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21일
오늘은 짱구와 싸웠다. 짱구가 먼저 “멍청이”라고 놀렸다. 그래서 나는 리미콘으로 때렸다. 그러니까 짱구가 또 “여자는 똥깨다.”라고 놀렸다. 나는 또 리미콘으로 머리를 때렸다. 그래서 짱구가 울었다. 내가 짱구를 울렸지만 잘못은 짱구가 먼저 했으니까 난 후회 같은 건 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짱구는 내 동생이다. 사진을 확대하면 실명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부터는 ‘짱구’라는 가명으로 써보겠다.
짱구는 만화 캐릭터일 뿐, 동생과는 실제로 아무 관련이 없다. 대한민국 남자 어른이 평균적으로 쓸 만한 가명들, 이를테면 홍길동이나 김철수 같은 무난한 이름도 좋겠지만 동생의 가명으로는 뭔가 내키지 않는다. 정 많은 사고뭉치 짱구가 역시 탁 감긴다.
나의 모든 일기장을 통틀어서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은 바로 내 동생이다. 부모님도 친구도, 그 누구도 동생만큼 많이 등장한 사람은 없다.
내 동생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80%가 나와의 싸움, 15% 정도는 그로 인한 나의 훈계와 가르침(우리는 겨우 23개월 터울이다.), 나머지는 그럭저럭 즐거웠던 일로 구성되어 있다. 8할을 싸움으로 채웠을 만큼 우리는 많이 싸웠으며, 나는 끝까지 승리를 쟁취하고 동생의 눈물 따위에는 마음이 약해지지 않는 ‘센’ 누나였다.
싸울 거리는 찾기 나름이었다. 동생이 놀려서, 동생이 내 물건을 건드려서, 동생이 말대꾸를 해서, 동생이 시비를 걸어서, 등등. 지금 생각하면 모두 말도 안 되는 유치한 이유다. 이제 와서 일기를 읽어보면 당시 상황이 그려진다. 내 동생, 짱구는 그저 누나랑 놀고 싶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어려서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잘 몰랐을 뿐이다.
문제는 그 마음을 깊이 헤아려 주기에는 나도 수준이 고만고만한 어린이였다는 것이다. 늘 비슷한 문제로 아웅다웅 싸워대며 우리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유년기를 보냈다. 붙어서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놀다가도 여차하면 육탄전으로 치닫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여기에 어릴 적 우리 남매만의 차별화된 포인트가 있다. 서로 주먹은 오갈지언정 욕을 하거나, 동생이 나에게 ‘너’라는 식의 호칭을 쓰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가 넘지 않는 선이었고 우리 집의 위계질서였다. 그리고 그 질서는 우리 할아버지와 엄마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가부장제 그 자체인 분이었다. 말년의 병간호는 고모들과 우리 엄마가 하셨음에도 언제나 하나뿐인 아들이었던 아빠가 할아버지에게는 제일 소중하고 애틋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빠는 그다지 효자가 아니었는데, 아빠가 어떤 아들이든 할아버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왕좌는 내 동생이 이어받았다. 할아버지에게 나는 손자를 대신할 수 없는 여자아이였고, 동생과 같은 잘못을 했다면 내가 혼나는 것이 마땅했다.
할아버지 앞에서 항상 울거나 기죽어 있는 나를 보고 엄마는 결단을 내리셨다. 엄마의 선택은 내 가정의 질서는 내가 잡는다, 이거였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나를 울리면 엄마는 동생을 아주 호되게 혼내셨고, 할아버지가 합당한 이유 없이 동생 편을 들면 더 큰 소리로 내 편을 들어 주셨다.
이것이 엄마가 정하신 우리 집의 질서였다. 남자라고 윗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동생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내내 누나를 존중해야 한다고 거듭 배워야만 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엄마는 어쩔 수 없었던 그 시절의 선택에 대해 아직도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신다.
순했던 동생 본인의 기질과 똑똑해 ‘보였던’ 누나, 그리고 억울하게 혼날 상황을 자꾸 만들어주시는 할아버지 덕에 삼박자가 완성되었다. 저학년 때 학교 적응을 힘들어하고 공부에 영 관심이 없었던 짱구는, 학교에서는 혼이 나고 집에서는 할아버지와 엄마 사이에서 눈치를 보느라 힘든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그 와중에 마음과는 다르게 누나와 자꾸 싸우게 되니,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순간들이 참 많았겠다 싶다.
이제는 다 커서 누나의 위로가 필요하지 않겠지만, 그 시절의 동생을 만나게 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네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나도 네가 있어서 늘 좋았어.
하루가 멀다고 싸우기 바빴던 우리도 어느 시점엔가 무언의 평화 협정을 맺을 수 있었다. 그것은 동생의 키가 내 키를 역전하던 때였다.
주먹의 크기조차 달라지는 때가 오자, 우리는 둘 다 이전처럼 싸울 수는 없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 같다. 사실 싸울 거리도 없었다. 각자의 생활로 바빴고, 원하는 것은 말로 하면 되었기에, 이전처럼 싸우는 것은 마치 문명 이전의 야만인들이나 하는 행동으로 취급되었다.
키가 비슷해지기 시작했을 즈음의 동생이 나를 한 번 밀었다면 나는 몇 미터는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동생을 올려다보게 되었고, 우리의 관계도 역전되는 키처럼 변했다. 바로 이렇게!
상황 1
나: (방에 누워서) 짱구야! 빨리 와 줘. 진짜 급한 일이야!!
동생: 뭔데?!
나: 불 좀 꺼줘 헤헷.
상황 2
동생: (라면을 끓이며) 누나 진짜 안 먹을 거지? 진짜지?
나: 나 다이어트 한다고.
(잠시 후)
나: 나 진짜 딱 한 입만 먹을게.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