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은 민아가 말한 전통 한식당을 찾아갔다. 가게 입구부터 깔끔하게 정돈된 분위기는 고급스러움이 묻어났다. 높은 천장과 은은한 조명, 정갈하게 정돈된 식기들까지, 이곳이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특별한 만남을 위한 장소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진이 경찰 신분을 밝히자, 가게 주인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협조했다.
“무슨 일 때문이신가요? 혹시 저희 가게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하진은 명함을 건네고, 유진의 사진을 보여주며 차분히 설명했다.
“이 여성 분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몇 주 전에 이곳에 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CCTV 영상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동선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여성분이군요. 네, 기억납니다. 꽤 인상적인 손님이었어요. 특별히 조용한 자리를 원하셨거든요. CCTV를 확인해 보세요. 이쪽으로 오시죠.”
하진은 식당 주인을 따라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주인이 컴퓨터 앞에 앉아 CCTV 영상을 돌려보며 유진이 방문했을 만한 날짜를 찾기 시작했다. 조용한 화면 속 일상적인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가던 중, 갑자기 익숙한 모습의 여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유진이었다.
유진은 살아있는 듯 평온한 모습으로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식당 안으로 들어와 주저 없이 한 자리에 앉았다. 그 앞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지만, 그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누구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두 사람은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는 듯 보였다.
하진은 남자에게 집중하려 했지만, 얼굴을 숨긴 그의 모습은 의심스러웠다. 유진이 이렇게 오랜 시간 대화할 만큼 잘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유진이 왜 이 만남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하진은 의문이 들었다. 그녀가 신경 쓸 만한 만남이라면 누군가에게 이야기했을 법도 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맞나요?” 주인이 물었다.
“네... 유진 씨가 맞아요.” 하진은 천천히 대답하며 화면 속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하진이 유진의 모습을 담은 CCTV 화면을 집중해서 보고 있을 때, 화면 한쪽에서 또 다른 남자가 등장했다.
그는 중년의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로, 깔끔한 정장 차림에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 가리고 있었다. 유진과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이 남자는 그녀와 익숙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게다가 남자가 마스크를 벗고 상 위에 놓는 것까지 보았지만, 카메라 구도상 얼굴이 보이는 위치가 아니었다.
하진은 남자의 신분과 유진과의 관계를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단순한 지인이 아닐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하진은 주인에게 물었다.
“저 남자 기억나십니까? 자주 오던 손님인가요?”
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렇게 마스크와 모자를 쓴 손님은 기억에 없습니다. 평소에는 오던 분이 아니에요.”
하진은 주인의 대답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유진과 그날 처음 만난 것 같지는 않은데...?’
유진과 남자는 꽤 오랜 시간 대화를 이어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진의 표정이 점점 더 진지해졌고, 손짓도 조심스러워졌다.
‘유진은 이 남자에게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 하지만 왜 이 만남을 비밀로 했을까?’
남자는 유진이 말하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대답하는 태도를 보였다. 대화의 중심은 분명 유진에게 있었다.
영상은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장면으로 끝이 났다.
유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고, 남자도 뒤따라 나갔다.
그들의 동선이 화면에서 사라지는 순간, 하진은 깊은 의문에 빠졌다.
‘그 남자가 L일까? 아니면 유진이 마지막으로 만난 또 다른 인물일까? 왜 유진은 이 만남에 대해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하진은 CCTV 복사본을 가져와 자신의 집에서 영상을 반복해서 돌려보았다. 유진과 남자의 만남이 짧지만 중요한 단서를 숨기고 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는 화면을 여러 번 되감고, 멈추며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유진과 남자는 매우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태도로 대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진은 그들의 작은 움직임 속에 미묘한 긴장감이 깃들어 있음을 느꼈다. 남자의 얼굴은 모자와 마스크로 가려져 있지만, 그는 유진의 말에 신경을 곤두세운 듯 보였다.
하진은 영상을 멈추고, 유진의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 표정... 평소의 유진과는 다르다. 무언가를 숨기려 하거나,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의 표정이야.’
하진은 유진의 손동작에 집중했다. 그녀는 말을 할 때 종종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가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는 행동을 반복했다. 불안감과 긴장감이 스며든 행동이었다.
‘그녀는 이 대화가 중요한 걸 알고 있었어. 아니면 무언가를 결정하려던 순간이었을지도 몰라.’
반대로 남자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유진을 주의 깊게 듣기만 할 뿐,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눈빛이나 작은 행동에서도 감정을 읽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남자, 대체 무슨 의도로 유진을 만났던 걸까?’
하진은 영상을 정지하고 확대하면서도 남자의 단서를 찾으려 했지만, 모자가 그의 정체를 완벽히 가리고 있었다.
하진은 CCTV 속 유진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확신했다.
‘유진이 그날 만났던 남자는 분명 그녀에게 중요한 사람이었어.’
유진이 그토록 조용한 태도로 긴 시간 대화를 나눈 것은 단순한 지인이 아니었다는 결정적 증거였다.
“이 만남에는 분명 무언가 더 큰 의미가 숨겨져 있어.” 하진은 생각했다.
‘그 남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왜 유진이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려 했던 걸까?’
하진은 유진의 일기와 단서를 종합하며, 그 남자가 유진에게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만든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하진은 CCTV 속 대화를 되짚으며, 그 만남이 유진의 마지막 선택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직감했다.
‘이 남자가 유진의 계획에 깊숙이 얽혀 있어. 그와의 만남이 유진의 삶을 뒤바꿨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