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뚱이네 Oct 18. 2024

내가 사랑했던 신새륜

2000년 10월 5일


엄마께 혼이 났다. 요즘 만화책을 너무 많이 본다고 혼내신 것이다. 그래서 난 불만이다. 엄마가 혼내시는 이유는 바로 한자 연습을 안 하며, 타자 연습도 안 하며, 수학 영어 예습 복습도 안 하며 등등의 바로 공부에 지장이 있다고 그러시는 것이다. 세상에 공부가 재밌는 사람은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전혀 이해가 안 되지만, 공부가 떨어진다고 만화책을 금지하다니….
한자는 그냥 한자경시대회 잘 보고, 꼭 필요한 것만 알면 되고, 타자는 300타 정도면 지장은 없다고 생각하고, 그밖의 수학이나 영어같은건 그냥 학교에서 배우는거나 잘 알면 되는 것 같다. 게다가 나는 만화책을 안 보면 더 집중이 안 된다.
난 여태까지 우리 엄마는 ‘공부’ 소리를 안 하시길래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로써 그 생각이 달라졌다. 이 일기를 쓴 지금 이 시간 후부터는 아주 잘하든지 못 하든지 해서 엄마 마음을 확 바꿔놓고 말 거다. 화이팅!


  십대의 초입부터 늘 무언가를 덕질해 온 사람, 바로 나다. 덕질의 계보를 빼고 나의 사춘기와 청소년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 나는 특별히 사춘기를 앓았다고 표현할 만한 시기가 없었다. 그 이유가 나의 무던한 성격과 엄마의 지지 덕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미화되고 각색된 과거라는 것을 알았다. 낮에는 바쁘게 할 일을 하고, 밤이면 도파민이 분출되는 삶을 살았으니 사춘기의 우울과 방황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2024년에 십대를 보냈다면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 쿠키를 굽느라 허덕였을 테지만, 나의 열두 살에는 웹툰이 아닌 만화책이 있었다. 내가 용돈을 그대로 갖다 바쳤던 우리 동네의 작은 만화방은 몇 년의 호황기를 누린 후 폐업과 업종 변경을 거쳐 지금은 작은 식당이 되었다. 그 작은 식당 앞을 지날 때면 만화책을 미친 듯이 읽어 내려가던 열두 살의 내가 생각난다.


  지금도 생각나는 그 시절의 만화책 대여 시세는 3, 400원이었다. 300원짜리와 400원짜리 만화책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또렷이 기억하는 것과 드문드문 사라진 기억 사이에서 나는 만화방 사장님의 얼굴을 떠올린다. 40대 중후반쯤 되셨을 만화방 사장님께서는 단골 중에서도 최연소자였을 나에게 많은 혜택을 베푸셨다. 가끔은 연체료를 깎아주셨고, 뭘 읽을까 구경하는 척하며 돈을 내지 않은 만화책을 읽고 있는 나를 눈 감아주시기도 했다.

  나에게 무엇보다 컸던 단골 혜택은 월 두 번, 1일과 15일에 발행되던 잡지 ‘윙크’를 처음으로 빌리는 영광을 주셨다는 점이다. 윙크를 통해 보던 주옥같은 작품들은 매월 발행일이 다가올 때면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가능한 한 빨리 달려가 따끈따끈한 새 잡지를 받아볼 때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윙크를 보던 시절에는 한 달이 참 빨리 가곤 했다.




  어느 시점이 되자 만화방의 특정 면에서 새롭게 볼 만한 것이 없게 느껴졌는데, 그 면은 바로 순정 만화 코너였다. 나는 오로지 순정 만화, 단 하나의 장르만 보았다. ‘궁’, ‘꽃보다 남자’처럼 드라마로 제작되어 전 국민에게 알려진 작품부터, 서가의 구석에 꽂혀 있거나 잡지에 조금씩 연재되어 소수에게만 선택받던 작품까지 닥치는 대로 몽땅 다 읽던 시기였다.


  많이 읽은 만큼 이 시기의 종이 남친들은 끝도 없이 공급되었다. 그래도 5순위 안에 드는 인물들은 늘 변함이 없었는데, 그중 단연 1위는 박은아 작가님의 ‘다정다감’에 나오는 신새륜이었다. 첫사랑이라 불릴 만한 추억도, 좋아하는 남자아이도 아직 없었던 나에게 신새륜은 이상형 그 자체였다.

  주인공들이 모두 고등학생으로 등장하는 만화라는 점에서 어린 나에게 고등학교에 대한 막연한 판타지를 심어 주었던 것도 바로 이 작품이다. 그러나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 나는 여고를 나왔다. 게다가 고등학생 때 학원이나 종교 단체처럼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곳을 다니지 않았기에, 아쉽게도 ‘다정다감’ 속 주인공들이 겪는 간질간질한 에피소드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중학교 2학년쯤부터 만화책 자체에 대한 흥미가 시들해졌다. 나의 덕질과 지구력의 한계가 보통 이 정도인 것 같다. 어떤 대상이든 뜨겁게 사랑했다가 2, 3년쯤을 주기로 서서히 식었다. 이런 이유들로 ‘다정다감’은 어린 나를 두근거리게 만든 누군가가 있었던 작품으로, 그리고 결말을 보지 못한 미완의 작품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만화책을 보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도 잊어갈 즈음 ‘다정다감’의 결말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결말을 지금 보게 돼서 다행이라고 말이다.


  너무 큰 스포일러라 글에 쓸 수는 없지만, 내가 추억하던 다정다감과 신새륜은 설레고 두근거리는 첫사랑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작품의 후반부를 향해 가며 로맨스의 내용은 극사실주의가 되어 간다. 그 시절의 내가 보았다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분개했을 결말이지만, 어른이 되어서 보니 씁쓸하면서도 마음의 울림이 컸다. 사랑과 이별을 겪은 후에 보는 로맨스는 같은 작품도 다르게 다가오는 법이다.

    

  예상하지 못한 스토리로 끝맺음을 했던 나의 신새륜처럼, 저 날의 일기도 그 순간의 감정으로 써 내려간 글이었을 뿐이다. 만화책을 못 보게 하면 공부를 아주 잘하든지 못하든지 둘 중 하나만 하겠다는 나의 비장한 각오를 엄마가 보셨다면 웃으셨을 것이다. 저 글을 쓴 이후에도 난 언제나 공부를 잘하고 싶어 했고, 만화책과는 굳이 말리지 않아도 알아서 서서히 멀어졌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쓰던 일기는 그저 의무감 가득한 숙제였을 뿐이라고 여겼는데, 그 속에는 구석구석 일기를 쓰는 나의 진심이 들어있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 글을 쓰고 난 후에는 나의 마음도 조금은 풀어졌으리라 생각한다. 지금의 나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이 25년 전에도 있었다는 것이, 그 글을 지금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신새륜은 왼쪽입니다 호호 (출처 알라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