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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무기력한 뇌 -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

by 쿼카쌤 강건

무기력: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없는 상태. 어떤 일을 할 의지나 동력이 사라진 상태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된다. 정신의학에서는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로 간주되기도 한다.

무기력한 시대

현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인터넷만 켜도 정보가 넘쳐나고, AI의 도움으로 누구나 그림을 그리고 앱을 만들 수 있죠. 말 그대로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될 수 있는 세상입니다.

대표적인 생성형 AI 3대장 - 왼쪽부터 차례대로 ChatGPT, Claude, Grok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무기력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기력 극복법을 다룬 유튜브 영상이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관련 도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출처: <장동선의 궁금한 뇌>
8주 연속 베스트셀러 <나는 왜 아무것도 하기 싫을까>

오늘은 무기력이라는 감정의 정체를 뇌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원인을 여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함께 해결책을 고민해보려 합니다.



무기력은 증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기력과 번아웃을 혼동합니다. 그러나 번아웃은 주로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정서적 탈진 상태를 의미하며, 무기력은 그것보다 더 넓은 개념입니다.


무기력은 증상입니다. 몸에 에너지가 없고, 어떤 일을 할 의지나 동력이 사라진 상태. 이 감각은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해선 먼저 그 원인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분석한 무기력의 원인은 다음 여섯 가지입니다: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무기력 (=번아웃)

일시적인 스트레스에 의한 무기력

목표 부재로 인한 무기력

회피 성향으로 인한 무기력

과도한 목표 설정에 의한 무기력

우울증으로 인한 무기력

이제부터는 각각의 원인을 하나씩 살펴보며, 우리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무기력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무기력 (번아웃)

장기적인 스트레스는 뇌의 두 영역을 변화시킵니다. 감정을 감지하는 편도체는 더 민감해지고, 감정을 조절하는 내측 전전두피질(mPFC)은 점점 약해지죠. 특히 편도체에서 분비되는 글루타메이트라는 물질이 과도해지면 mPFC의 세포가 손상되기도 합니다(이를 흥분 독성이라고 해요). 이렇게 감정 조절 능력이 약화되고 스트레스 민감도가 높아지면, 무기력, 냉소, 의욕 상실 같은 번아웃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경우 해결책은 업무 환경이나 스트레스원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일과 거리두기, 신체 활동, 일상 루틴 회복, 정서적 소통 등의 전략을 병행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 챕터 '번아웃 온 뇌'를 참고해주세요!



2. 일시적인 스트레스에 의한 무기력

기대에 못 미친 결과나 인간관계에서의 상처처럼, 단일한 사건으로 인한 무기력도 흔히 나타납니다. 이때도 편도체와 mPFC 간의 힘겨루기가 일어나 감정적 소진이 초래됩니다. 하지만 만성 스트레스가 아닌 만큼 회복 속도는 더 빠릅니다.


또한 이 범주에는 단순한 신체 피로나 과도한 긴장 상태에 따른 일시적인 에너지 저하도 포함됩니다. 이 경우 핵심은 충분한 휴식과 감정의 안정입니다.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고,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세요. 그렇게만 해도 활력은 자연스럽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3. 목표 부재로 인한 무기력

이번 챕터의 핵심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 유형에 속하지 않을까 예상하는데요.


제가 여러 차례 강조했던 것처럼, 우리 뇌는 끊임없이 '예측'하는 기관입니다. 감각, 움직임, 감정, 행동… 모두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죠.


특히 행동을 결정할 때, 우리 뇌는 과제 수행에 드는 비용(예상되는 에너지 소모, 피로, 스트레스 등)과 얻을 수 있는 보상(만족감, 성취감, 금전적 보상 등)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이 비교를 바탕으로 행동할지 말지를 결정하죠.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회로가 현저성 네트워크(Salience Network, SN)입니다. 이곳은 다양한 뇌 영역들로부터 온 정보를 통합하여, 필요한 곳에 자원을 적절히 분배하는 역할을 하죠.


그 결과 가만히 있을 때는 기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가, 집중이 필요한 순간에는 과제 중심 네트워크(Task Positive Network, TPN)가 활성화됩니다.

Central executive network는 TPN과 같은 말입니다.

특히 TPN이 활성화될 때 느껴지는 몰입(flow)은 활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flow' 개념을 처음 제시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에 의하면, 우리는 몰입 상태에서 동기, 기쁨, 통제감 등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이는 모두 활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죠.


그래서 작은 목표라도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방 정리, 이불 개기, 산책, 친구와의 점심 약속처럼 사소해 보이는 목표라도, 그것을 설정하는 순간 뇌는 TPN에 자원을 분배하고, 그 결과 우리는 다시 활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뇌는 몰입할 것이 있을 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뇌가 에너지를 분배할 수 있도록,
‘예측 가능한 목표’를 만들어주세요.



4. 회피 성향으로 인한 무기력

앞선 유형과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목표를 세우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지 못할 때 생기는 무기력이죠.


우리 뇌는 행동을 결정할 때 비용보상을 비교합니다. 그런데 회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똑같은 행동이라도 ‘비용’을 더 크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불안, 긴장감 같은 감정이 과장되기 쉬운 거죠.


