠깐이지만 영겁 같은 순간인거지 그들에게는.
그간의 이야기, 못다 한 이야기, 안부를 묻고 답하고!
웃다 울고, 울다 웃으며 손 맞잡고 빙빙 돌고 춤추고 얼싸안고!
시간이 다 되어가나 봐. 쉿! 저 꽃섬을 봐. 색이 옅어지고 있어. 보이지?
붉은 꽃물은 어느새 먹색으로 되더니 스르르 흩어져 버렸어.
그리움이 만든 꽃섬은 그리움을 남긴 채 또 사라져 버린 거야.
영겁 같은 짧은 만남은 꿈같이 지나가 버렸어. 잠잠히 사라진 붉은 꽃섬은 또 어느 때가 되면 솟아오를 거야.
저 하늘바다 어디쯤에서!
P.S.
추석즈음, 비현실적인 석양을 보았다. 유리 항아리에 붉은 물감 퍼지듯이 붉은 기운이 하늘을 덮더니, 붉은 기운이 군중처럼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하늘의 한 자리에 그 기운이 몰리더니 순식간에 붉은 섬으로 자리를 잡았다. 푸른기 감도는 하늘에 붉은 석양기운이 몰려있는 형태가 딱 바다 위의 신묘한 꽃섬으로 보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먹색으로 변하다가 스르르 밤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석양은 늘 아름답지만, 유난히 신비스러웠던 그날의 하늘을 다시 보고 싶었다. 그날의 석양 사진을 다시 찾아보다가 사진을 거꾸로 물구나무 세워서 바라보니, 더욱 완전히 ‘바다 위의 꽃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