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에도 촌수가 있다" 그때는 '그래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으로엄마와 눈을 마주치며 웃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엄마의 말은진심이었고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나는 예전 엄마의 말에 격한 공감을 한다.
이쯤 되면 엄마들은 눈치 챗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굉장히 비위가 약해서 지독한 냄새나 혹은 더러운 것을 연상하는 것만 봐도 구토가 쏠리는 사람이다. 아마도 위장이 약해서 더 그러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의 응가를 치우고 심지어 씻기다 만지면서 '어라! 내가 비위가 좋아졌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아무렇지 않게 내 아이의 응가를 처리하곤 했다.
아이가 50일~100일 즈음될 때였다. 신랑이 아이의 기저귀를 갈다 말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아기 놀라게 왜 소리를 질러?"라며 화를 내려는 순간 응가를 시원하게 누고 발길질을 하며생글 웃는 아기와 아기의 응가를 온몸으로 받아낸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신랑의 모습을 보고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때 여기저기 튄 아기의 똥과 아기의 엉덩이에 묻은 똥을 씻으며 더럽다는 생각보단 그저 사랑스럽고 귀여우며 신랑에겐 미안하지만 웃긴 에피소드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아기가 변비로 5일 이상 고생하다. 치킨을 즐기는 엄마아빠에게 범보의자에 앉아 엉덩이를 들썩들썩 거리며 폭포수 같은 응가를 선물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둘 다 넘쳐흐르는 아가의 응가를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며 큰소리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등까지 묻은 똥을 닦이면서도 행복해하는 우리였다.
여전히 비위가 약한 나는 아이가 크는 만큼 아이의 응가 냄새도 짙어 짐을 느낀다. 그럼에도 신기한 건 내 아이의 응가를 치울 때면 더럽다는 생각보단 아이가 몸속에서 내보낸 결과물의 상태를 먼저 살피게 된다.
오늘의 똥은 너무 무르진 않은지 혹은 딱딱한지 작은지 큰지 이를 통해 아이의 건강이나 몸의 상태를 한번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신랑은 나처럼 비위가 약하지 않아 아이가 어릴 때부터 아이의 응가 처리는 1등으로 잘 도와주었다.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신랑의 그러한 태도에 감사한다.
그러다 보니 그가 쉬는 날 아이와 산책이나 놀이터를 나가지 않은 것 등 함께 살면서 생기는 소소한 불만들은 '다 좋을 순 없지!'하고 묻어두게 된다.
아이는 일반식을 먹으면서부터 버섯을 무척이나 잘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랑이 응가 한 아이를씻겨주면서 "애 엉덩이에 똥이 껴서 나오질 않아" 하며 나를 다급히 부른다. 놀란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달려갔다. 심각하던 신랑은 갑자기 웃기시작했고, 아이가 버섯을 씹지도 않고 삼키는 것 같다며 "아이의 똥꼬에 버섯이 끼여있어"라고 말한다.
똥꼬에 낀 버섯 사건은 그날 이후에도 몇 번 더 있었던 것 같다. 새송이, 양송이, 송화, 표고, 팽이까지 노릇하게 익혀 소금을 살살 뿌려주면 너무 잘 먹었던 아이였으나 꼭꼭 씹지 않았던 것 같다.
똥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똥의 주인에 대한 사랑의 정도를 알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나처럼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가정을 꾸리고 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어쩌다가 물 내리지 않은 변기 속에 담긴 어른의 그것을 볼 때도 있다.
공중 화장실에서 보면 헛구역질과 동시에 눈살을 찌푸리며 급히 뛰쳐나오지만 우리 집에서 본 어른의 큰 똥은 나로 하여금 장난을 치고 놀리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커다란 똥이 내 눈앞에서 사라질 수 있도록 재빨리 다시 뚜껑을 닫으며 한 손으로는 코를 막고, 한 손은 변기레바를 누른다.
이뿐만이랴 동물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사람마다 가족을 사랑해도 각자 표현하는 방식이나 대응방식이 다르겠지만 분명한 건 가족의 똥은 그래도 남의 똥보다는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니 엄마가 하신 여러 가지 말들이 가끔 생각이 난다.
오늘은 그중 늘 엄마가 말씀하신 "똥에도 촌수가 있다"라는 말이 그냥 웃자고 한말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나를 씻기고 키워준 친정엄마에게 "똥에 대한 고찰"이라는 다소 엉뚱한 글을 쓰며 마지막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