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첫 세션을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프로젝트 결과도 결과지만 내부 갈등이 가장 큰 이슈였다. 몇 명 없는 학교 직원들 간의 갈등, 재단과 학교의 시각 차가 컸다. 그 와중에 학교 운영을 위한 업무체계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나는 첫 세션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첫 세션에서 위에 언급한 갈등과 시각차를 줄이거나 없애지 못하면…생각하기도 싫지만 프로젝트는 실패를 앞에 두고 달리는 열차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부터 센 질문을 던졌다.
먼저 이분들이 생각하는 대안학교에 대한 비전과 현재 문제점들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특히 문제점과 장애요소에 집중했다. 세 기지 질문을 했는데, 1.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대안학교는 어떤 학교인가? 2. 이런 학교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3. 우리의 대안학교를 만드는데 있어 장애요소나 문제는 무엇인가? 질문을 하면서 나는 이들에게 포스트잇을 주었고, ‘말’로 답하지 말고 각 질문들에 대해 본인들의 생각을 포스트잇에 ‘글’로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이분들이 적은 포스트잇을 내 나름 다시 정리하며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사진은 고객의 이슈들이라 내용은 가렸지만 그 당시 나왔던 결과물이다. 사진에 나오지 않은 1번과 2번 질문을 통해 나는 이분들이 만들고자 하는 학교에 대한 서로 간의 공통점을 찾고 싶었다. 내가 굳이 3번 질문을 한 이유는 각자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던 문제를 끄집어내고 공론화 시키기 위해서 였다. 별거 아닌 듯하지만 이렇게 하면 각자가 지닌 마음 속 문제를 끄집어내 객관화 시킴으로써 ‘나’와 ‘문제를 분리하여 문제 자체에 집중하도록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효과가 있다. 이 장애요인들은 결국 우리가 극복하고 이겨 나가야 할 중간보스들이었다. 내가 이 문제들만 해결하면 우리 프로젝트는 ‘성공’이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쉬는 시간 이후 드디어 가장 큰 산을 넘어야 했다. 학교와 재단의 시각차였는데, 재단은 생활이 어려운 학교 밖 청소년을 우리의 학생으로 받아들이자는 반면, 학교에선 생활의 어려움 보다는 학교에 적응 못하지만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청소년을 학생으로 받아들이자는 주장이었다. 이 앞시간까진 별도의 ‘토론’을 하지 않고 생각을 글로 적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지금 이 이슈는 우리가 토론하고 합의를 봐야 하는 주제였다.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됐다. 내가 함께 하기 전 꽤 오랫동안 이 주제를 갖고 서로 감정적 대립이 있었기에 토론을 하되 세심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끄집어낸 방법은 간접토론이었다. 직접 서로 대화하고 반박하는 대신 중간에 ‘나’를 끼워 넣었다. 먼저 내가 학교측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요청했다. 그들은 재단이 아닌 ‘내’질문에 ‘나’에게 답을 했다. 그러면 나는 그 내용을 내 방식으로 다시 정리해서 재단에 전달을 했다. 이 과정에서 재단은 제삼자로 듣기만 해야 했다. 다시 내가 재단에 질문을 했다. 마찬가지로 재단도 ‘나’에게 답을 했고, 나는 그 내용을 정제해서 ‘학교’에 전달했다.
이런 간접토론의 효과는 일단 상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또 제삼자인 ‘나’에게 대답해야 하니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상황과 의견을 정리해서 말해줘야 한다. 또 이해관계가 없는 ‘나’와 대화를 하다 보면 감정이 많이 누그러진다. 마지막으로 ‘나’도 이 베틀에 깊숙하게 관여한다. 학교나 재단의 의견이 이해가 안 되거나 다른 의견이 있을 땐 내 의견을 묻고 답을 듣는다. 이 과정에서 때론 내 질문이 상대편 속을 긁어 주기도 한다. 때론 질문 받은 분들이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접근인 경우도 있다. 이렇게 우린 토론 속에 상대를 이해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토론을 진행할 땐 나 나름 한가지 원칙이 있다. ‘질문에 배려를 담지 않는다.’이다.처음부터 나는 이 분야에 생소하고 또 지금까지의 과정을 모른다고 전제를 한다. 그리고 내 질문은 직설적일 것이라고 양해를 구한다. 상대의 감정을 배려해서 간접적이고 조심스러운 단어를 사용하면 질문에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토론이 모호해질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사전 안내를 드리고 시작한다. 이 방법을 꽤 여러 번 사용했지만 그렇게 사전 양해를 구한 후 진행했을 때 사회자의 질문에 불편해 하는 분들은 다행히 아직까지 없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토론을 진행했는데, 정말 다행히 재단이 흔쾌히 학교의 의견을 받아들여주었다. 지금도 학교 담당자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잠깐 쉬는 시간 동안 그분은 혼잣말로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걸 우린 왜 지금까지 힘들어했지?’하며 멍~하니 창문을 보고 있었다. 참가자에게 극도로 민감해 있던 순간이라 잠시 그 옆으로 다가가다 듣게 된 말이었다. 이 세션에 참가한 분들은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좋은 분들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고, 서로 직접 대놓고 묻기보다 우회하고 돌려서 이야기하다 보니, 오히려 오해만 쌓였던 게 아닌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