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결혼 - 스물 일곱 외전
그리고.......
많은 일을 거쳐
또 다시 기다리던 마흔이 되었다.
청춘 사업이라는 연애도 마음대로 되지 않던 시기였다. 몇 해를 만나오던 사람이 있었는데, 결혼을 생각하니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아 흐지부지 지내다 헤어지고 말았다.
오래 만나왔던 사이라 허전하고 쓸쓸하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몇 년만에 혼자(?)가 되어보니 또 이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네. 주말이 오롯이 내 시간으로 확보되고, 누군가와 굳이 일정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오는 해방감이랄까. 와, 이대로라면 정말 결혼이란 건 하고 싶지 않다... 평생 이렇게 여유라는 것을 느끼고 살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여태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 혼자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내 취향의 영화 실컷 보러 다니기
친구들 마음껏 만나기
부모님과 소소한 시간 보내기
그리고,
혼자 여행 가기.
여행을 좋아하는 유전자를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나다.
정말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함께 휴가철만 되면 전국 팔도 곳곳을 다니며 여행을 했더랬다.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여행이 아닌, 말 그대로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던 '빡센' 여행.
조금씩 나이가 차다 보니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는 횟수가 자연히 줄어들었다. 게다가 부모님과 함께 살다보니 괜히 남자친구랑 여행을 간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고 가자니 그것도 내키지 않고. 조금은 아쉬웠지만 크게 불편함 없이 시간을 보냈던 것 같은데, 자유의 몸이 되자(!) 감춰져 있던 여행 욕구가 다시금 꿈틀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이 지금만큼 보편화되어 있진 않아서, 직업을 가질 때까지는 해외여행 경험이 전무했고 - 꼴에 누나값을 해 보겠다고 군입대를 앞둔 동생을 데리고 갔던 일본 여행이 내 해외여행의 전부였던 당시.
혼자 영화를 보고, 카페를 가고, 밥을 먹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쩌면 혼자 여행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아마 취향과 성격이 전혀(정말이지 전혀) 다른 동생과 둘이 함께 했던 첫 여행이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았었기에 더욱 욕심이 났던 게 아닐까 싶다.
2013년 1월,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 간 상해를 여행하고 온 뒤, 곧바로 다시 짐을 꾸렸다. 첫 여행에서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10분의 1도 즐기지 못했던 일본으로 다시. 혼자.
긴장도 되고 즐겁기도 하고, 자유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던 나의 첫 혼자 여행. 비록 수도 없이 길을 잃고 시행착오도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이어나가는 내 모습에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내가 내적, 외적으로 고군분투(그야말로)하며 열심히 일본의 간사이 지방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 나에게서 8000km는 족히 떨어진 유럽을 여행하고 있던 친구가 있었다.
7시간의 시차를 넘어 각자 서로의 여행지에서, 서로의 여행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알고 지내는 동안 많은 부분이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던 친구.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런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 여행해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 지금은 어느새 11년 째 나의 든든한 여행 파트너이자 육아 파트너, 가장 친한 술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
이형기 시인은 ‘낙화’에서 이런 표현을 했다. 덕분에 ‘역설’을 가르칠 때 해당 시구와 더불에 아이들에게 풀어낼 썰도 풍요로워졌다.
쓸모없는 시간들이라고 여겼던 - 몇 번의 연애 끝에 얻은 쓸모있는 것들 덕분에 - 나에게도 마침내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이 찾아왔다.
나의 경험은 아래와 같이 내 나름대로의 ‘배우자에 대한 단상’으로 남아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을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자주 이야기 해 주곤 한다.
1. 성격은 달라도 된다. 오히려 다를수록 채워지는 부분이 많다.
2. 취향이 다른 부분은 서로 인정하되, 교집합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3. 누구에게나 따뜻한 사람이 나에게도 끝까지 따뜻한 사람이 된다.
치열하게 흔들리고 방황했던 20대를 보냈다. 연애의 쓸모, 혹은 모든 경험의 쓸모 덕택에 언제든 기꺼이 함께 흔들려 줄 수 있는 소울 메이트와 함께 30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덤으로 나에게 조금도 심심할 틈을 주지 않는 꼬마 친구도 함께.
여전히 흔들리고 방황하겠지만 함께라서 조금은 덜 외로울 30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