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특급 시리즈를 아시나요?
아이들은 '공포특급'을 읽었고, '쉿' 시리즈로 귀신을 보는 척했다.
공포물을 너무 좋아했던 나는, 수요일 밤의 '전설의 고향', 토요일 밤의 '토요 미스테리 극장', 일요일 밤의 '이야기 속으로'와 같은 프로그램을 한번도 빼놓지 않고 볼 만큼 무서운 이야기 매니아인 초등학생이였다. 아마 어린 나이에도 그 이야기들이 '허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새벽에 혼자 일어나 화장실을 가야할 때나, 머리를 감을 때 어디선가 갑자기 귀신이 튀어나오진 않을까 하고 쏜살같이 볼일을 해결할 때가 있었지만 말이다.
살면서 정말로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 때가 있었다.
2016년 9월, 내가 사는 도시 근교에서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이다.
정말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이었다. 공포특급, 전설의 고향과 달리 자연재해는, 일어나는 순간 바로 '나'의 일이었다.
30분 간격으로 두 번의 지진이 일어났다. 살면서 한번도 겪지 못했던 상황. 마트의 모든 물건이 떨어질 것 같았고, 집에서는 거실의 전등이 다 깨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심하게 흔들렸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지진이라는 것이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도 이런 규모로 발생할 수 있다니. 게다가 나에게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작고 어린 존재가 있었다.
이후로 한동안 크고 작은 여진이 계속 되었고,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르는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정말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이 뼈저리게 들었고, 거기다 아이를 지키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은 -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정도의 고통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2017년 수능을 일주일 앞두고 또 한번의 지진이 있었다. 이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지진 시 대피 요령을 알려주게 되었고, 학교에서도 소방 훈련만큼이나 당연하게 지진 대피 훈련을 하게 되는 시기가 왔다. 흐른 시간만큼 나도 무던해졌고, 또 아이도 많이 자랐다.
지금의 나는 공포특급도, 지진도, 이제는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는다. (물론 지진이 공포특급보다는 무섭다.)
공포특급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고, 지진이 일어나도 대처할 수 있는 요령을 익혔다.
마흔 즈음이 되면서 생긴 나의 두려움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 기정사실이지만 인식하지 않고 살던 것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친구들의 결혼 소식보다 친구 부모님의 부고 소식이 잦아지기 시작했다거나, 부쩍 약해지신 부모님의 모습을 마주할 때 더욱 그렇다.
우리가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지킬 것이 많아질수록 두려움은 커져간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두려움이 생긴다. 어차피 남아있는 모든 인생이 나의 통제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기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결국 확실치 않은 인생 속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필연적 감정이라 받아들이면 그저 견딜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행복은 예기치 않았을 때 더욱 기쁘고, 불행은 예기치 않았을 때 오히려 견딜만하다고 한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그것이 반드시 오고야 말 미래라 할 지라도)을 잠시 의식의 저 편으로 미뤄두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해 가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