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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번아웃 온 뇌 -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었다면

by 쿼카쌤 강건

번아웃(Burnout Syndrome):

업무나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오는 신체적·정서적·정신적 탈진 상태. 동기 저하, 냉소적 태도, 업무 효능감 감소 등의 증상이 동반된다.

혹시 나도 번아웃일까?

다음 항목 중 해당되는 것이 몇 개인지 체크해보세요.

일할 때 예전만큼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무기력하다.

일 생각만 해도 숨막히고 의욕이 급격히 떨어진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예민해지고 멀어진다.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세 가지 이상 해당된다면, 여러분은 번아웃(Burnout)의 전조 증상을 경험하고 있을 수 있어요.


이 개념은 1974년,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가 처음 제안했습니다. 그는 약물 중독자를 돕는 무료 클리닉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던 의료진들이 극심한 탈진과 무기력에 빠지는 모습을 관찰했죠. 이후 이 개념은 다양한 연구자들에 의해 확장되며,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직무 관련 증후군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스트레스와 만성 피로 연구에 많은 공헌을 한 허버트 프로이덴버거(1926~1999)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인 직무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증후군.”


매슬랙 번아웃 척도(MBI)의 공동 창안자이자 번아웃 분야 최고 권위자로 유명한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마슬락(Christina Maslach)은 번아웃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을 다음 여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Workload – 감당하기 힘든 과도한 업무량

Control – 업무에 대한 통제감 상실

Reward – 노력에 대한 보상 결여

Community – 직장 내 소속감 부족

Fairness – 부당하고 불공정한 대우

Value –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무의미한 업무

이러한 요인들이 반복되면, 우리는 점점 의욕을 잃고, 일에 대해 냉소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명예 심리학 교수 크리스티나 마슬락

그렇다면 번아웃은 우리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지금부터, 번아웃이 뇌를 어떻게 태워버리는지 그 생물학적 변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번아웃이 뇌를 태우는 과정

『내 마음을 위한 뇌과학』에서도 언급했던 세 가지 뇌 변화—편도체, 내측 전전두피질(mPFC), 미상핵—는 번아웃 상태의 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이번에는 그중에서도 특히 편도체와 내측 전전두피질에 집중해, 보다 깊이 있게 살펴보려 합니다.


1) 편도체의 변화: 스트레스에 민감해지다

편도체(amygdala)는 스트레스 신호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처리하는 곳이에요. 그런데 번아웃이 진행되면, 이 편도체의 크기가 실제로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¹이는 반복적이고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면서 편도체가 과활성화된 결과죠.


이렇게 되면 우리는 일상적인 자극에도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무시할 수 있었던 말이나 상황에도 과도한 불안이나 짜증이 생기는 것이죠. 마치 신경이 곤두서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편도체의 위치와 구조.

2) mPFC의 변화: 스트레스 조절이 어려워지다

반면, 내측 전전두피질(mPFC)은 그와 반대의 변화를 겪어요. 이 영역은 감정을 조절하고, 편도체의 반응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죠. 그런데 스트레스가 장기간 누적되면 이 부위의 두께가 점점 얇아진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 말은 곧 우리의 감정 조절 능력이 약해진다는 뜻입니다.

전전두피질의 위치와 구조. 내측 전전두피질과 외측 전전두피질로 나뉜다.


더 우려되는 점은, 이런 변화가 나이가 들수록 더 두드러진다는 거예요. 원래도 인간의 뇌는 나이를 먹으며 피질(cortex)이 조금씩 얇아지는데, 특히 전두엽은 노화에 민감한 영역이거든요. 그런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의 경우, 이 얇아지는 속도가 훨씬 가파르게 진행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²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는 30세에서 50세까지 뇌 피질 두께가 0.2mm 정도 감소한다고 한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은 같은 기간 동안 0.4mm 이상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스트레스는 뇌의 노화를 앞당길 수 있고, 번아웃이 반복되면 같은 나이라도 더 ‘늙은 뇌’를 갖게 되는 셈이에요.


흔히 우리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후에 “몇 년은 늙은 기분이야”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하죠. 그러니까 그 말이 뇌과학적으로 완전히 허튼 소리만은 아닌 셈입니다.


이처럼 번아웃은 단순히 의지나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뇌의 구조적 변화와 신경 세포 수준의 손상까지 이어지는, 생물학적인 문제예요. “참아야지”라고 버티는 것만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아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의 뇌가 보내는 신호를 빠르게 인식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입니다.



참고: 스트레스는 어떤 원리로 mPFC를 약화시키는 걸까요?

우리 뇌는 각 영역이 따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편도체와 내측 전전두피질 역시 서로 주고받는 회로를 통해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평소에는 mPFC가 편도체를 조절하며 감정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죠.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을 때, 편도체에서 ‘글루타메이트(Glutamate)’라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기 시작해요. 이게 적당하면 괜찮지만, 장기간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이 글루타메이트가 너무 많이 분비되면서 오히려 mPFC의 뉴런들을 지나치게 자극하고, 결국 세포 손상이나 사멸까지 유도하게 됩니다. 이를 흥분 독성(excitotoxicity)이라고 불러요.

내측 전전두피질과 편도체의 상호작용.


