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아는 떨리는 손으로 하진의 명함에 적힌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더니 낯선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여보세요?”
차분하지만 경계가 느껴지는 목소리. 민아는 잠시 망설였지만,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 민아라고 합니다. 요양원에서 한 번 뵀었죠. 유진 씨 자원봉사와 관련해서요.”
잠깐의 침묵. 하진은 기억을 더듬는 듯 조용히 대답했다.
“아, 기억납니다. 그때 꽃집 이야기도 하셨던 분이군요.”
민아는 긴장한 채 빠르게 말을 이었다.
“사실 제가... 연락드릴 줄은 몰랐는데, 상황이 좀 이상해서요.”
하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죠?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민아는 들숨을 깊게 쉬며, 최근 겪은 일을 차근차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유진 씨가 말했던 포스트잇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그 집 앞에 누가 붙여놓은 거요. 저도 똑같은 걸 받았어요.”
하진의 목소리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포스트잇? 정확히 뭐라고 적혀 있었죠?”
민아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동안 내 생각 많이 했어?’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마치...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한 메시지예요.”
하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혹시 유진 씨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나요? 그 사람이 계속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민아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대답했다.
“네, 유진 씨가 그런 말을 했어요. ‘어디서든 날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고. 그리고 집 앞에 이런 포스트잇이 붙어있다고 했는데... 그게 저한테도 똑같이 생긴 거예요.”
하진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한 듯 말했다.
“유진 씨가 누구를 의심한 적은 없었나요? 예를 들면 요양원에 있던 환자들 중...”민아는 기억을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때... 강정우 씨가 유진 씨와 가깝게 지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근데 수상한 부분은 없었어요.
하진은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민아 씨, 지금 뭔가 중요한 단서를 잡은 것 같아요. 유진 씨와 당신이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의 주목을 받았다면,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가까운 인물일 수 도 있고, 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인물일 수도 있어요.”
민아는 몸을 움츠리며 두려움을 감추려 했다.
“그럼... 저도 유진 씨처럼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건가요?”
하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절대 혼자 다니지 마세요.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말고요.”
하진이 통화 마지막에 남긴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제부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경계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인물일 수도 있어요.”
민아는 하진의 조언을 듣고 더욱 불안해졌다.
“하진 씨...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진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곧 찾아갈 겁니다. 그때까지 문단속 잘하시고, 누가 찾아와도 절대 문을 열지 마세요.”
민아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꼭 쥐었다.
“알겠습니다. 제발 빨리 와주세요.”
민아는 다시 한번 현관문을 확인하며 잠금장치를 꽉 걸었다.
민아는 띵동 거리는 초인종 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인터폰 화면을 확인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누구지?’ 그녀의 가슴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화면에 하진의 얼굴이 천천히 나타났다. 그는 지친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민아 씨, 저예요. 하진입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민아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 서 있던 하진은 차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무슨 일 없었죠?”
민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진을 안으로 들였다.
“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런데...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던 게 자꾸 머릿속에 남아요. 누군가 저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서...”
하진은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확인한 후, 그녀의 말에 신중하게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포스트잇을 단순한 장난으로 넘기면 안 돼요.”
“뭐든 좋으니 유진 씨와의 대화에서 어떤 단서라도 없을까요?”
민아는 하진의 질문을 듣고 잠시 고개를 숙인 채 기억을 더듬었다.
‘유진과 나눈 대화 중에 무언가 의미 있는 게 있었을까...?’
민아는 유진과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들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분명히 그 안에 작은 단서라도 있을 것이었다.
민아는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고개를 들었다.
“아! 생각났다. 유진 씨가 예전에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 뭐냐고 물었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을 추천해 준 적이 있는데... 그게 뭔가 의미가 있을까요?”
하진은 눈빛이 번뜩이며 말했다.
“유진 씨가 그런 질문을 했다면, 누군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거나 초대하려 했던 걸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 대상이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민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때는 그냥 요양병원 환자분들 중 누군가를 위해 묻는 줄 알았어요. 유진 씨가 자주 그런 일들을 하니까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좀 특별했던 것 같아요."
하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식당을 추천해 준 적이 언제쯤이었나요? 혹시 그 질문을 한 이후 유진 씨의 행동에 변화가 있었나요?”
민아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그게... 유진 씨가 그 질문을 한 뒤로 몇 주 지나서부터 불안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뭔가를 감추려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요.”
하진은 이 단서가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
“그 식당이 어디였는지 기억나세요?” 하진이 물었다.
민아는 곧바로 대답했다.
“네, 그 식당은 전통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작은 가게였어요. 요양병원 근처에 있는 곳이었죠.”
하진은 곧바로 조사 계획을 세웠다.
“그 식당과 유진 씨가 방문했을 가능성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곳에서 유진 씨가 만난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게 이번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