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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서류 속의 나

균열의 시작

by 아이린

덴마크의 아침 공기는 서늘하고 상쾌했다.

창문을 열면 바닷바람이 미세하게 스며들어, 코펜하겐 특유의 짙고 푸른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진(소피아 한센)은 커피 잔을 들고 노트북을 켰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입양아들의 기록을 정리하고, DNA 매칭을 돕는 일이 그녀의 주요 업무였다.
수천 개의 입양 기록을 정리하며, 자신의 기록도 몇 번이고 확인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보낸 사람: 김주현 (Korea Insight 기자)
제목: 입양 기록 관련 문의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입양 관련 기사를 취재 중인 기자입니다.
한서진 씨의 입양 기록을 검토하던 중, 서류에 몇 가지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혹시 확인해보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서진은 순간 멈춰 서서 메일을 다시 읽었다.

‘입양 기록에 이상한 점이 있다고…?’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기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출생 기록 자체가 흔들린다는 의미였다.

노트북 옆에 놓인 오래된 서류 봉투를 집어 들었다.
덴마크 부모님이 소중히 간직해 주었던 원본이었다.

이름: 한서진
출생일: 1993년 4월 21일
출생지: 서울
입양일: 1995년 6월 3일

그녀가 아는 한,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조작된 거라면?

‘내가 기억하는 내 과거는 진짜일까?’


손가락을 움켜쥐며 서진은 기자에게 답장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제 입양 기록에서 어떤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나요?"

몇 분 후, 기자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한서진 씨의 출생 병원이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병원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입양 서류의 서명이 동일한 필체로 다른 아이들의 서류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과거 불법 입양이 성행하던 시절에 종종 발견됩니다."

불법 입양.

서진은 화면을 응시했다.
입양이란 건 단순히 새로운 가족을 찾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덴마크에서 사랑받으며 자랐지만, 그 과정이 정당한 것이 아니었다면…?

입양 서류가 진짜가 아니라면, 그녀의 가족은?
그녀를 보냈던 한국의 부모는?

모든 게 거짓이라면, 지금까지 믿어온 자신의 정체성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질문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처음엔 단순히 호기심이었다.
입양 서류가 잘못되었는지 확인하고, 만약 실수가 있다면 바로잡으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자가 보낸 자료를 읽을수록, 이건 단순한 행정 오류가 아니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자신의 출생 기록이 조작되었다면,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입양될 아이로 거짓 서류를 만들어진 아이였다면?

그렇다면 진짜 나는 누구였을까?

그녀는 이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뿌리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

“내가 입양된 과정에서, 누군가 다른 아이도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그녀가 조작된 서류로 입양되었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가족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아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를 수도 있었다.

이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소피아?"

메르테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서진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며 그녀를 보았다.

"괜찮아?"

"응… 그런데 좀 이상한 일이 생겼어."

"무슨 일이야?"

서진은 기자가 보낸 메일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메르테는 찬찬히 내용을 읽더니, 입을 다물었다.

"이게 단순한 실수일까? 아니면…"

그녀는 말을 멈추고, 서진을 바라보았다.

"너 어떻게 할 거야?"

서진은 한동안 고민하다가, 마침내 조용히 말했다.

"…한국에 가려고."

메르테의 눈이 커졌다.

"정말? 갑자기?"

"응. 그냥 기자한테 답장만 보내는 걸로는 부족할 것 같아. 직접 가서 확인해야겠어."

"너… 괜찮겠어?"

메르테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모르겠어."
서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내 과거가 조작되었다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어.
그걸 그냥 넘길 수는 없잖아."

메르테는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럼 가야지. 네가 답을 찾을 때까지."



그날 저녁, 서진은 부모님과 식탁에 앉아 있었다.
엄마가 덴마크식 감자 요리를 준비했고, 아빠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엄마, 아빠… 저 한국에 가려고 해요."

포크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무슨 일 있어?"

"제 입양 기록이 이상하대요. 기자가 연락을 했어요.
제 서류에 뭔가 오류가 있다고요."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빠는 입을 다물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저도 몰라요. 그런데 만약 제 출생 기록이 조작된 거라면… 제 친부모는… 정말 제 친부모가 맞을까요?"

엄마는 서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소피아, 넌 우리 딸이야. 어디에서 태어났든, 그건 변하지 않아."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하지만… 저도 제 뿌리를 알고 싶어요."

아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필요하다면 가야지.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코펜하겐 공항.
비행기 표를 들고 서진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덴마크는 그녀의 집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그녀가 태어난 곳이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이제는 알아야 해."

비행기가 하늘로 떠올랐다.
그녀의 뿌리를 찾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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