이렇게 mPFC가 약화되면, 감정의 브레이크도 작동하지 못하게 되고, 편도체는 더 과도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더 민감하게 느끼고, 그 결과 다시 글루타메이트가 과잉 분비되고, mPFC는 더 손상되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정리하자면 이런 흐름이에요:

[스트레스] → [글루타메이트 폭증]
→ [mPFC 얇아짐 → 감정 조절력 약화]
→ [편도체 과흥분 → 감정 과잉 반응]
→ [스트레스에 더 민감해짐] → 다시 [스트레스]



번아웃에서 벗어나는 4가지 방법

그래서 번아웃에 빠졌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미리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2022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코로나19 당시 실제 의료 인력들이 사용한 다양한 대처 전략들을 분석하고, 그 효과를 체계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특히 효과적인 것으로 제시된 네 가지 전략을 소개해드릴게요.


1. 일과 거리두기

번아웃에 빠졌을 때 가장 흔하게 하는 실수는, 자신이 번아웃 상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평소 일에 열정적인 사람일수록, 생산성이 떨어지면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악순환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


일단 잠시 멈춰보세요. 무언가를 계속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함께 내려놓으세요. 평소 보고 싶었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도 좋고, 유튜브나 게임을 즐겨도 괜찮아요. 이렇게 일과 거리를 두는 것은 ‘도망’이 아니라, 내 뇌의 회복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에요.


2. 삶의 균형 바로잡기

번아웃 상태에서는 오히려 중요한 일상 루틴을 먼저 내려놓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끼니를 거르고, 수면이 무너지고, 좋아하던 산책이나 취미도 뒷전이 되죠. 하지만 이런 루틴들이야말로 우리의 회복을 돕는 기반이 됩니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생활 리듬부터 다시 회복해보세요. 기상 시간, 식사 시간, 수면 시간. 이 단순한 것들이 여러분의 리듬을 다시 잡아줄 거예요.


3. 신체 활동 하기

무기력할수록 휴식이 중요하지만, 휴식이 너무 길어지면 우리의 뇌는 ‘목표가 사라졌다’고 착각할 수 있어요. 이때 가벼운 움직임은 다시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습니다. 큰 것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가볍게 산책을 하거나, 친구와 약속을 잡거나, 전시회를 가보는 것도 좋습니다. 몸이 움직이는 조건을 만들면, 마음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할 거예요.


4. 동료들과 소통하기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혼자 끌어안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다 힘들 텐데, 나만 약한가?” 하는 생각은 내려놓으세요. 여러분이 털어놓는 순간, 주변 사람들도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과 연결되는 경험은 여러분의 가장 강력한 자원이 되어줄 거예요.


5. 최고의 치료는 역시 예방하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번아웃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것이에요. 앞서 소개한 번아웃의 6가지 요인 - 업무량, 통제감 상실, 보상 결여, 소속감 부족, 불공정한 대우, 무의미한 업무 중, 여러분에게 해당하는 항목은 무엇인가요? 그중에서도 내가 직접 조정할 수 있는 요인부터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첫 번째 요인인 ‘과도한 업무량’과 관련해서는, 적절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에요. 우리는 흔히 모든 것을 혼자 다 해낼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아무리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라도 모든 걸 혼자 감당하며 평생 지속할 수는 없어요.


‘지속 가능한 시스템’부터 만드는 게 우선입니다. 무작위로 작업하는 대신, 예측 가능한 루틴을 설계해보세요. 만약에 당신이 크리에이터라면, 매주 수요일, 주 1회 콘텐츠를 올리는 것부터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할 수 있는 만큼’을 기준으로 꾸준히 이어가는 거예요.



번아웃이 자주 온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열심히 해왔다는 증거일 수도 있어요. 더 잘하고 싶은 마음, 더 빨리 성장하고 싶은 욕심에, 빨리 타버린 거죠. 하지만 번아웃이 반복될수록, 그 주기는 더 짧아지고 회복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내 회복력을 과신하다가, 정말로 뇌가 ‘타버릴’ 수도 있어요.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이 소중하다면, 그 열정을 오래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금 나만의 루틴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예요. 그게 바로, 건강하게 오래가는 길입니다.


열정은 순간이지만, 루틴은 남습니다.


마무리 퀴즈

Q1. 번아웃은 어떤 조건 아래에서 발생한다고 정의될 수 있을까요?
① 단기간의 피로감
② 성공적으로 관리된 업무 스트레스
③ 만성적인 직무 스트레스
④ 우울증
정답: ③


Q2. 스트레스를 받으면 편도체에서 분비되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은?
① 도파민
② 세로토닌
③ 글루타메이트
④ 옥시토신
정답: ③


Q3. 다음 중 번아웃의 주요 요인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① 업무 통제감 상실
② 공정하지 않은 대우
③ 사회적 인정
④ 의미 없는 업무
정답: ③


실천하기 체크리스트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스트레스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최근 내가 했던 일 중, 보상이나 의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나만의 루틴(기상, 식사, 수면)을 잘 유지하고 있나요?
마지막으로 진심을 털어놓은 사람은 누구였나요?
오늘 하루 중 쉬어가는 시간은 얼마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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