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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만랩 Jul 22. 2024

언제까지 달려야 하지?

가늘고 길게라도 달리고 싶다.

나의 달리기에는 사실 제약조건이 있다.

약 10년 전에는 농구가 좋아서 동호회 농구를 한참 하던 시기였는데 농구를 하다가 부상을 당한 것 같아서 우연히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보게 되었다. 허리가 좋지 않아서 괜찮은지 확인하러 갔던 것이었는데 의사선생님이 허리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부위에 심각한 문제가 한가지 있다면서 골반 근처를 확대해서 보여주었다.


 



나의 대퇴골과 골반이 연결되는 정확한 의학적 용어로는 대퇴골 경부라는 곳의 내부에 아주 크게 구멍이 생겨서 뼈가 비어있다고 했다. 당장 MRI를 찍어서 큰 병원으로 가서 제대로된 진찰을 받아보라고 했고, 불안한 마음에 진찰을 받았다.


큰 종합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로는 어떻게 생긴건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대퇴골 경부의 구멍이 무시할 정도는 아닌 크기가 꽤 크고 뼈 두께가 mm단위로 붙어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는데는 크게 무리가 없지만 당시 하고 있는 농구와 같은 격한 운동은 절대 하지 말라는 진단을 받았다.

농구나 축구는 말할 것도 없고, 달리기도 권하기 어렵고 운동을 하고 싶다면 그냥 걷기 운동 정도가 좋겠다고 하셨다. 만일 수술을 한다면 적어도 6개월 이상의 침대생활과 재활기간이 필요하고 이후로도 정상적인 운동을 하기는 무리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한창 농구를 좋아하던 나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당시 농구가 너무 좋아서 출근 전에 1시간 정도씩 매일 슛연습과 드리블 연습을 하던 때였고 농구 코트에서 달리는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코트에서 뛰고 싶고, 마음껏 속공으로 달려 나가고 싶은데 그러지 말라니... 고작 농구 좀 해보겠다는데 그걸 못한다는게 나에게는 어린 아이가 그동안 소중하게, 매일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뺏긴 것과 같이 슬프고 절망적이었다.

<고관절에 생긴 구멍은 더이상 커지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그랬다. 이제야 돌이켜 보면 달리지 못한다는건 고작 장난감을 뺏긴 정도의 슬픔이었고 장애물이었다. 달리기 역시 고작 달리기일 뿐이다. 달리지 못한다고 인생이 크게 바뀌거나 직장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앞으로 하지 못한다고 하는 순간 그 상실감이 너무나도 컸다. 의사 선생님께도 살살 달리는 것도 안되는지, 몸싸움 최대한 안하고 하면 안되겠냐고 몇번을 물어봤는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대답은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뉘앙스는 알 수 있었다. '이 양반 고집 있으시구만... 부러지고 싶으면 계속 하세요. 저는 절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증상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한켠으로 넣어두고 마음 속으로 살살 한다는 다짐을 하면서 농구는 계속 했다. 마음 한켠에는 뛰다가 잘못되면 어떻하지라는 불안감이 있으면서도 달리는 순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뛰어다녔다. '살살'이라는 나의 다짐은 경기에 몰입할수록 '활활'이라는 열정으로 타오르기 시작했고, 언제 그랬냐는 듯 속공의 맨 앞으로 뛰어나가기 일쑤였다. 나는 이후로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이런 상태로 동호회에서 미친듯이 뛰어다녔다. 체육관에 갈때마다 생각했다. '오늘은 살살 뛸꺼야!' 하지만 땀을 한바가지 넘게 흘리고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다 타버린 다리를 이끌고 악셀을 밟으며 돌아왔다. 물론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고 포지션이 슈터이다 보니 몸싸움은 많이 안했지만 그럼에도 계속 뛰어다녔다. 집에 와서 침대에 누울때는 오늘도 다리가 괜찮아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몇년을 계속 해왔고 아직 멀쩡하게, 이상 없이 붙어 있는 고관절이 감사하기까지 하다.  

