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맛있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죠?

제1장 음식 편

by 겨울나무

반갑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제가 보낸 링크를 타고 여기까지 오셨을 겁니다. 정말 신기해서 물어보는 관심 어린 질문에 감사하면서도, 이제는 조금은 지겨워진 여러분의 "왜?"에 답하는 글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먹어보라고 안 합니다. 기겁해서 도망가지 말아 주세요.

어쩌다 한 번씩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 누군가에게는 제가 먹는 음식을 음식으로 인정 안 해서 놀랍니다. 제 열띤 설명은 "맛없잖아"라는 한 마디로 가볍게 파도가 휩쓸리듯 묻힐 때도 가끔 있습니다. 그러면 갯벌에는 제 상처만 남죠. 그분의 "왜?"는 '궁금증'이 아니라 단지 '혐오'였을 뿐인 걸까요? 그렇게 자꾸만 주눅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을 나누게 되는 요소에 정말 맛 밖에 없을까요? 저는 좀 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맛. 가장 기본이죠. 이 기본에 향과 식감이 더해지면 즐거운 음식이 됩니다.

맛을 좌우하는 데에 의외로 추억도 한몫을 합니다. 때로는 손을 못 대게 만들기도 하죠. 직접 요리하거나 사 먹는 것처럼 그 음식을 먹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선택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 나가기 싫은데 집에서 만들기 어려운 재료나 방법이라면 배달을 시켜 먹는 것처럼요.

가격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정된 돈 안에서만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몸 관리를 위해 칼로리 제한, 특정 음식을 제한하면서 식단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제한이 괜히 더 음식을 감질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건강과 맛. 되게 서로 안 어울리는 단어잖아요. 그런데 그건 건강 100, 맛 100 충족하는 음식을 찾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하지만 건강 50, 맛 50이나 건강 70, 맛 30 이런 어떨까요? 찾기 쉬울 것 같지 않으신가요?

그리고 꼭 맛만이 행복과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은 하루의 컨디션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배 아픈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면 맛 200도 불행할 수 있습니다. 저라면 차라리 맛 20에 내일 컨디션 80을 선택하겠습니다.

제 팍팍한 식단의 시작은 못 먹는 음식이 많기 때문이 맞습니다. 고등학생 때 스트레스 과다로 과민장증후군이 생겼습니다. 조금만 잘못 먹어도 탈이 나서 불안에 떨면서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못 먹는 음식이 많다 보니 처음에는 '남들은 즐기는 음식을 나는 못 먹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우울해했습니다.

그러다 학교 안 가는 방학에 그동안 못 먹은 음식을 몰아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맛있지 않았습니다.

"먹지 못한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음식을 갈망한 건가?"

"못 먹어서 속상할만한 음식이 정말 맞을까?"

"생각보다 많은 음식이 특별히 맛있는 게 아니라면 나는 불행한 게 아닐지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내가 정말 좋아하는지 세세하게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속이 편하면서 나름 맛도 있는 식단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제 식단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몇 가지 짧은 에피소드를 들려드리자면...

#1 친구들과의 단톡방

친구 A : 점심으로 뭐 먹지? 다들 뭐 먹었어?

나 : 참치마요 양배추

친구 B : 으엨ㅋㅋㅋㅋ 맛없겠다.

(헐... 나 엄청 맛있게 먹었는데?라고는 할 수 없었다.)

#2 두부에 양상추를 먹고 있는 나.

룸메 :..? 다이어트해?

나 : 아... 아니...^^(다이어트면 두부를 줄이고 좀 더 단백질을 챙겨 먹었겠지라고는 할 수 없었다.)

#3 친구랑 밥 먹다가

친구 C : 식단 매번 챙기기 번거롭지 않아?

나 : 나도 식단 귀찮은데 닭가슴살에 고구마는 요리 안 해도 되니까 편해서 잘 먹게 되더라.

친구 C : 근데 닭가슴살은 맛없잖아.

나 : (말문이 막혔다. 어이가 없는 게 아니라 진짜 뭐라고 답해줘야 할지 감이 안 왔다.)

#4 외식 메뉴 고르기

나 : 난 내일 배 아플 거 같아서 안 먹을게.

지인 1 : 에이 조금만 먹으면 되잖아.

나 : 아니 조금도 안 돼ㅠㅠ 진짜 내일 화장실 들락날락해야 돼. 일하는 데 뛰쳐나갈 수는 없잖아.

지인 2 : 우리랑 놀기 싫어서 그러지~~

나 : 에이~ 그럴 리가~~ 쉬는 날 전날에 불러줘! 그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 (먹는 이야기 전에 싸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하는 서러움을 너네가 알아?라고는 할 수 없었다.)

#5 햇반에 닭가슴살 먹는 중

지인 4 : 무슨 맛으로 먹어? 맛.. 있어?

나 : 아 내가 배탈이 잘 나서 좀 건강하게 먹는 편이야.

지인 3 : 맛있는 음식을 못 먹고살다니 불쌍해. 어떻게 참아? 난 그냥 배 아파도 먹는데

지인 4 : 그래~ 그냥 먹고 싸~

나 : ㅋㅋㅋㅋㅋ그럴까? (그냥 배 아픈 수준으로 안 끝나니까 그러겠지?^^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여전히 당당히 말할 줄 모릅니다. 그래도 못 먹어서 속상해할 시기는 지났습니다. 확실한 건 '좋아서' 먹는 것이고, '그래서' 행복합니다. 다음 주부터 풀어낼 시시콜콜한 제 평가는 아주 불공정합니다. 제가 먹을 수 있는 음식에는 제멋대로 가산점을 주고, 못 먹는 음식은 안 먹을 이유만 가득 들이대며 지극히 주관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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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