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유 Jun 21. 2024

스물 일곱(下)

사람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바야흐로 펼쳐진 나의 스물 일곱.

세상이 마치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분명 두어 달 정도는.....그랬다.


4월의 어느 날, 학교로 출근하는 길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벚꽃을 보면서 생각했더랬다.

'와...진짜다, 내 인생 드디어 꽃길이 열렸구나....'


이 많은 벚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져서 아스팔트 사이로 자근자근 밟혀 들어가는 날들이 온다는 것도 잊은 채 말이다.ㅋ




학교 생활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만으로는 필요조건조차 채우지 못했다.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의 마음을 모두 이해하기엔 내가 너무 어렸고, 교육행정학에 나왔던 '느슨한 조직'인 학교는, 말 그대로 '느슨한 조직 그 자체'라, 그 누구도 내가 해야하는 일에 대해 친절히 가르쳐주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오늘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훈육이

혹시 신경질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검열하느라 머리를 싸맸고, 제때 처리하지 못해 쌓여가는 일들로 자존감은 낮아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교사의 월급은 너무나도 작고 소중하여 결혼 자금을 모으겠다며 덜컥 들어놓은 적금을 제외하고 나면 내 용돈 정도 근근히 나올 수준이라 부모님께 여전히 빌붙어 사는 신세.


프로페셔널하게 일을 처리하는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스물 일곱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독립한 하나의 개체로서의 스물 일곱

그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열정적인 교사로서의 스물 일곱............


그 무엇도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나의 스물 일곱이 따박따박 지나가고 있었다.


내 소중한 스물 일곱을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 거야?

이렇게 스물 여덟을 맞이해도 되는거야?




매일을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 친 끝에 결론 지었다.


스물 일곱은 시작일 뿐이다.

내가 원하던 모든 삶을 살게 되는 시작점일 뿐이다.

나는 앞으로 점점 나아진다.


내 나이 마흔 정도가 되면(ㅋ)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라고.....




스물 일곱에 만났던 나의 아이들이 벌써 스물 여덟이 되었다.

작가도 되고 간호사도 되고 교사도 되었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기다리던 마흔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