예전에 실패했던 경험이 떠올라 새로운 도전 앞에서 주저앉게 되고, 그 기억은 다음 도전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뇌는 점점 더 ‘시도’ 자체를 꺼리게 되죠. 그래서 이 유형에는 자책감과 자기불신이 함께 따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중요한 건 작은 성공 경험을 쌓는 일입니다. 목표를 최대한 작고 구체적으로 쪼개세요. 예를 들어 ‘혼자 해외여행 가기’가 어렵다면, 우선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어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 다음 혼자 쇼핑하기, 혼자 국내 여행 하기처럼 점차 단계를 늘려가세요.


이렇게 성공 경험이 축적되면, 우리 뇌는 그 행동에 필요한 ‘비용’을 점점 더 낮게 예측하게 됩니다. 그 결과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도 높아지고, 활력도 회복되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 “그래도 시도한 내가 기특해” 같은 응원이 필요합니다. 스스로와 한 편이 되어 주세요. 그것이 회피 성향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입니다.



5. 과도한 목표 설정에 의한 무기력

반대로 목표가 너무 확고하고, 계획이 지나치게 구체적일 때에도 무기력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중요한 열쇠는 바로 도파민입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즉 도파민은 보상을 받는 순간뿐만 아니라, 보상을 기대하는 과정에서도 분비됩니다.


특히 도파민은 ‘예측 불가능한 보상’에 더 크게 반응합니다. 이미 결과가 뻔한 보상에는 반응이 줄어들죠. 예를 들어, 아무리 좋은 여행지라도 두 번째 방문에는 처음만큼의 설렘이 줄어드는 것처럼요.


이 특성을 삶에 적용해보면, 지나치게 철저한 계획은 도파민 반응을 둔화시킬 수 있습니다. 미래가 완전히 예상 가능해지면, 뇌는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무기력이 찾아올 수 있는 것이죠.


저 역시 스레드를 처음 시작했을 땐, 어떤 기회가 열릴까 하는 설렘과 동기 덕분에 매일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생각과 함께 흥미가 줄어든 걸 느꼈어요. 때로는 목표가 분명할수록, 오히려 동기가 약해질 수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됐죠.


만약 여러분이 이 유형에 해당된다면, 완벽한 계획보다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기대감’에 자신을 맡겨보세요. 불확실성은 때때로 도파민을 자극하고, 그 자극이 다시 활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6. 우울증으로 인한 무기력


앞선 다섯 가지 유형이 모두 누구나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무기력이었다면, 여섯 번째 유형은 질병으로 인한 무기력입니다. 바로 우울증입니다.


만약 다음과 같은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울한 기분 또는 흥미·즐거움의 현저한 감소

식욕 변화, 체중 변화

불면 또는 과다수면

피로감 또는 기력 저하

무가치감 또는 죄책감

집중력 저하

반복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 자살 사고 또는 시도


우울증은 단순한 기분 저하가 아니라, 뇌의 기능 자체에 변화가 생기는 질병입니다. 다행히 치료법은 오랜 임상 경험과 연구를 통해 잘 정립되어 있고, 무기력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약물치료, 정신치료, 생활습관 교정 등이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우울감으로 무기력을 느끼고 있다면 꼭 실천해보셨으면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기상 직후 햇빛 보기입니다.


우리가 잠에서 깰 무렵, 뇌는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특히 기상 직후 30~45분 사이 나타나는 급격한 상승을 코르티솔 각성 반응(CAR)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반응은 하루의 활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아침 햇빛은 이 CAR을 효과적으로 유도합니다. 눈 속의 특수한 세포(ipRGC)가 햇빛을 감지하면, 시상하부를 통해 부신에 신호가 전달되고, 코르티솔 분비가 촉진되죠.


방법은 간단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최대한 빠르게 바깥으로 나가 하늘을 바라보세요. 해를 직접 보지는 말고, 하늘 방향을 향해 눈을 열어두면 충분합니다. 단 5~10분이면 돼요.


스탠퍼드 의대 교수이자 유명 신경과학자인 앤드류 휴버먼은 이 루틴을 “생산성과 정신건강을 위해 가장 중요한 5가지 루틴 중 하나”라고 언급하며 강력히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햇빛은 자연이 준 가장 강력한 ‘각성제’입니다.
가능한 한 빠르게, 그리고 꾸준히
이 루틴을 실천해보세요.



마무리: 무기력에서 벗어나려면

무기력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뇌의 반응입니다.
문제의 해결은 자책이 아니라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어떤 원인에서 비롯되었는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선택하세요.

휴식이 필요한 무기력도 있고,

목표 설정이 필요한 무기력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뇌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귀 기울여보세요.

그 순간부터, 활력은 다시 시작됩니다.


이 글은 제 책 「내 마음을 위한 뇌과학」의 여러 챕터를 참고하여 작성한 내용입니다. 이외에도 우울, 불안, 예민함 등 우리를 힘들게 하는 여러 감정 속에 숨겨진 뇌과학과 그 해결책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 참고 부탁드립니다!

28만 유튜브 <뇌부자들> 강력 추천!
<세바시 인생질문>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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