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에 꺼내 읽는 나의 이야기
자고로 역사에 남은 유명인들이라면 일기 한 권쯤은 남겼기 마련인 경우가 많다.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는 일기를 써서 전쟁의 참혹함을 알렸고, 이순신 장군께서는 난중일기를 남기셨다. 가수 아이유는 일기가 자신의 음악적 원천이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대한민국은커녕 내가 사는 골목에서조차 유명인이 되지 못했지만, 일기장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갖고 있다. 내가 유명인이 된다면 이 일기장들은 아주 비싼 값에 팔릴 테니 우리 딸에게 가보로 남겨야… 할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이제부터 나 혼자 다시 읽고, 그 시절 나의 일기에 대한 리뷰를 남겨 보려 한다.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했고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라고 지난 30여 년간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다는 것을 글을 쓰고 있는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입학하던 1996년은 무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던 첫해였다고 한다. 내가 수십 년간 국민학교에 입학했다는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일기장 때문이다. 저학년 때 쓰던 일기장 표지에는 00국민학교 몇 학년 몇 반이라는 나의 소속이 동글동글한 글씨로 쓰여 있었다.
이 사소한 오해가 이 글의 출발점이다. 오랜만에 꺼내 본 일기장 표지에는 국민학교라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었고, 언제부터 초등학교였을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학교의 명칭에서 시작한 생각들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로, 과거 전반에 대한 회상으로 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 이걸 글로 쓰고 싶다!
나는 엄마가 소중히 보관해 주신 초등학교 시절 나의 일기장을 결혼하면서 물려받았다. 아니, 돌려받았다. 출생증명서가 코팅된 채로 끼워진 앨범 몇 권과 일기장들은 신혼집에서부터 나와 함께 이사 다녔다. 지난 몇 년간은 줄곧 구석진 자리 어딘가에 처박힌 신세였고, 꺼내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낡은 일기장의 먼지를 털지 않았다면,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이 즐거운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 오랜만에 내가 쓴 일기들을 읽었더니, 일단 재밌었다는 자화자찬을 남겨 본다. 어린 시절의 나를 글로 만나보니 타인의 과거를 훔쳐보는 느낌도 들었다. 저학년 특유의 솔직 발랄함부터 고학년의 우정과 고민까지 꾹꾹 눌러 담은, 초딩의 희노애락이 담긴 글이었기에, 읽는 내내 즐거웠다.
읽다 보니 느낀 것은 내가 뭔가 오해하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일들이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입학한 곳은 사실 초등학교였다는 것처럼, 나 스스로에 대한 기억도 때로는 왜곡되거나 삭제되기도 한다.
‘내가 기억하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모범생’이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체제에 순응하고 어른들의 말씀이라면 일단 듣고 보는 아이였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내가 모범생이라는 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일기 속의 나는 좀 느낌이 달랐다. 하라는 일은 성실하게 하긴 하는데, 약간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어린이 같달까? 일기에 독자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선생님이다. 나는 선생님의 반응이나 평가에 민감한 어린이였을 것이기 때문에, 일기는 당연히 엄격한 자체 검열을 거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기 역시 요즘 말로 노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일기 속의 나는 공부를 지겨워했고, 잔소리를 들을 때면 유순한 얼굴 뒤에서 혼자 마이 웨이를 걸었다. 친구가 길에서 했던 쌍욕을 여과없이 일기에 기록해 놓기도 했고, 동생에게는 폭군과도 같은 누나였다. 이것들을 그대로 일기장에 담아서 매주 당당하게 검사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글은 때로는 쓴 사람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 일기를 통해 알게 된 나는 순종적인 모범생의 탈을 쓰고, 사회생활을 지겨워하는 염세적인 어린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잘 생각해 보니, 그런 점 역시 지금의 나와 비슷한 면이 많다.
지금부터 쓰고자 하는 글은 초딩 시절 썼던 일기에 대한 리뷰이다. 동시에 그 시절 내가 했던 경험이나 생각들을 서른여섯 살이 된 지금의 시선으로 풀어 보려고 한다.
나는 어린이들 특유의 톡톡 튀는 글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내 글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보다는 무거운 농구공에 가까웠다. 선수는 공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알고 있지만, 모든 플레이가 예측한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어린이였던 나는 연필을 잡은 주전선수가 되어 매주 빠짐없이 농구공같은 글을 썼다.
그래서일까. 내 일기는 6학년 졸업을 끝으로 더는 이어지지 않는다. 나에게 쓰라고 지시하는 누군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를 글로는 더 볼 수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어른이 된 나에게는 누구도 수동적인 글쓰기를 시키지 않는다. 시간을 쪼개어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이 시간은 그 옛날의 일기 쓰기보다 훨씬 즐겁다. 이십 년도 넘게 묵혀놓았던 글을 다시 읽으며, 앞으로 이어질 시간이 기다려진다.