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음식 편
여러분은 불안에 떨면서 식사해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꽤 많은데요. 다음날 외출이 있는데, 거절 못하는 외식 자리에서 불안에 떨면서 먹습니다. 저는 잘 먹으면 2인분은 거뜬하게 먹을 만큼 잘 먹습니다. 하지만 불안한 상황에서는 한 주먹 정도 겨우 들어갑니다. 윗사람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면 다이어트하냐면서, 안 해도 된다고 팍팍 먹으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면 표정은 저도 모르게 조금씩 어두워지고 사주는데 기뻐하지 않는 저를 못마땅해합니다. 가끔은 뻔뻔하게 죽이나 샐러드를 사달라고 해보면 맛있는 거 사준다는데 뭐 그런 걸 이야기하냐고 하십니다. 먹고 싶은 음식에 기준이 있는 걸까요? 사회생활을 많이 해보고 알게 된 것은 "뭐 먹고 싶어?"라는 말에는 "네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 나도 먹을 수 있을 적당한 음식을 말해 볼래? 그리고 배부를 만큼 푸짐한 음식이어야 시켜야 내가 사주는 보람이 있겠지?"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만 받겠다는 말에는 예의상 거절이 아니라 아주 진심을 다해 하는 말입니다. 요즘은 이러나저러나 미움받을 바에 차라리 가지 말자는 생각에 갈수록 단호하게 거절하게 되네요.
이런 저에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카페도 잘 안 갑니다. 커피가 들어가면 배 아프고요. 카페인에 민감해 잠도 설쳐요. 그리고 설탕과 시럽이 상상 못 할 정도로 들어있을 거라 예상이 가는 음료를 제외하면 허브티 종류만 남습니다. 그래서 제 주변 사람은 제가 라테 종류를 좋아한다는 것은 꿈에도 모를 것입니다. 말하지 않습니다. 말해봤자 못 먹기 때문이죠. 녹차라테를 가장 좋아하고요. 고구마라테, 카페라테도 맛있게 먹습니다. 다만 다음날 쉬는 날이라면요... 그렇게 아주 가끔 감질나게 마시다가 문득 '라테가 왜 맛있을까?' 생각해 보며 녹차라테, 녹차, 우유를 각각 따로 마셔보며 비교해 보았습니다.
녹차라테는 달콤 쌉싸름 고소합니다.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 녹차는 그 향이 황홀합니다. 홀짝 마시면 코가 향긋함에 벌렁거려요. 향이 좋아서 자주 즐기고 싶지만 카페인에 취약하기에 정말 아주 가끔만 마십니다.
우유만 마시면 첫맛은 시원하다가 서서히 달짝지근한 맛이 납니다. 목으로 다 넘길 때쯤 약간 느끼해지고 혀에 약간의 우유 비릿함이 남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아주 조금 달콤하고, 고소합니다. 그런데 이 애매하고 오묘한 맛을 너무 좋아합니다. 저는 유당분해 우유(소화가 잘 되는 우유, 락토프리 우유)만 마십니다. 유당불내증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워낙 배탈이 잘 나서 이왕이면 불안함 없이 마시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안심도 맛에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소고기 안심 말고요. 그건 순우리말이잖아요. 편안할 안, 마음 심.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으면 더 맛있습니다. 배탈 걱정 없이 수면 걱정 없이 마시면 괜히 더 맛있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