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김지윤일 수도 있다고요?"
최선희의 목소리는 불안하게 떨렸다.
서진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 저는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이에요.
하지만, 제 입양 기록에 이상한 점이 많아요."
서진은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당신의 딸일 가능성이 있지 않나요?"
최선희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믿을 수 없음과, 믿고 싶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럼, 너도 기억이 나니?"
서진은 순간 당황했다.
"네?"
"너도… 그날을 기억하니?"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고, 손끝도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눈앞에는 지금 서 있는 서진이 아니라,
과거에 잃어버린 두 살짜리 아이가 겹쳐 보이는 듯했다.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어."
최선희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우린 남편과 함께 시장에 가고 있었어.
지윤이는 내 손을 꼭 잡고 있었지."
그녀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마치 그때를 되돌아보듯 말했다.
"시장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비가 쏟아졌어.
나는 가게 앞에서 우산을 사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사이에…"
그녀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그 사이에, 지윤이가 사라졌어."
서진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어.
그렇게 10분, 20분…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
최선희는 숨을 삼키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결국 경찰에 신고했지만…
지윤이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어."
서진의 가슴이 조여왔다.
자신이 김지윤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점점 자신이 그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너… 오른쪽 귀 뒤에 점이 있니?"
서진은 순간 멈칫했다.
"네?"
최선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지윤이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귀 뒤에 작은 점이 있었어.
그 점을 보고 항상 ‘우리 딸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야’라고 말하곤 했어."
서진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오른쪽 귀 뒤에는,
정말 작은 점이 하나 있었다.
"…"
그녀는 조용히 손을 올려 점을 만져보았다.
"너한테도… 있어?"
최선희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 순간, 서진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정말 자신이 김지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그녀는 나직이 대답했다.
그러자, 최선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럴 리가 없어…"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꿈에도 그리던 지윤이가… 살아 있었다니…"
서진은 숨을 멈췄다.
그녀는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 순간, 스스로도 정말 김지윤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네가… 지윤이라고?"
최선희의 남편 쪽 가족들도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서진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지윤이는… 밝은 아이였어.
항상 웃으면서 아빠를 졸졸 따라다녔지."
고모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너도 어렸을 때 그랬었니?"
서진은 순간 대답을 망설였다.
하지만, 뭔가에 이끌린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어릴 때 아빠를 많이 따라다녔어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이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었다.
그들은 눈물을 머금고 서진을 바라보았다.
"네가 정말 지윤이라면, 우리 가족은 널 다시 찾은 거야."
그들의 눈빛은 따뜻했고, 간절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감정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서진은 정말 김지윤이 된 것 같았다.
그날 밤, 호텔 방에서 서진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오른쪽 귀 뒤의 점
같은 해, 같은 시기에 사라진 아이
그날의 비 오는 날 이야기
"나는… 김지윤일까?"
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모든 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내가 그 아이일까?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보려 해도,
그녀는 그날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이제는 그 사실조차 상관없어 보였다.
최선희는 그녀를 딸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녀의 가족들도 서진을 지윤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감정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점점 더 깊이 착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