농구를 더이상 할 수 없게 된 이후, - 오십견이 와서 팔이 더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 한동안 쉬다가 달리기로 전환한 이후로 지금까지 달리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두려움은 어찌할 수가 없다. 이러다가 자칫 뼈가 부러져버리면 어떻하지? 오래 달리고 싶은데 어디까지가 과연 나의 한계일까?




달리기는 농구와는 또 다른 차원의 운동강도였다. 일단 쉬는 시간이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였다. 30분이건, 1시간이건 계속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운동이다보니 어찌 보면 농구보다 더 다리에 무리가 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농구는 그나마 쿼터마다 쉬는 시간이라도 있었지...

그래서 처음에는 5km 정도를 천천히 달리자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5km라고는 하더라도, 느리게 달리더라도 달리기는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점점 5km에 익숙해지면서 거리에 대한 욕심, 속도에 대한 갈망이 심장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심장에서 쏘아올린 그 즐거운 갈망은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뇌와 다리에 더 멀리, 더 빨리 달리고 싶다고 재촉하고 있었다. 그렇게 7km, 10km.. 점점 거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중간에 10km 대회도 몇번 참가하면서 이제 10km는 편하게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되어버렸다.

속도 역시 처음에 1km당 7분 정도였던 속도가 최근에는 5분 30초 정도까지 많이 빨라졌다. 느리게 달리면 빨라진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는게 나의 몸을 통해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달리기가 늘었다고 해서 불안감이 사라진건 아니었다. 어찌보면 거리가 늘어날수록, 속도가 빨라질수록 나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달리기는 누군가 나에게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밥숟가락을 놓기 전까지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어떠한 사건이나 사고로 인해, 사건과 사고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다리 뿐만이 아니라 나의 몸에 어떠한 문제로 인해 더이상 달릴 수 없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걸 알고 있다. 다만, 나는 그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늦추고 이 즐거움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다.


현재까지 세운 나의 달리기 목표는 10년이다. 적어도 60살까지는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체력과 몸상태가 되었으면 하는게 1차 목표이다. 그 이후의 목표는 그때 가서 정할 생각이다. 언제까지 달리기가 재미있을지도 알수 없다. 언제까지 달리기를 계속 할 수 있을지 역시 알 수 없다. 하지만 가늘게라도, 길게 오랫동안 달리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말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계절이 변해가는 나의 달리기 주로(走路)를 느끼고 싶고, 새벽에 불어오는 맑은 공기가 오늘은 어떤지 매일매일 느껴보고 싶다. 나의 달리기 주로에 피어있는 꽃이 언제, 어떻게 피고 언제 지는지, 나뭇잎이 무성해졌다가 떨어지는 모습도 같이 느껴보고 싶고 세월이 흘러가는 모습을 욕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에서 확인하는게 아닌, 나의 달리기 주로에서 자연과 함께 느껴보고 싶다.


 



달리기는 나에게 성공과 실패의 잣대를 대지 않는다. 오래 달려서 성공하라고 얘기하지도 않으며, 빨리 달려서 목표를 달성하라고 얘기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로에 나와서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라고, 달리는 발걸음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라고 나에게 유혹할 뿐이다. 나는 달리기로 인해 살아 있음을 더 확실히 확인할 수 있고, 무엇이든 아직 도전이 가능한 상태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달리기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알람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새벽 공기를 가슴으로 들이마시며 하루를 시작해 본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될꺼야! 오늘의 도전도 문제 없겠어! 체력은 아직 충분하군!

이렇게 신나는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서 샤워를 하고 하루를 시작해보자!

나는 아침마다 달리기라는 주사바늘을 몸 속 깊은 곳에 찔러넣고 걱정과 근심을 치료하고, 달리기라는 영양제를 먹고 기운을 차리며, 달리기라는 에너지드링크를 마시고 하루를 시작해본다.

 

난 달리기를 통해 오늘도 인생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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